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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hook

동결로는 안 된다! 등록금을 인하하라!

며칠 전 언론에서는 생활고와 취업난 때문에 매년 200-300명의 대학생들이 자살한다는 통계가 보도되었다. 2009년에는 268명, 2008년에는 332명의 대학생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지난 달 강릉에서 한 대학생은 학자금 대출 서류와 즉석복권 두 장을 남기고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이 학생들의 죽음을 언제까지 개인의 나약함으로 설명하며 방관할 수 있을까? 요즘 대학생들은 목숨에 위협을 받을 정도의 엄청난 ‘돈’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대학생들은 치솟는 물가로 인해 같이 치솟은 생활비, 전세대란으로 급증한 주거비, 스펙을 쌓기 위한 해외 어학 연수비 등을 마련하기 위해 학업을 뒤로 한 채 아르바이트에 열중해야 한다. 대학생들을 압박하는 돈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단연 대학등록금이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대학생들은 휴학을 반복하며, 주말, 평일, 야간을 가리지 않고 알바를 해야만 한다. 남학생들은 용역 깡패, 불법게임업체 직원, 막노동을 가리지 않고 일하고, 여학생들은 유흥업소에서까지 일한다. 서울 강남의 한 유흥업소에는 “살인적인 대학 등록금 때문에 내몰린 여대생, 접대부로 대거 고용”이라는 홍보문구까지 등장했다.

2000년대 이후 등록금 천만 원 시대가 도래 했다. 2000년대 연평균 230만 원이던 국립대학 등록금은 2010년엔 444만원으로, 449만원이던 사립대학 등록금은 754만원으로 10년 만에 거의 2배가 되었다. 전 계열 평균 등록금이 이 정도이고, 2010년 사립대학 등록금 최고액은 인문사회계열을 제외하고 모두 1000만원을 넘어섰다. 의학계열 등록금은 최고액뿐만이 아니라 평균액까지도 1000만원을 넘어섰다. 국립대학 등록금 최고액도 전 계열에서 500만 원을 크게 넘어섰으며 의학계열 등록금은 1035만원(서울대)이다. OECD 국가들의 일반적인 등록금 수준은 1인당 국민소득의 1/10이 안 되는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대다수 국민들의 등록금 부담률은 소득대비 1/3에 육박한다. 대다수 가정은 빚을 지지 않고서는 자녀의 대학교육비를 부담할 수 없다. 2009년 교육지표에 따르면 한국의 사립대 평균 등록금은 OECD 국가들 중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한국 대학등록금 인상률은 물가상승률에 2배가 넘을 정도로 살인적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와 대학은 등록금 문제를 해결할 의지 자체가 없어 보인다. 아니, 해결은커녕 올해에도 많은 대학들이 등록금 인상을 발표했다. 학생들이 강력하게 반발해야 어쩔 수 없다는 듯 동결시키는 모양새이다. 그러나 등록금 동결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등록금 동결은 ‘더 오르는 것’을 막았다는 것 외에 어떠한 해결책도 될 수 없다. 등록금을 인하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대학생들이 살인적인 등록금에 시달리는 이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등록금이 비싸다고 학생들이 아우성을 치는데도 각 대학들은 헛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 총장은 “좋은 빵을 먹기 위해서는 돈을 더 내야 하듯이,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비싼 등록금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장뿐만이 아니더라도 대다수 대학의 총장들과 대학 관계자들은 대학을 시장에서의 상품, 등록금을 상품가격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좋은 교육을 받으려면 그만큼 많은 돈을 내야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등록금이 올라도 그만큼 교육의 질이 높아진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있다. 등록금이 올랐을 때 학생들이 실감할 수 있는 건 늘어나는 건물뿐이다. 학생들은 수강신청을 하기 위해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의 경쟁을 해야 한다. 대다수 학교가 강사가 모자라다는 이유로 대 강의실에 학생들을 몰아넣고 수업을 진행한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 밝힌 자료를 보면 2009년 대학교에서 부족한 법정 교원 수는 2만2547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돈을 아끼기 위해 대학에서 법으로 정한 전임강사 수를 채우지 않고 대형 강의를 편성하거나 시간강사로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은 ‘교육’기관이고 높은 가격에 걸맞은 좋은 서비스라 함은 좋은 교육을 제공하는 것일 텐데,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하지도 못하면서 등록금은 왜 올린단 말인가?

