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8.06.21 13:30


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783


난민을 무작정 받아주자는 것이 아니다. 나아가 난민수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전부 '이슬람 혐오' '난민 혐오'로 보는 시선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에겐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역사가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 역시 70여년 전엔 난민들이 넘쳐나던 땅이었다는 것이다. 70년 전 이 땅의 난민들을 바라보던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 역시 지금 우리가 예멘 난민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서 온 정체불명의 이방인들이자 잠재적 범죄자. '배고픔에 눈에 뵈는 게 없을 그들이 폭동이라도 일으키면 어쩌지?'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든데 저런 정체도 모르는 사람들 도와주는 건 한가한 소리 아니냐" 70년 전 한국전쟁의 난민들을 도와준 수많은 사람들도 이 말을 자주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도 손을 건넨 수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대한민국은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마침내 난민의 자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주도로 전쟁의 땅이었던 한반도를 평화의 땅으로 만드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한반도에서 벌어진 70년 전의 비극을 정말로 기억하려 한다면, 장벽을 치고 그들을 못 본 척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을 명확히 검토해 어려운 상황에 처한 난민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미는 것, 그것이 한반도가 세계 속에 우뚝서는 평화의 땅이 되는 길이 아닐까 싶다.


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8.06.21 13:28

대한민국의 극우보수는 크게 세 가지 기둥을 토대로 살아남았다.

첫 번째는 보수언론과 지식인 및 관료집단, 국가기관, 정당 등의 연합으로 끊임없이 대중성을 갖춘 ‘새로운 정치권력’을 만들어내는 놀라운 재생산 능력이다. 보수와 진보의 이런 힘의 차이를 설명하는 말이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지난 2016년의 촛불혁명은 이 고리를 끊어내는 정치혁명이었다. 박근혜 정권은 “보수가 일을 잘하지” “그래도 보수가 좀 부패해도 능력 있지”라는 사람들의 믿음을 완전히 박살냈고 재생산에도 실패했다. (오죽하면 홍준표가 대선 후보고 김문수가 서울시장 후보다.) 그 결과 보수는 국민 다수의 지지를 상실했다. 80%의 국민이 대통령을 끌어내리는데 동의했고 80%가 (자한당이 아무리 난리쳐도)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한다.

두 번째 보수를 떠받치던 기둥은 냉전과 분단이다. 북한의 존재와 남북 간의 대립은 정치적 위기에 처해왔던 극우보수세력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산소호흡기 같은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남북정상회담과 오늘 이어진 북미정상회담은 이 산소호흡기를 떼는 과정이다. (이제 갈 사람은 가라~) 과거 보수정당에 비해 지금의 자유한국당이 유난히 맥을 못 추는 이유는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치혁명에 이어, 극우보수의 기반이던 전쟁과 분단 상황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

이제 마지막 남은 기둥은 불평등, 넓게 말하면 경제문제다. 우린 이미 진보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보수가 다시 권력을 잡는다는 점을 매우 잘 알고 있다. CEO 대통령과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보수의 가장 단단한 기둥은 TK도, 노인층도 아니라 불평등이다.

진보정당의 역사적 과제는 이 마지막 기둥을 무너뜨리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난 이 역할을 못하면 진보정당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정부에 실망했던 사람들이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한나라당을 지지했던 과거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정치혁명은 촛불시민들이 이루었다. 평화는 문재인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 이제 민생은, 진보정당이. 난 심상정 의원이 지방선거 유세에서 자주 했던 “평화는 문재인 대통령이, 민생은 정의당이 챙길 것”이라는 말에는 한 마디가 더 붙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못하면 우린 답이 없다”는 것이다.


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8.05.29 13:54

<무엇이 더 많은 생명을 살리는 길일까?>

낙태죄 폐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생명의 소중함을 주 논거로 삼는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낙태가 없는 세상’ ‘낙태를 최소화할 수 있는 세상’이 가장 좋은 세상일 것이다.

