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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hook

진보대연합? 퇴보대연합!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야당들 사이에서 이른바 ‘진보대연합’ 혹은 ‘민주대연합’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누군가는 한나라당을 제외한 모든 민주화세력이 연합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누군가는 민주당을 제외한 진보정당들(국참당/민노당/진보신당)이 통합한 후 민주당과 연합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이러한 연합 논의에 의구심을 가지며 야권대연합 논의에 참가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한나라당과 MB정부 심판이 그렇게 ‘당위적’이고 한국의 민주주의와 진보정권의 수립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왜 어떤 이들은 야권 대연합을 거부하는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문제는 과거에 정권을 잡았던 세력, 민주당과 국참당(유시민으로 대표되는)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이들은 진보의 기치를 내걸고, 노동자와 서민을 대표한다고 정권을 잡은 뒤 노동자와 서민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개혁을 밀어붙였다. 이들이 세력을 늘리기 위해 일단 손을 잡고 뒤통수를 때리는 짓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어디 있는가? 지금은 집권과 세력 확장을 위해 좌 클릭을 한답시고 무상급식과 무상의료를 내세우지만, 정권을 잡은 후 얼굴색 싹 바뀌지 말란 보장이 어디 있느냔 말이다.

구 민주정부 세력들은 이에 대해 진정성을 믿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뼈저리게 반성하고, 과거 정부의 반 노동 반 서민 정책을 후회한다고 한다. 정동영 의원은 과거 정권에서 신자유주의를 밀어 붙인 것에 대한 반성문까지 썼다. 개혁성향의 민주당 의원들은 민주당이 기득권을 버릴 것을 약속하기도 한다.

이들의 태도를 검증할 방법은 있다. 이들이 야당이라서 진보적인지, 아니면 진짜 진보적으로 바뀐 것인지 검증할 방도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현재 기득권을 쥐고 있는 영역, 부분에서 어떠한 태도를 보이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지금 전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버스노동자 파업 사태에 민주당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보면 민주당의 ‘진정성’이 보인다. 전주에서 민주당은 수권정당이다. 민주당의 텃밭답게 전북도지사, 전주시장, 전주시의회 모두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다. 그런 곳에서 버스노동자들이 부당한 노동조건과 사측의 임금체불에 맞서 파업을 벌이고 있다. 전주 버스노동자들의 파업은 오늘 18일로 133일을 맞는다. 그런데 진보적인 가치를 수호하고 노동자 서민의 이익을 대변하겠다는 민주당은 133일 동안 노동자들의 파업을 해결하기는커녕 방관하고 무시하고 있다.

“개혁우파 세력이 집권하면 세상이 어떨까는 전주를 보면 된다. 버스 노동자들이 86일째 추위와 폭력 속에서 파업하고 있는데 민주당이 장악한 전주시와 전주시의회는 이명박보다 덜하지 않다.” (김규항)

전주 버스 노동자들은 전국 버스업계에서 가장 낮은 임금과 가장 높은 강도의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밥 먹을 시간과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종점에서 행선 판 바꿀 시간도 없이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 몇 년 간의 재판 끝에 법원이 체불 통상임금을 일인당 천 만원씩 지불하라고 사측에 요구했으나 버스 사업주들은 한국노총 지도부들에게 위로금 백 여 만원을 주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하려고 했다. 거기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 각계에서 제안하고 노조도 수용 의사를 밝힌 ‘사회적 합의안’도 거부해버렸다.

