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의 항명 도대체 왜? 신문들이 분석한 ‘콩가루 청와대’
[토요판 신문읽기] 김기춘과의 갈등? 정윤회 의혹 꼬리자르기?…김영한→김기춘→문고리 사퇴로 이어지나
여러 차례 인사문제로 파동이 일어났던 박근혜 정부에서 이번엔 초유의 ‘항명 사태’가 벌어졌다.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하라는 여야 합의와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를 거부하고 사의를 표명한 것이다. 이번 사태를 두고 소위 ‘보수언론’들까지 나서서 콩까루가 된 청와대를 비판하고 대대적 인적쇄신이 필요하다고 외쳤다.
초유의 항명사태, 김기춘은 물론 박 대통령 리더십도 타격
김영한 민정수석의 항명은 전 국민에게 생중계됐다. 9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는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에 관해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야당은 청와대 문건 유출 경로와 문건 유출자로 지목된 한모경위 회유의혹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서 김영한 민정수석이 운영위에 출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수석은 불출석 사유서까지 제출하며 국회에 나오지 않았다.
이로 인해 오전 회의는 파행됐고, 결국 여야는 김 수석의 출석에 합의했다. 그러나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김영한 민정수석이 여야 합의를 거부하고, 출석하라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까지 거부한 것이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민정수석이 출석하도록 지시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출석할 수 없다는 취지의 행동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여야가 합의하고 비서실장이 지시한 것에 대해 공직자가 응하지 않는다면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김 수석이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김 실장을 향해 “(김 수석이) 응하지 않을 때 어떤 조처를 취할지 구체적으로 답하라”며 유감을 드러냈다.
항명 사태가 벌어진 이상 김기춘 비서실장의 리더십에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본인 휘하에 있는 민정수석이 상관의 지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앞선 2일 청와대 비서실 시무식에서 ‘파부침주(破釜沈舟·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 자세를 강조하며 “기강이 문란한 정부조직이나 집단은 효율적으로 일할 수 없다”고 말했던 것이 무색해졌다.
국민일보는 “김 수석의 돌발행동으로 그동안 청와대 참모진의 ‘기강확립’을 특별 주문했던 김기춘 비서실장의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며 “청와대 참모들을 지휘하는 최고책임자의 지시를 불이행한 것은 물론 사의 표명으로 대통령 국정 수행에까지 차질을 빚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 |
||
▲ 조선일보 3면 | ||
조선일보는 “9일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 항명(抗命)·사퇴(辭退)의 불똥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튈 것으로 보인다”며 김기춘 비서실장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문건 의혹과 관련해 대처를 제대로 못 했다는 질타를 받아온 김 실장의 비서실 관리 능력에 또다시 물음표가 달릴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12일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집권 3년차의 국정 수행 의지를 밝힐 예정이었다. 정윤회 문건을 둘러싼 의혹도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털어낼 계획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항명 사태로 인해 이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경향신문은 “청와대는 당황스러워했다”며 “박 대통령이 신년회견에서 유감표명이나 대국민사과 등을 할 가능성을 흘리면서 ‘비선 실세 국정개입 의혹’ 파문 출구를 모색했으나, 이런 노력들이 한방에 날아갔기 때문이다. 청와대 문건 유출자로 지목된 한모 경위 회유 의혹을 받은 민정수석실 우두머리가 국회 출석을 거부함으로써, ‘말 못할 상황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는 등 비선 실세 의혹은 외려 증폭되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경향은 이어 “국정운영 청사진을 밝히기 위해 마련된 신년회견이 청와대 기강 붕괴와 비선 실세 의혹 등 각종 부정적인 뉴스로 뒤덮일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 |
||
▲ 경향신문 3면 | ||
국민일보 역시 “이번 사태는 사흘 뒤 신년 기자회견을 앞두고 국정운영 구상에 몰두하던 박 대통령에게도 커다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회견을 통해 경제 살리기와 통일 구상은 물론 구조개혁 등 집권 3년차 ‘국정 청사진’을 제시할 예정”이라며 “그러나 바로 직전 터져버린 참모진의 돌발 사태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과 맞닥뜨린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 “12일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더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며 “박 대통령은 전·현직 비서들과 친동생이 권력기관 인사 등을 둘러싸고 권력 암투 논란에 휘말리게 된 것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인적쇄신론이 다시 등장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신문은 “청와대 김영한 민정수석의 9일 사의 표명 파문을 계기로 인적 쇄신론에 불이 붙을 것”이라 전망했다.