하지만 낙태를 금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그리고 다른 나라의 상황을 보자. 과연 낙태죄로 인해 낙태가 줄어들었을까? 현재의 낙태죄는 낙태를 줄이지 못했다. 보건복지부 실태조사만 봐도 낙태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가장 최근인 2010년 실태조사에서만 추정건수가 17만 건이고, 아마 통계에 잡히지 않은 건수를 합치면 더 늘어날 것이다. 게다가 이 중 1만여 건만 모자보건법에 의한 합법적 수술이고, 나머진 비합법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실이 이런데 “낙태는 생명을 해치니까 금지해야 돼” “그건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행동이야”라고 훈계만 하고 있으면 무슨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나는 낙태죄로는 낙태를 전혀 줄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낙태죄 폐지가 낙태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낙태죄 폐지에 찬성한다. 낙태죄 폐지가 낙태 최소화의 길이다.

낙태가 합법화된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가는 많은 상담과 진료를 제공하고, 이후 숙고를 거쳐 여성은 낙태를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낙태를 포기하는 여성들도 많다. 기본적으로 몸을 상하게 하는 일인데다, 낙태로 인한 부작용이나 위험성, 낙태 외 다른 대안(예컨대 출산 후 입양) 등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제공받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태아의 존재를 깊이 인지하게 되면서 오는 생각의 변화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둠 속에서 혼자 위험하게 낙태를 결정하는 여성들의 부담을 사회가 함께 짊어지는 것이다. 2010년 보건복지부 실태조사를 보면 임신중절 수술을 경험한 여성 중 전문기관 상담을 거쳤다는 여성은 3.3% 밖에 없었다. 반면 전문기관 상담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96%에 달했다. 현재 대부분의 낙태에 대한 결정은 여성 혼자, 또는 가족이나 파트너와 상의한 정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동시에 국가가 해야할 일은 낙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가난한 커플, 청소년 미혼모, 미혼 가정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데 주력을 다하는 것이다. 이런 고민 없이 낙태를 계속 처벌한다면 가난한 여성들이 많은 돈을 지불하면서 더 위험하게 수술을 받는 현실이 계속될 뿐이다.

낙태를 정말로 줄이고 싶은가? 그럼 낙태죄를 폐지하고 낙태를 여성이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닌, 국가와 사회가 함께 결정하는 영역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것이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엄격한 카톨릭 국가임에도 낙태 합법화에 성공한 우루과이의 호세 무히카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낙태 합법화가 낙태를 줄일 것이다. 합법화가 비밀리에 낙태를 하다가 사망하는 일을 막을 것이고, 또한 낙태 건수도 줄일 것이다. 국가가 낙태를 결정한 외로운 여성을 지원한다면, 결정을 철회할 여성이 많을 것이다. 그렇게 더 많은 생명을 살릴 것이다"


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8.05.08 18:20

며칠 전 하루종일 ‘박진영’과 ‘구원파’가 인기검색어였다. 디스패치의 단독 기사 <“저는 구원받았습니다”…박진영, ‘구원파’ 전도 포착> 때문이다. 디스패치가 잘하는 ‘파파라치’ 취재형식을 통해 박진영이 구원파 전도에 앞장섰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기사를 여러 번 읽어보았는데, 그래서 이 기사가 뭘 말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박진영은 평소에 무교라고 주장했지만, 알고 보니 구원파였다.”

디스패치가 ‘파파라치’ 취재를 통해 입증해서 쓸 수 있는 기사는 이 정도였을 것이다. 평소 방송이나 SNS에서 무교라고 주장하던 것과 달리, 알고보니 구원파 신도였고 종교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디스패치는 항상 팩트를 그대로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누가 잘못했는지 결론을 내린다. 예원-이태임 욕설논란 때도 “현장에 있던 해녀 이야기 들어보니…”라고 제3자의 증언을 전하는 데서 끝내지 않았다. 당시 디스패치 기사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자신의 감정을 예원에게 분출한 건,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예원은 마른 제주에서 날벼락을 맞았다. 그리고 온라인상에서 2차 공격을 당하고 있다“

이병헌 관련 보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병헌이 보낸 문자 확인해보니…”라며 메시지를 공개하는 데서 끝내지 않았다. 한 발 더 나아간다. 디스패치의 이병헌 기사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법적으로는 피해자와 피의자가 명확하다. 그러나 상식적으로는, 모두가 비상식적이다.”

