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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단상

서울시립대 황승원 학우 사건에 대한 소고

지난 7월 2일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마트 탄현점 지하 1층 기계실에서 터보 냉각기 냉매 교체 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노동자 4명이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이들 중에는 서울시립대학교 경제학과에 다니던 황승원 학우(22)도 있었다. 황승원 학우는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뛰어들었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내가 황승원 학우의 사건을 접하며 더욱 가슴이 아팠던 이유는 그가 당한 사고는 단순한 사고accident가 아니라, 사회의 여러 가지 구조적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사건event이었기 때문이다. 황승원 학우는 한국사회에서 권리를 박탈당한 이들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그는 권리를 박탈당한 한국의 20대 대학생을 대표한다. 한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면 누구에게나 그 공동체의 재생산에 기여하기 위해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대학등록금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한국에서, 대학등록금이 상품의 가격처럼 취급받는 한국에서 많은 대학생들은 이 교육권을 권리로써 누리지 못한다. 오히려, 교육권을 ‘구매’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야만 한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에 가지 못했던 황승원 학우는 검정고시를 보면서까지 대학(세종대)에 다니고자 했으나, 비싼 등록금에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다. 수능을 다시 보고 등록금이 싼 서울시립대에 입학했지만, 그는 여전히 등록금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군대를 전역하자마자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뛰어들어야 했고, 결국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또한 그는 열심히 노동을 하고도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한국의 노동자들을 대표한다. 기업의 부를 창출해 내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하는 이들이 노동자들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많은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 착취당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조건은 저비용 고효율, 이윤 창출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백혈병으로 죽어간 삼성 노동자들의 외침은, 야간노동을 폐지하라는 충남 아산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외침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마트 탄현점에서 냉매 교체 작업을 하던 황승원 학우와 노동자들은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 작업장에서 일하다 결국 산소 결핍에 의해 질식사하고 말았다.

그의 죽음 이후 벌어진 보상을 둘러싼 논쟁 역시 한국에서 노동자들이 어떠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황승원 학우는 실질적으로 이마트에 고용되어 일했지만, 이마트 노동자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했다. 이마트는 황승원 학우가 냉매 수리를 맡은 하청업체 ‘오륜’ 소속이고, 오륜에게 점검을 맡긴 기업은 냉매기를 만든 트레인코리아이므로, 자신들이 아닌 그들이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들은 원청-하청, 간접고용과 같은 복잡한 계약관계에 얽혀있다. 이러한 복잡한 계약관계로 인해 노동자들이 피해를 보았을 때, 이에 대해 저항할 때 그 책임 소재가 누구인지, 누구에게 저항해야 하는지가 불분명해진다. 기업들은 서로 법적 공방을 벌이며 책임을 전가하고, 그 사이 보상 문제는 흐지부지 되고 만다. 노동자 4명이 죽은 상황에서 이마트와 트레인코리아 역시 법적 공방 운운하며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기에 바빴다.

이 사건은 유가족 측이 이마트와 합의를 이루며 일단락되었다. 책임을 회피하던 이마트로부터 보상을 받아낼 수 있었던 이유는 시립대 학우들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이 이번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여론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가족과 시립대 총학생회 측이 이마트에 강력한 항의했기 때문이다. 특히 총학은 황승원 학우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활동을 펼쳤다. 학교 측에 요구하여 대학교를 다니고 싶어 했던 황승원 학우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하도록 했고, 유족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진행하여 여론을 형성하려고 노력했다. ‘故황승원 학우 등록금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추모열기를 주도했고, 황승원 학우가 진 빚, 학자금대출 1000만원을 갚아주자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추모버튼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결국 성금과 버튼 판매를 통해 황승원 학우가 진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나는 총학의 이러한 활동들이 모두 값진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내가 생각하기에 총학의 이번 활동에 아쉬운 점이 있어서 글을 덧붙이고자 한다. 나는 이 문제제기가 제2의, 제3의 황승원 학우가 나오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황승원 학우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면서 총학은 ‘지나치게 감성에 호소하는 전략’을 택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학교 내에 붙어있던 총학의 성명서는 황승원 학우가 효자라는 사실, 가난하게 살다 고생만 하다 죽어갔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었다. 친구도 사치라며 친구도 사귀지 못했던 황승원 학우에게 우리가 친구가 되어주자는 호소나, 황승원 학우의 어머니께 편지를 쓰자는 제안 역시 같은 맥락에서 등장한 아이디어일 것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감성에 호소하는 전략이 꼭 필요하다. 길지 않은 기간 동안 1000만원이라는 돈이 모일 수 있었던 까닭 역시 이러한 호소가 먹혀들어갔기 때문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이렇게 감성에 호소하다보면 문제 자체가 ‘개인적’인 문제로 인식된 채 구조적인 문제는 잊혀 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따뜻한 정을 발휘해 도와줌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사건인 것처럼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총학이 황승원 학우 사건이 사회 구조적인 문제의 결과임을 알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서울시를 대상으로 등록금 정책의 변화를 요구하기도 했고, 반값 등록금 집회 중 황승원 학우의 추모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적인 활동의 초점은 황승원 학우가 진 빚을 우리가 갚아주자는 운동에 맞춰져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당연하게도, 우리가 황승원 학우를 추모하고, 그의 죽음에 가슴 아파하며, 그의 빚을 갚아주고 그의 친구가 되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사후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관점에서 보면 그러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태의 재발을 막을 ‘예방책’이 아닐까. 그래서 총학이 등록금 대책을 요구하는데 더 주력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느새 흐지부지 되어버린 ‘반값 등록금’ 논의에 서울시립대 총학생회가 적극적으로 뛰어들기를 희망한다. 다른 학교 총학생회들과의 연대를 통해 반값 등록금 논의에 다시 불을 붙였으면 좋겠다. 학생들이 등록금을 벌기 위해 노동에 뛰어들어야만 하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황승원 학우의 죽음은 ‘반복’될 것이다.

또 하나, 노동자들이 처한 노동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가 분명히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총학생회가 노동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 ‘운동권 총학’이라며 ‘대학생 문제’에 전념하라고 비난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노동문제 역시 대학생 문제의 일환이다. 나는 황승원 학우 사건이 이를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대학생도 노동자다.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영위하는 현실에서, 노동조건과 노동자 처우 개선에 대한 요구는 학생들의 대표인 총학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총학생회가 노동문제와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전개했으면 좋겠다. 한국사회 대다수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 한 황승원 학우의 죽음은 ‘반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