또한 설사 등록금이 올라가서 좋은 교육을 제공 한다 쳐도, “좋은 교육을 제공받기 위해서는 비싼 등록금을 내야 한다.”는 논리에는 문제가 많다. 이 논리는 대학을 시장에서 팔리는 상품으로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대학이라는 상품은 ‘대체재가 없는 생필품’에 가깝다. 시장에서 상추가 비싸면 깻잎을 먹으면 되고, 그러면 상추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상추 값은 하락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대학이 비싸다고 해서 대학에 안 갈 수 있는가? 대학 진학률이 80%가 넘는 사회에서, 대졸자의 임금과 고졸자의 임금 격차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대학 안 나오면 사람 취급도 안 하는 나라에서 대학에 가느냐 마느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또한 엄연한 ‘학벌사회’에서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은 ‘어느’ 대학에 갈지 말지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다. SKY 대학에 합격했는데 지방 대학의 등록금이 더 싸다고 지방대학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학생과 학부모가 몇 명이나 될까? 게다가 일부 대학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대학의 등록금은 하나 같이 비싼 상황이다. 이렇게 하나의 상품이 비싸긴 하지만 다른 상품을 살 수는 없는, ‘대체재가 없는’ 상황에서, 그리고 대학이 ‘생필품’이 되어버린 한국적 현실에서 대학을 일반적인 상품 정도로 간주하는 것은 헛소리에 불과하다.

등록금을 올린다고 주장하는 대학들의 또 다른 논리는 ‘재정압박‘이다. 대학들은 매년 돈이 없다고 하소연을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대학들은 돈을 쌓아 두고 있다. 2009년 전국 4년제 사립대의 누적적립금은 7조 원이 넘었다. 적립금 1위인 이화여대는 6280억 원, 2위인 홍익대는 4857억 원, 그 뒤를 잇는 연세대는 3907억 원의 적립금을 쌓아 두고 있다. 이 수치는 매년 늘어나서, 급기야 사립대학의 전체 적립금은 2010년에 10조 원을 넘어섰다. 대학 적립금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건축기금이다. 2009년 기준으로 건축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3조2001억 원으로 전체의 46%에 달한다. 반면 장학적립금은 8.6%에 불과하다. 게다가 연구기금 적립금은 6381억 원으로 9.2%밖에 되지 않는다. 더욱이 용도가 불분명한 ‘기타 적립금’ 규모는 2조4155여억 원(34.8%)에 이른다. 서울의 주요 사립대 가운데 경희대는 기타 적립금 비중이 67.9%로 적립금의 과반을 훌쩍 넘겼고 그 다음은 중앙대(51.5%), 국민대(49.2%), 이화여대(42.7%) 순이었다. 결국 적립금 중 학생의 공부와 연구를 위해 쓰이는 돈은 17.8%에 불과한 반면, 건축적립금과 용도가 불분명한 기타적립금의 비율은 80%를 넘는 실정이다.

대학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적립금을 쌓아두는 것일까? 대학들은 매년 물가인상이니 건물 신축이니 교육여건 개선이니 여러 지출 증가 요인을 내세우며 막대한 예산을 편성한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예산이 부족하다며 등록금을 인상한다. 그러나 막상 이 예산안대로 지출은 하지 않고 남은 돈을 적립한다. 실제로 모 대학 예산편성안의 예산과 실제 지출된 금액은 750억 원의 차이를 보였다. 이 돈은 전부 적립금으로 향했다. 750억 원이면 그 학교 전교생들에게 한 학기 등록금을 장학금으로 줄 수 있는 돈이다. 이렇게 쌓인 적립금을 도대체 어디다 쓰는 것일까? 대학들은 적립금을 ‘교육용 토지‘를 보유하는 데 사용한다. 지역캠퍼스를 짓는다고 지방정부 소유의 땅을 싸게 구입해놓고 지역 캠퍼스는 운영도 하지 않고 토지를 보유하고만 있다. 학생들을 위해 써야할 돈이 오랫동안 땅에 묶여 있는 것이다. 적립금을 쌓아 토지를 사고, 토지를 보유만 하면서 토지 사서 돈 없으니까 등록금 더 내놓으라는 식이다. 날강도 떼가 따로 없다. 대학들이 적립금으로 하는 짓은 또 있다. 펀드나 주식투자이다. 대학들은 등록금이 포함된 유동자금까지 펀드에 투자한다. 모 대학의 경우, 위험과 손실이 적은 예금도 아닌 위험성이 큰 해외부동산 펀드에까지 투자하여 25억 원이라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고 한다. 대학이 학생들 등록금 가지고 돈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수많은 적립금을 쌓아만 놓고 쓰지도 않으면서, 매년 돈이 없다고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더 내라고 하는 것이 대학들이다. 등록금을 어디다 쓰는지 밝히라고 학생들이 항의하면, ‘경영상의 비밀’이라고 뻐긴다. 펀드투자로 얻은 수익률과 손실률도 경영상의 비밀이라며 밝히지 않는다.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설명도 안 해 주면서, 무엇이 필요한지 학생들의 의견도 듣지 않은 채 학교에서 등록금을 어디에 사용할 지 마음대로 결정한 뒤 돈 없으니 돈 내놓으라는 격이다. 많은 이들이 대학이 기업화되었다고 걱정하는데, 이건 기업도 아니다. 칼만 안 들었지 강도들이다. 그냥 입 다물고 돈 필요하니 돈이나 내놓으라는 게 강도가 아니고 뭔가?