(디스패치의 위험한 팩트에 대해 3년 전에 썼던 기사를 링크한다.)


이번 ‘박진영 구원파’ 기사는 어떨까? “박진영, 알고 보니 구원파”라는 팩트에 “그래서 그게 잘못이다”라는 결론을 첨가하려면 디스패치는 추가적으로 둘 중 하나를 입증했어야 한다.

1. “박진영이 ‘구원파’라는 종교를 믿으면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줬다.”

일반적으로 사이비종교에 대한 보도가 공익성을 가질 때, 이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이비종교의 교주나 관계자들이 가정을 파탄 냈다거나, 신도들 돈을 뜯어냈다거나, 교리를 이유로 성폭력을 일삼았다거나 하는 식이다.

그런데 박진영이 구원파 전도를 하면서 무슨 ‘나쁜 짓’을 했나? 디스패치는 이걸 입증하지 못했다.

2. “박진영이 구원파가 저지른 잘못된 일에 연관되어 있다.”

박진영이 구원파가 저지른 이상한 사업이나 부도덕한 일에 연관되어 있다거나 거기에 돈을 댔다면, 디스패치는 “박진영은 구원파”에서 “그게 잘못이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디스패치는 박진영이 ‘세월호’ 지주회사(천해지)의 대표였던 변기춘과 친하다는 것만 보여줬을 뿐이다. 온갖 팩트를 다 늘어놓지만, 그건 ‘변기춘’의 잘못이지, 그게 박진영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지 입증하지 못한다.

급기야 디스패치는 세월호와 청해진해운 이야기까지 언급한다. 세월호, 청해진해운이 박진영하고 대체 무슨 상관인가? 아무리 기사를 읽어봐도 알 수가 없다.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한 디스패치 기사는 이렇게 결론 짓는다. “박진영의 말은, 유병언과 권신찬의 논리와 닮아 있다.” ‘나쁜 놈들’의 논리와 비슷한 사상을 지녔으므로, 박진영도 나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디스패치가 늘 보이던 패턴이다. 자꾸 팩트를 이용해 여론재판의 판관 역할을 하려 한다. 디스패치에게 묻는 수밖에 없다. 박진영이 ‘구원파 신도’라는 것이, 대체 누구에게 무슨 피해를 준 것인가?


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7.12.12 17:09

사회적으로 예민한 쟁점을 다루는 방식이 녹아 있는 청와대의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한 답변


1. 논란과 갈등을 덜어낼 수 있는 언어를 선택한다. (낙태가 아니라 임신중절이라고 규정하고 시작)

2. 찬반 하나의 입장을 선언하는 대신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와 배경을 충분히 설명해준다. (임신중절 관련 논란 설명)

3. 권리의 충돌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를 잣대로 설명한다. (생명권과 자기결정권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이유와 각종 부작용으로 해소해야 하는 문제)

4. 지금 당장 자신의 입장(정부)에서 할 수 있는 조치들에 대한 대책을 설명한다. (미혼모 대책 피임교육 등등)

5. 고민이 있다면 고민이라고 드러내놓고 이야기한다.


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7.12.12 17:00

* 스포일러 있습니다.

내가 봤던 위안부 관련 영화 중 가장 위안부 문제를 보편적인 문제로 만들려 시도한 작품인 것 같다.


고통스러운 과거 일본의 만행 장면 등은 최소화하고, 과거 괴로운 일을 겪은 인물의 현재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렸다. 언론에 비치는, 그래서 대부분의 국민들이 접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모습에는 그들의 일상이 없다. 수요집회에 나오고, 일본과 정부를 비판하는 모습. 아이캔스피크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그 위안부 할머니의 일상을 조명했다.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동을 하는 할머니. 재개발의 피해를 경험하기도 하고, 구청에서 민원을 넣으러 가는 할머니. 눈에 걸린 고딩 밥도 챙겨주고 영어를 가르쳐준 손자뻘 청년이 면접본다고 하자 정장에 부적을 넣어두기도 하는 할머니. 그런 나옥분은 우리 주변에 보이는 이웃이기도 하다. 그런 이웃이 알고 보니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였다는 점은 영화 속 이웃들에게 그래서 충격으로 다가온다. (이 사실을 모르고 영화를 본 관객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이캔스피크는 그렇게 위안부 문제를 특정한 시대 특정한 피해를 겪은 피해자들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 주변에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이웃의 과거, 우리가 겪은 공동의 경험 혹은 역사로 만든다.