사태가 이러한 데 민주당, 특히 전주가 지역구인 정동영 의원은 이 사태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민주당은 늘 권력을 가졌으나 그것으로 자기네들 배나 불리는 한나라당과 대통령을 비난하지만, 자신들이 지자체를 장악하고 수권세력으로 버티고 있는 전주에서 그들은 그들이 그렇게 비난하는 한나라당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인천 버스 파업의 경우 사측이 임금을 지불하지 않자 여객자동차 사업법 제38조에 의거해 지자체장이 사측에게 과징금을 부과했고 실제 3일 만이 해결이 되었다. 그러나 민주당 소속의 김완주 도지사는 사업주들에 대해 강경한 행정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거기다 민주당 소속의 송하진 전주시장은 시장에 재선되자마자 무료 환승 손실 보조금을 50%에서 100%로 올려주었는데, 이는 조례 등 근거도 없는 것으로 시민의 혈세를 퍼다 준 것이다. 전주지역 버스 노동자들은 임금이 150만원도 안 되는데 보조금 산정의 기준으로 버스 회사에서 시에 제출한 임금은 260만원(직행은 285만원)이었다. 이로 인해 진보신당 전북도당은 송하진 시장을 배임 혐의로 고발했고, 2월 17일 전라북도의회 긴급현안질문에서 김완주 도지사 역시 보조금 지급 집행에 문제가 있음을 시인했다. 이 현안질문 자리에서 오은미 민주노동당 전북도의원은 김 도지사에게 “지난 선거기간 중에 버스업체 두 곳으로부터 정치후원금을 받은 적이 있냐.”고 물었고 김 도지사는 이 역시 시인했다. 지자체장에겐 운수사업법상 면허 등에 대하여 행정적 집행 권한이 있으며, 탈세나 보조금 횡령 의혹 등과 관련한 책임에 대해서 사업면허를 취소할 권한도 있다. 그러나 민주당 소속의 도지사나 시장은 그럴 생각이 없을 것이다.

노동자, 서민을 위한 복지국가 정당이 되겠다고 떠들고 다니는 정동영 의원은 자기 지역구에서 일어난 파업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나? 노동, 비정규직을 위해 자신이 속한 상임위를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환경노동위원회로 옮겼다는 그였다. “보편적 복지를 이야기하면서 노동문제를 빼놓으면 공허해진다.”고 말한 그였다. 노동의 중요성을 그렇게 강조하는 그는 생계까지 위협받고 있는 지역구의 노동자들을 위해 무엇을 했나? 정동영 의원은 2009년 모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용산 참사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풀 수 있는 문제”라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문제는 진정성이라고 단언하고, “사회적 약자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정치를 하겠다고 한다면 증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대통령이 자신의 진정성을 입증하기란 매우 쉬운 일이다. “용산에 가면 됩니다. 용산문제를 껴안고 해결할 때 그 진정성이 증명되는 것이죠.”

나는 그 말을 정동영 의원에게 똑같이 돌려주고 싶다. “전주에 가면 됩니다. 전주버스노동자를 껴안고 해결할 때 그 진정성이 증명되는 것이죠.”라고 말이다. 민주당 중앙당사로, 재보궐 선거를 앞둔 분당으로 버스노동자들이 항의농성과 집회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정동영을 비롯한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그들을 찾아가 그들을 껴안기는 고사하고 찾아온 그들과도 만나주지 않고 있다. 홍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찾아다니기 전에,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카메라와 언론이 몰리는 투쟁 장에 찾아가 얼굴도장 찍기 전에 자기 지역구에서 서울까지 찾아온 노동자들부터 만나야 하는 것이 우선 아닌가?

단지 수사적인 의미가 아니다. 단지 민주당을 ‘꾸짖기’ 위해 일부러 악의적으로 하는 말도 아니다. 민주당은 ‘사실적으로’ 한나라당과 다를 게 하나도 없는 기득권 세력이다. 그들이 지금 복지국가 어쩌구 하면서 진보적인 소리를 할 수 있는 건 그들이 야당이고 집권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가 지는 해라면 노동자는 뜨는 해”라고 말했던, 전태일 열사 기일에 노동자들과 함께 향을 피웠던, 노동자 김진숙과 김주익의 동지이자 고문 변호사였던 노무현조차도 집권 이후에 노동 탄압을 서슴지 않았다. 그의 시대에 가장 많은 노동자가 잘렸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구속됐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됐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죽었다. 김주익과 곽재규, 배달호, 김동윤, 최복남, 전용철, 홍덕표, 이용석, 이해남, 이현중, 정해진, 하중근, 박수일, 허세욱, 그 외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 나갔고 비정규직은 800만이 넘어섰다. 적어도 집권 이전에는 노동자의 편이라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노무현이 그랬다. 집권도 하기 전부터, 해결능력이 있는 자기네 텃밭에서조차 노동자들의 생계에 무관심한 이들이 집권을 하면 어떤 모습을 보일지 상상하기조차 끔찍하다.