대책이 없는 건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정부의 유일한 등록금 대책은 학자금 대출이다. 설동근 과학기술교육부 차관은 지난 1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의 인터뷰에서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기보다는 든든한 학자금 대출을 잘 활용해 부담을 줄일 것”을 주문했다. 또한 취직 후 상환을 하면 되기 때문에 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청년실업 100만 시대라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진정한 탁상공론이다. 몇 천 만원 대출을 받아서 등록금을 납부하면 뭐하나? 취직이 되지 않으면 졸업 후 빚더미에 나앉을 뿐이다. 대학생들 입장에서 이자율도 너무 높아 아르바이트를 해서 매달 이자를 갚기에도 벅차다. 높은 이자의 학자금 대출 제도를 등록금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내놓는 정부는 생각이 없거나 등록금을 해결할 의지 자체가 없거나 학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싶거나 셋 중 하나이다.

행정부와 집권여당은 대학생의 이러한 현실을 해결할 고민은 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이용하여 사기를 쳤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가장 널리 홍보했던 대선공약 중 하나는 ‘반값 등록금’이었다. 2008년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한 대학생이 이 공약의 실행 여부에 대해 묻자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나온 공약”이라며 그건 당에서 정한 공약이지 “나 자신은 반값으로 등록금을 하겠다고 공약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게 반값 등록금 공약에 대해 묻자 이주호 장관은 “반값 등록금 이야기는 했는데 액수의 반값이 아니라 심리적 부담을 반으로 줄여주겠다는 이야기였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처럼 날강도 같은 대학자본과 사기꾼 같은 정치권력이 힘을 합세하여 돈 없고 힘없는 대학생들을 억압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란 당사자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결정하고 해결하는 원리이다. 더 이상 총장과 재단 이사장 등 몇 명이 등록금을 결정하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학생들이 등록금 결정에 참여해야만 한다. 이런 취지로 2010년 이후 이미 대학에는 등록금심의위원회(이하 등심위)가 설치되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2010년 1월 통과된 고등교육법 개정안은 등심위 구성시 교직원·학생·전문가 중 어느 한쪽 비율이 50%를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만 두고 나머지는 개별 대학에 맡기고 있다. 이러니 대부분 대학에서는 이를 악용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인사를 등심위 위원으로 참여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학생에게는 위원 자리로 두 자리만을 준 뒤, 나머지 자리는 사실상 학교 측 입장을 대변하는 학교 교직원, 외부 전문가, 총동문회 회원 등으로 채우는 식이다. 이렇다보니 등록금 인하 및 등록금 산정 기준 등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의견은 번번이 묵살되고 있다. 이런 졸속적인 등심위 운영을 비판하며 지난 1월 14일 숙명여대 총학생회가 거리 행진을 벌였고 서울대 총학생회 역시 같은 이유로 대학 측이 제시한 등심위 위원 구성안을 거부했다. 서강대 학생들도 같은 이유로 등심위를 비판하며 삭발과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그러자 각 대학들은 좋다구나 하며 줄줄이 등록금 인상안을 발표했다. 대학의 일방적인 등록금 책정을 막기 위해서는 등심위와 같은 기구에서의 학생들의 실질적인 권한이 확대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학자본과 정치권력은 순순히 대학생들에게 이러한 권리를 내어줄 생각이 없을 것이다. 경찰은 4월 2일 열릴 예정이던 ‘등록금 대회’를 불허하며 탄압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럴수록 대학생들이 직접 들고 일어나야 한다. 날강도와 사기꾼들에 맞서 더 이상 당하지 말고 직접 행동해야 한다. 권리는 잠자고 있는 자에겐 보장되지 않는다. 저 강도떼들과 사기꾼들에게 등록금 인하를, 교육받을 권리를 요구하자!

참고자료

윤찬영, “사채 빌리고 유흥업소 넘겨지고… 이게 정상?”, 오마이뉴스, 2011.03.27.(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42980)

허환주, “등록금 400만원, 대학교육 ‘원가’는 도대체 얼마?”, 프레시안, 2011.03.29.(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10327224215&section=03)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대학생들의 잔인한 봄 – 왜 돈에 좌절하는가?”, 2011.3.12.

MBC 뉴스, “벼랑 끝 대학생들‥한 해 2-300명 자살”, 2011.03.28.(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10328090056440&p=imbc)

<한겨레 훅>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