나옥분이 미국에 가서 위안부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설정, 그리고 이걸 본 외국인들이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인사하는 모습, 더 나아가 ‘서양인 위안부 피해자’를 함께 등장시킨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일본이라는 나라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문제를 넘어, (인류) 보편의 문제로 끌어올리는 장치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이 영화는 극악무도한 일본에 대한 분노와 증오로 끝나버리는, 위안부를 포함해 일제 시대를 소재로 한 영화의 한계점도 피해 나간다. (물론 여러 설정이나 대사, 구성 등에서 이를 벗어나지 못한 부분도 보인다)

극을 이끌어가는 개연성이나 스토리 등에서는 촘촘하지 못한 부분도 보였으나 위안부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내 입장에선) 접근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은 영화였다.


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7.09.13 09:33

학교급식노동자들에 대한 이언주 의원 발언을 들으니 옛날 생각이 났다.

대학교 다닐 때 학교식당에서 3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로 한 일은 설거지와 짬(남은 음식물 쓰레기) 치우기였다. 컨테이너벨트에 학생들이 올려놓은 식판과 식기들이 차례로 오면 그걸 빠르게 집어들어 잔반은 음식물 쓰레기통에 넣고 나머지 식판과 식기들은 뜨거운 물 통에 넣어 불린다.

조금만 늦거나 딴 일을 하고 있으면 잔반이 든 식판과 식기들이 엎어져서 난장판이 된다. 그렇게 뜨거운 통에 불린 식판과 식기를 꺼내 식기 세척기에 집어 넣는다. 일에 조금 익숙해지면 빨리 집어넣고 그 사이 반대편으로 가서 씻겨져 나오는 식기들을 꺼내 종류별로 분류해 정리하는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다. 정리를 좀 마치고 다시 반대편으로 가서 식기와 식판을 집어넣는다. 그 사이 틈이 날때마다 컨테이너벨트로 가서 몰려드는 식판과 식기 잔반을 처리한다. 그리고 또 틈이 날 때마다 씻겨나온 식기와 식판 수저 컵 등을 밖의 식당으로 나른다.

한 10분 정도 지나면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땀 때문에 앞도 잘 안 보인다. 식기세척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늘 안경을 뿌옇게 만들었다. 늘 허리를 숙이고 일을 해야해서 허리와 어깨가 아프다. 뜨거운 물이 얼굴이나 손에 튀거나 장갑안으로 들어가 작은 화상을 입은 적도 있고 바닥이 늘 물투성이다보니 미끄러져 넘어진 적도 여러번 있었다.

같이 일하던 이모들도 조리사 아저씨들도(통칭해서 급식노동자들) 노동환경이 비슷했다. 뜨거운 불에 화상을 입기 일쑤고 같은 노동을 반복하다보니 허리도 아프고 손목도 아프고 온 몸이 쑤신다. 그러면서도 학생들 밥먹이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계셨다.

이언주 의원이 급식노동자들한테 그냥 동네아줌마들이고 조금만 교육시키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대단한 셰프도 아니고 굉장한 기술을 요하는 전문직도 아니다. 이들의 노동은 오히려 하루종일 컨베이너벨트 앞에서 단순노동을 반복하는 3D 노동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학교 학생 대다수가 바로 그분들이 만드는 밥을 먹었다. 내가 설거지했던 그 식기로 밥을 먹었다. 대한민국 대다수의 일상이 바로 이런 일상적이고 단순한 노동에 의해 구성된다. 일상적이고 별거 아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같지만 그런 노동이 하나 둘 모여야 다른 사람들의 일상이 돌아간다. 그래서 그들의 노동은 전문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대단한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않을 지라도 소중하고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소에는 잊고 있지만 나의 일상은 누군가의 노동으로 인해 가능하다는 점, 그 점은 역설적이게도 그 노동자들이 일을 멈출 때 드러난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파업이라 부른다.