이런 작자들이 진보대연합을 하자니 누굴 심판하자니 소리를 떠들고 있다. 그런 소리를 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연합에 의구심을 갖고 있거나 자기네 세력 확장에 방해가 된다 싶은 사람들을 상대로 윽박을 지른다. ‘대연합’의 논리는 전주 버스노동자들처럼 민주당과 한나라당 모두를 거부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폭력이다. 정동영 의원은 지난 15일 성남 분당에서 집회 중이던 전주버스 파업노동자들과 면담하면서 “전주버스 사태의 뿌리는 현 정권의 반 노동정책.”이라고 말했다. 웃기지도 않는다. 현 정권의 책임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기본적으로 버스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게 된 것은, 그리고 이 파업이 이렇게나 길어지게 된 것은 법원의 판결도 무시하고 체불임금을 갈취하려는 사측의 탐욕과 이들을 방관하는 전주의 ‘민주당 권력’ 때문이다. 정동영 의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전주 버스노동자들의 분당 집회로 5천표가 날아갔다.”는 애기가 나온다고 하면서, 이러한 집회는 오히려 현 정권에 힘을 실어주는 자해행위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이자들에게 중요한 건 표를 받는 것이고, 이 표를 통해 권력을 잡는 것이다. 진보의 가치, 노동자 서민의 이익, 이런 것들은 알바 아니다. 이들은 이러한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대연합’과 ‘정권 심판’을 들먹거린다.

이런 자들과 연합해보았자, 그리고 이런 자들이 진보정권이랍시고 권력을 잡아보았자 세상은 조금도 진보하지 않는다. 이들은 대연합을 내세워 정권을 잡고, 또 다시 노동자 탄압을 반복한 뒤 5년이 지나면 또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자고 대연합을 주장하며 자신들을 비판하는 이들을 분열주의자나 국가를 생각할 줄 모르는 바보 취급할 것이다.

역사는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반복된다고 한다. 그들의 책임을 묻지 않고 진보대연합의 논리가 다시 한 번 힘을 얻는다면 그것은 비극이지만, 거기다 또 다시 이 진보대연합 논리가 힘을 얻으면 그 쯤 되면 그건 희극이다. 이 자들과 연합하는 건 ‘진보’가 아니라 ‘퇴보’다.

참고한 글

김규항, “난감한 풍경.”, 한겨레, 2011.03.02.(http://hook.hani.co.kr/archives/23006)
서울시민대책위, “[성명]전주버스노동자 투쟁 왜곡하는 정동영을 규탄한다.”(http://m.cafe.daum.net/civilforjeonjubus/jIij/47?listURI=%2Fcivilforjeonjubus%2FjIij%3FboardType%3D)
송경동, “아!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노무현.”, 레디앙, 2011.03.20(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21997)
심은경, “[규탄집회]전주 버스파업 방기하는 민주당은 이명박 비난할 자격 없다.”, 한국인권뉴스(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ers_news&nid=60915)
이혜정, “정동영, 복지를 말하려면 전주 파업 노동자부터 보라.”, 프레시안, 20011.02.23.(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10223152030&section=02)
이혜정, “‘밥 한끼, 소변 제대로’가 그토록 큰 바람인가요”, 프레시안, 2011.02.25.(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10225144956&section=02)
이혜정, “전주버스파업 87일, 패권싸움으로 비화되는 노동자들의 한”, 프레시안, 20011.03.04.(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10304132716&section=02)

<한겨레 훅>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