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오늘도 갑질 비난 댓글을 달고 있나요
성추행도 갑질, 부당해고도 갑질?… 근본적 대안 고민없는 단발적 분노, “한 달이면 다 잊는다”
‘갑질’은 어느새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회현상이자 키워드가 됐다. 지난 2013년 남양유업의 ‘물량 밀어내기’로 촉발된 갑질 논란은 지난해 말 ‘땅콩회항’ 사건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언론과 인터넷게시판, SNS에는 매일 새로운 갑질이 등장한다.
2013년 남양유업의 물량 밀어내기, 그 과정에서 벌어진 영업사원의 대리점주에 대한 욕설 파문은 ‘갑질 논란’의 원조다. 포스코 임원이 비행기 안에서 라면이 익지 않았다며 승무원을 폭행한 ‘라면 상무’ 사건, 프라임베이커리 회장이 호텔 주차장에서 차를 빼달라는 직원 뺨을 때리는 ‘빵 회장’ 사건 등이 이어졌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갑질 논란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땅콩회항’ 사건을 포함해 대한항공 그룹의 각종 갑질이 불거졌다. 주차관리인이 무릎 꿇은 사진이 공개돼 논란을 빚은 ‘백화점 모녀’ 사건, 소셜커머스 업체 위메프가 인턴직원을 해고한 사건도 있었다.
그야말로 사회의 모든 병폐가 ‘갑질’로 치환되고 있다. 성추행 사건도, 부당해고 등 노동권 관련 사안도 갑질로 설명한다. 양극화 등으로 표현되던 사회갈등도 ‘갑을관계’로 표현된다. 사람들은 언론이나 인터넷 게시판 등에 올라온 갑질에 분노하고 갑질의 당사자, ‘갑’들은 대중 앞에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현상이 반복된다.
오찬호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은 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갑질의 수위가 높아지는 것’을 갑질에 분노하는 원인으로 꼽았다. 오 연구원은 “갑질이 일상에서 굉장히 세분화되어 나타나고 있기에 아무리 ‘갑’이라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는 정서가 확산된다. 얼토당토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땅콩을 매뉴얼대로 내오지 않았다고 비행기를 돌린 ‘땅콩회항’이 대표 사례다.
오 연구원은 “구조적으로 계속 갑질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난다”며 “노동자의 지위가 세분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턴, 수습, 비정규직, 감정노동자 등 누군가에게 잘 보여야만 하고, 그래야 ‘레벨 업’ 할 수 있는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갑의 횡포’가 매우 세분화 됐다는 것이다.
갑질이 폭로되고 있다는 점은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일면 긍정적이다. 잘못된 관행이 부당하고 차별적인 ‘갑질’로 인식되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양한 문제가 모두 갑질로 치환되면서 문제 해결이 어려워진다는 지적도 있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모든 현상을 갑을관계로 환원시키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문제의 기원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야하는지가 모호해진다”고 밝혔다.
노 교수는 “‘갑질’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의 문제,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부당한 대우라는 구체적인 진단이 이루어져야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을 어떻게 보장해야한다거나 최저임금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는 식의 해법으로 나갈 수 있다”며 “갑질이라는 표현은 ‘갑질하지 말자’는 식의 하나마나한 해법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고 강조했다.
최근 불거지는 갑질 논란의 특징은 외부인이 사진을 찍거나 누군가 인터넷게시판이나 SNS에 올리는 식의 폭로를 통해 알려진다는 점이다. ‘백화점 모녀’ 사건은 근처의 다른 사람이 주차관리인의 무릎 꿇은 사진을 찍어 인터넷게시판에 올리면서 알려졌고, 남양유업 사건은 욕설이 담긴 녹음파일이 유튜브에 공개되면서 알려졌다.
이처럼 갑의 횡포는 내부의 제도나 문제제기를 통해 해결되지 않는다. 대한항공의 전직 승무원들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땅콩회항’ 사건보다 더 심한 일은 비일비재했으며 언론에 화제가 된 게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찬호 연구원은 “트위터에서 갑질 논란이 터지면 사람들이 분노하지만, 정작 그 사람들이 자신의 옆에서 비슷한 일이 터지면
그렇게 분노를 표출할 수 있을까”라며 “그 회사에서는 사회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다보니 누군가 사진을 찍거나 ‘오늘의유머’
같은 데 올려야 공론화 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점에서 문제는 갑질 그 자체보다 갑질이 벌어지는 구조, 즉 은폐하고 쉬쉬하는 내부다. 오 연구원은 “갑질은 인성이 안 좋은 갑이 갑질을 하고, 소극적인 을이 이에 저항하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누가 더 착해지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누구든 갑의 위치에서는 강해지고 을의 위치에서는 약해지는 사회구조가 바뀌어야 하며, 이를 위해 관련 정책과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갑질에 대해 분노하지만 그 분노는 오래가지 못한다. 남양유업의 욕설에 분노했지만 남양유업이 결국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는 점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는 “한 달이면 다 잊혀진다”며 땅콩회항 사건의 은폐를 지시하는 대한항공 관계자의 모습이 나온다.
노명우 교수는 “우리 시대의 징후적인 현상 중 하나가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다니는 모습이다. ‘오늘은 누구를 혼내줄까’, ‘오늘의 문제 있는 인간은 누구일까’라며 사회문제를 선정적으로 대하는 태도”라며 “갑질 논란도 이런 방식의 하나로 소비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노 교수는 또한 “미디어는 매일 새로운 갑을 발굴하고 폭탄 돌리기식으로 매일 다른 갑들이 누리꾼들의 입방아에 오른다. 그렇지만 갑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논의로는 확장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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