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7.09.13 09:32


http://m.the300.mt.co.kr/view.html?no=2017072507497614025

지난 대선 때 심상정 후보 캠프에서 일하며 느낀 게 있었다. 기자 출신이었기에 글을 쓰면서 '이걸 쓰면 기자들이 뭘 야마로 뽑을까' '어떻게 써야 언론이 잘 받아쓸까'를 고민했다. 정치가 미디어에 어떻게 노출되는지에 주목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고민은 상당부분 낡은 것이었다. 중요한 건 심상정 후보가 하는 말을 언론이 어떻게 받아쓸지가 아니라, 심상정이 곧 미디어라는 점이었다. 같은 원리로 정의당이 곧 미디어다. 심 후보 페북 좋아요 수가 34만 명이 넘는다. 팔로우한 사람은 36만 명이다. 그 사람들은 언론이 제목으로 뽑고 축약한 심 후보의 말이 아니라 페북과 트위터에 올린 유투브에 올라온 심 후보의 말과 글, 콘텐츠를 직접 소비했다.

요새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이 화제가 되는 이유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연설에 이렇게 관심 많았던 때가 있었나 싶다. 물론 연설이 훌륭하기도 하지만 미디어환경의 변화도 한 몫했다. 문재인이 곧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과거 대통령들에겐 주옥같은 연설이 없었을까? (물론 503은 논외;;;) 그 때 연설이 화제가 되지 못한건 사람들에게 대통령 연설이란 언론을 통해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언론이 뽑은 제목과 언론이 축약한 내용에 따라서.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언론을 통해서만 대통령 연설을 보지 않는다. 유투브 생중계로 페이스북을 통해 문통의 연설을 직접 본다. 그리고 연설내용을 함부로 축약하거나 맥락을 생략한 언론을 다그친다. 문통이 518 연설에서 518을 잊지않은 사람들을 일일이 호명하고 이어서 518 유가족을 끌어안는 장면은 편집없이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드는 고민은 세 가지다.
첫 째 기자와 언론은 대통령 말을 전달하고 중계하는 것 외에 무슨 콘텐츠를 더 보여줄 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 고민해야한다는 것 그리고 문재인이라는 미디어보다 우리 매체를 보는 게 더 낫다는 걸 입증해야한다는 것

둘 째 정당과 정치세력의 위기관리의 방식도 진화해야한다는 것. 언론관리를 잘한다고 위기가 봉합되지 않는다. 한 정당의 정치인이 페북에서 사고를 치면, 기사 한 줄 안 나가도 sns를 통해 다 퍼지고 포털 인기검색어에 오른다. 사고 친 이 정치인이 곧 미디어기 때문이다. 그것이 뉴스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아닌지를 더이상 언론만 판단하지 않는다.

셋째 문통의 이런 소통이 쇼통이라고 비웃는 정치세력들에 대한 의문. 당신은 보여주기라도 제대로 해본 적 있는가? 그럼 쇼통 말고 당신들은 어떤 소통을 하고 있나?



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7.09.13 09:29

조지오웰의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다시 읽었다. 역시 고전답게 곱씹어야할 대목들이 가득하다. 특히 마지막 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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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회주의는 무엇인가? 나는 진정한 사회주의란 압제가 타도되는 꼴을 보기를 바라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겠다. 하지만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라면 대부분 그런 정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받아들인다 해도 몹시 못마땅해 할 것이다. 이따금 나는 그들이 말하는 걸 들을 때, 그리고 그들의 책을 읽을 때는 더더욱, 사회주의운동 전체가 그들에겐 일종의 흥미로운 이단 사냥에 불과한 것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장단에 맞춰 이리저리 미친 듯 뛰어다니며 '어험 어험 이거 변절자의 피 냄새가 나는 구먼!' 하는 듯하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본질을 희생할 필요는 전혀 없지만 외관은 크게 희생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사회주의 운동에 아직도 붙어다니는 괴팍스러움의 기미를 떨쳐버릴 수 있다면,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샌들과 베이지색 셔츠를 쌓아놓고 태워버릴 수만 있다면, 채식주의자와 금주주의자와 위선자를 '웰윈 가든'(영국 전원도시)으로 돌려보내 조용히 요가나 하며 지내게 할 수만 있다면! 하지만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단 가능한 것은 훨씬 더 지적인 사회주의자들이 지지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어리석고 다분히 엉뚱한 방식으로 멀어지게 하는 일을 그만두는 것이다.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융통성 없이 구는 일이 너무 많은데, 그런 것들은 너무나 쉽게 근절할 수 있다.