서울신문은 “그동안 청와대 안팎에서는 인적 쇄신론보다는 조직 개편론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비선실세 국정 개입’ 의혹을 둘러싼 논란의 단초가 됐던 ‘정보 경찰’ 조직 등을 대폭 손질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라며 “반면 김기춘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핵심 참모진을 겨냥하고 있던 야당의 인적 쇄신 요구에는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전면적인 인적 쇄신은 그동안 쏟아진 각종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청와대의 기존 입장에 역행하는 행위처럼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신문은 이어 “그러나 김 수석의 사의 파문으로 인적 쇄신 역시 일정 수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며 “일차적인 관심은 김 비서실장에게 쏠린다. 김 수석의 사의 표명이 항명 사태로 간주되고 있어 김 비서실장의 조직 장악력에 생채기를 냈기 때문이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의 거취에도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세계일보는 “그렇지 않아도 비선실세 국정개입 논란으로 고조된 청와대 인적쇄신론에 더욱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고, 한겨레 역시 “그동안 여론과 여권 내부에서 제기됐던 ‘인적 쇄신’ 및 국정운영 방식 변화 요구에 부정적이었던 박 대통령으로서도 더는 이를 무시하기 힘든 상황이 된 셈”이라고 해석했다.
한겨레는 “청와대 인사위원회 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김기춘 실장의 부실한 인사검증 문제도 거듭 도마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6월 청와대는 민정, 교육문화, 정무, 경제수석 등 4명의 수석을 교체했는데, 이 가운데 송광용 교육문화수석이 인사검증 때 허위답변을 해서 낙마했고 이번엔 김영한 민정수석이 반기를 들고 사퇴했다. 한겨레는 “세월호 참사 이후 ‘인적쇄신’ 차원에서 단행된 인사가 오히려 전보다 더 부실했던 셈”이라고 밝혔다.
김영한 수석은 왜…김기춘과의 갈등? 꼬리 자르기?
김영한 민정수석은 왜 항명한 것일까.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전해 온 이유는 ‘민정수석의 국회 출석 여부를 부각시키는 정치공세에 굴복하는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나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민 대변인은 ‘불출석 결정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는 것이 도리라고 판단했다’는 김 수석의 설명도 덧붙였다.
조선일보는 김 수석과의 통화 내용을 전했다. “내가 비서실장에 항명해 사퇴한 게 아니다. 나는 박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이고, 원칙을 지키기 위해 사퇴했다.
하지만 김 수석의 설명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검찰 출신인 김 수석은 작년 6월에 임명됐다. 문제가 된 '정윤회 문건'의 작성과 불법 유출 모두 김 수석이 취임하기 이전에 벌어진 일들이다. 그런 만큼 자신이 국회에서 이 문제로 야당 의원들의 질의와 추궁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김 수석이 직접 국회에서 민정수석실이 파악한 사건의 진상을 밝히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올바른 처신”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또한 “여당과 청와대는 당초 김 수석이 출석할 수 없는 이유로 '전례(前例)가 없다'는 점을 내세웠다. 그러나 과거 정권에서도 민정수석이 수차례 국회에 직접 나왔던 적이 있었다”며 “김 수석은 이날 국회에 보낸 불출석 사유서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로서 긴급을 요하는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둘러댔다. 청와대와 국회는 자동차로 30분 거리다. 국회에 나오기 싫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엉뚱한 핑계를 댄 것”이라고 비판했다.
![]() |
||
▲ 중앙일보 30면 | ||
중앙일보 역시 사설을 통해 “김 수석이 주장하는 불출석 이유도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노무현 정부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2003년)과 전해철 민정수석(2006년)이 국회에 출석해 증언하는 등 민정수석이 국회에 나온 적은 여러 번 있다. “전례가 없다”는 변명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는 것.
중앙은 또한 “평소 권력의 핵심부에서 주권자인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며 “국민이 궁금해 하는 걸 소상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하는 게 공직자의 자세다. 그런데 자신의 출석 요구를 정치공세라고 치부하며 사퇴로 맞섰다니 뻔뻔하기 그지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일보는 “김 비서실장의 검찰 후배인데다 검사장까지 지낸 김 수석이 단지 국회 출석 문제로 이 같은 돌출행동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풀이했다. 한국일보는 “김 비서실장의 업무방식 등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터진 것일 수 있다”는 해석을 덧붙였다.