끔찍한 전문용어도 문제다. 일반인들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니 프롤레타리아의 연대니 하는 말을 들으면 영감을 받는 게 아니라 정나미가 떨어질 뿐이다. 심지어 '동지'라는 말 한마디만 해도 사회주의 운동을 불신하는데 적지만 한몫을 했다. 머뭇거리던 사람들 중 용기를 내어 대중집회에 갔다가 자의식 강한 사회주의자들이 의무적으로 서로를 동지라 부르는 것을 보고 실망하고는 슬그머니 빠져 나와 제일 가까운 맥줏집으로 들어가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가!

(우리가) 연합해야할 사람들은 사장에게 굽실거려야 하고 집세 낼 생각을 하면 몸서리쳐지는 모든 이들이다. 소규모 자작농이 공장 노동자와 연합하고, 타자수가 광부와, 학교장이 자동차 정비공과 연합해야 한다는 뜻이다. 해고당하는 꿈을 자주 꾸는 모든 은행원은 파산직전을 오가는 모든 가게 주인과 (본질적으로) 같은 처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 가지 사실을 대중의 의식 속에 각인하는 것뿐이다. 하나는 모든 피착취 인민의 이해관계는 같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사회주의는 상식적인 양식과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다.


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6.05.22 10:35

http://ppss.kr/archives/78487

1. 슬퍼하되 살려달라고 소리치면 안 된다. 그럼 미개한 국민이 된다.

2. 슬퍼하되 진상규명 위해 집회나 단식 등 과격한 방법은 쓰면 안 된다. 그러면 지지를 못 받는다.

3. 슬퍼하되 대통령이나 정부를 해경을 비판하면 안 된다. 그러면 지지를 못 받는다.

4. 슬퍼하되 너무 오래 슬퍼해도 안 된다. 그럼 피로감이 쌓이고 경제에도 영향을 준다.

출처: 연합뉴스
출처: 연합뉴스

5. 슬퍼하되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의 정치색도 검증해야한다. 시민단체 소속은 아닌지 노조 소속은 아닌지.

출처:
출처: 글로발뉴스

6. 슬퍼하되 노조출신은 단식도 앞장서서는 안 된다. 순수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출처:
출처: 서울신문

7. 슬퍼하되 과거에도 자식을 아꼈다는 걸 증명해야한다. 예컨대 양육비 통장을 공개한다든가.

8. 슬퍼하되 다른 유가족들에 비해 유난떨면 안 된다. 학생이 아닌 피해자들은 왜 신경 안 쓰냐고 욕 먹을 수 있다.

9. 슬퍼하되 다른 참사 피해자들에게 위화감을 주지 말아야 한다. 안 그러면 6.25, 천안함, 마우나리조트는 왜 추모하지 않느냐는 소리를 듣는다.

10. 슬퍼하되 정치적 중립은 지켜야 한다. 여/야 한 편에 서면 정치 집단으로 인식된다.

그림3
출처: 연합뉴스

11. 슬퍼하되 자신을 도와줄 변호사 선거운동에 유가족임을 드러내서도 안 된다. 그러면 선거에 방해가 된다.

12. 슬퍼하되 자신의 생업을 포기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도 후원금을 받거나 보상금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그럼 돈 더 받으려고 난리 치는 나쁜 피해자가 된다.

지난 2년간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들이다. 피해자 되기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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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조윤호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