한국일보는 “그동안 김 수석이 여권 인사들과 불화설에 휩싸인 적은 없다”면서도 “다만 김 비서실장이 사정기관들을 직접 관리한다거나 사정라인의 다른 모 인사에게 주요 업무를 맡겨 김 수석의 청와대 내 입지가 모호하다는 등의 얘기는 종종 오르내렸다”고 전했다.
![]() |
||
▲ 한국일보 4면 | ||
다른 언론도 한국일보와 비슷한 해석을 내놨다. 동아일보는 “김 실장이 이번 문건 파문 대응 과정에서 김 수석을 의도적으로 업무에서 배제했고, 김 수석의 누적된 불만이 국회 출석 요구를 받자 폭발했다”는 청와대 안팎의 관측을 전했다. 결국 “김 실장의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오를 수 밖에 없다”는 것.
동아는 “김 실장이 김 수석을 배제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았다”며 “민정수석실 안팎에선 일부 현안에 대해선 김 수석을 건너뛰고 업무 지시와 보고가 이뤄졌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이 과정에서 김 실장과 김 수석의 ‘감정’이 쌓여 왔고, 9일 사건의 한 배경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한겨레는 “박 대통령과 김 실장의 독단적인 청와대 운영 방식이 이번 김 수석 ‘항명 사퇴’의 배경이 됐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며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빌려 “(김 수석이) 청와대 문건 유출 파문의 수습과 특별감찰 등을 주도한 것은 김 실장과 우병우 민정비서관 등인데, 자신이 국회에 나가 야당 의원들의 표적이 되는 것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이번 사태를 항명이 아니라 ‘충정’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신문은 “‘항명’이라기보다는 본인이 사표를 던지고 희생함으로써 문건 파동을 덮고 대통령과 실장을 보호하려는 차원으로 봐야 한다”는 여권 내부의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친박계 의원들은 대체로 김 수석을 옹호했다. 한 친박계 핵심 인사는 “민정수석이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스스로 거취를 결정한 것 아니겠나”라며 “항명은 무슨 항명이냐. 김 실장에게도 로열티(충성심)를 보여 준 것으로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결국 정윤회 문건 사태의 ‘꼬리짜르기’라는 해석도 만만치 않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문건 유출자 중 한 명인 한모 경위를 ‘회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이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이유가 아니냐는 것. 국민일보는 “‘항명’ 차원이 아니라 박 대통령과 비서실장을 향하는 야당의 정치 공세를 자기 선에서 끊기 위한 차원”이라고 분석했다.
![]() |
||
▲ 국민일보 3면 | ||
보수언론도 ‘콩까루 청와대’ 비판
항명 사태의 원인이 무엇이든 청와대는 그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진보언론은 물론 조·중·동 등 보수언론도 콩까루가 되어버린 청와대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이번 사태는 김 수석 한 사람의 사표를 받는 것으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청와대 문건 유출 사태에 이어 김 수석의 돌출 사퇴에 이르기까지 지금의 청와대 비서실은 공직 윤리도 무너지고 기강도 땅에 떨어진 상태라는 것이 드러났다”며 “이런 청와대 비서실을 그대로 두고선 이 정권이 내건 국정 과제를 제대로 추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 역시 사설에서 “이번 항명 사태는 청와대의 인사와 소통 시스템이 단단히 고장 났다는 걸 방증한다”며 “정부와 청와대의 대대적인 인사개편을 통해 기강을 바로잡고 국정 운영의 새 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각종 개혁 드라이브에 박차를 가해 국정과제의 성과를 도출해야 하는 집권 3년차의 골든 타임을 놓치고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 “전례 없는 청와대 지휘 체계의 문란이자 기강 붕괴 사태”라고 규정했다. 동아는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두고도 “단순히 ‘찌라시에 불과한’ 문건이 청와대 밖으로 새어 나간 것이 유감스럽다는 입장 정도를 내놓을 것이라면 기자회견을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비판했다.
![]() |
||
▲ 동아일보 31면 |
'나의 글 > 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각본 논란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올해는 달라질까? (0) | 2015.01.11 |
---|---|
박대통령, 김영한 사표수리…민정수석만 세 번째 낙마 (0) | 2015.01.11 |
막나가는 새누리 “비선이 꼭 나쁜가. 좋은 비선 있다” (0) | 2015.01.10 |
김영한 민정수석, 국회 출석 거부한 채 사의 표명 (0) | 2015.01.10 |
‘문고리’도 ‘국정농단’도 말하지 말라는 새누리 (0) | 2015.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