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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보단 잘하겠지’ 했는데, 꽉막힌 남북관계

‘이명박 보단 잘하겠지’ 했는데, 꽉막힌 남북관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부터 ‘통일 대박’까지 구호만 남발… 차라리 외세를 빌려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통일대박 등 그럴듯한 구호들이 많았지만 2년 간 아무것도 이뤄진 게 없다”

심재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남긴 말이다. 박근혜 정부 2년의 남북관계를 한 마디로 요약하는 표현이다. 온갖 ‘말’은 넘쳐났지만 실제로 이행된 것은 거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진보 진영으로부터도 ‘이명박보다 남북관계는 잘하겠지’라는 기대를 받았다. 박 대통령은 2002년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과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 중간에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근혜의 대북원칙론, “이명박 정부와 다를 것 없어”

그러나 2년 간 남북관계는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에서도 실패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가장 큰 원인으로 이명박 정부 때와 다를 것 없는 ‘경직성’이 꼽힌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 대화’를 외치지만 항상 전제조건을 내걸었다. 대북원칙론이다. 이명박 정부 역시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지원하겠다’ ‘잘못을 인정하면 대화하겠다’는 원칙론을 내세웠다.

   
▲ 지난 2002년 5월 13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이 단독 면담을 하던 모습. ⓒ박 대통령 자서전
 

김진향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24일 경실련통일협회 주최로 열린 토론회 자리에서 “박근혜정부는 큰 틀에서 이명박정부의 남북대결주의 기조를 계승했다”며 “그 상징인 5.24조치 계승과 남북간 군사적 대립과 적대의 기조가 유지, 확대됐다”고 평가했다.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는 “이명박정부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6·15 공동선언’, ‘10·4선언’ 이행 의지가 높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전 원장은 “류길재 통일부장관은 6·15와 10·4 남북공동선언의 약속을 존중한다고 언급 했지만 이 말의 앞에는 항상 핵문제 해결 이후라는 단서가 달려있다”고 설명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란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남북간 신뢰를 형성함으로써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며 나아가 통일 기반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신뢰 프로세스는 ‘남북대화를 위해서는 “먼저 북측이 변해야 한다”는 기본인식의 전제에서 출발했다”며 “북측에 제기한 ‘진정성 있는 변화’란 결국 조건 없는 ‘선 핵포기’“라고 평가했다. 북한 입장에서 핵 포기는 군사적 항복, 체제생존 포기를 뜻하기에 ‘신뢰프로세스’란 결국 ‘핵 포기하면 경제성장 시켜주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기조와 다를 게 없다는 것.

전현준 원장 역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정책을 보면, 6·15선언에 언급된 대로 남과 북이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는 형태로 통일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다. ‘비핵개방 3000’과 다를 바 없는 ‘선 핵폐기․후 통일’을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진향 교수는 박 대통령이 집권 2년차에 제기한 ‘통일 대박’과 ‘드레스덴 선언’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통일대박론에는 통일의 구체적 비전, 절차, 방법이 없다. 통일이 되면 경제적으로 좋아진다는 주장만 있을 뿐이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3월 28일 발표한 드레스덴 선언 역시 북핵포기를 전제로 한 재정지원, 사회간접자본 구축 지원, 민간사업 지원 등이 골자다.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와는 다르다는 평가도 있다. 남문희 시사IN 한반도전문기자는 2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남북관계 이전에 분단의 평화적 관리가 1차적이다. 분단체제에서 잘못하면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라며 “이명박 정부는 분단국가의 정부로서 가장 기본적인 철칙조차 지키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남 기자는 “반면 박근혜 정부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대결주의로 갈 생각이 있는 것 같진 않다”며 “취임 초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서 발이 묶여버린 면이 있다”고 말했다. 남 기자는 “남북관계를 해결하고자 하는 생각은 있는데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 지난해 3월 28일 독일 드레스덴 선언 당시 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
 

통일부 장관 교체, 남북관계 해법 보일까

결국 현실적인 해법은 정부가 대북정책 기조를 바꾸는 방법뿐이다. 경실련통일협회가 지난 2014년 5월 전문가 113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 91.15%가 5.24조치를 해제 또는 완화해야한다고 답했고, 86.41%가 그 방법으로 ‘남한의 우선적 5.24 조치 전면해제 또는 완화’를 선택했다. ‘북한 사과 후 5.24조치 해제’를 선택한 전문가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변화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1월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언급했다. 그러나 전제조건이 붙었다. “대화를 통해서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진정성 있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 비핵화가 전혀 해결이 안 되는데 평화통일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덧붙인 것이다.

이완구 국무총리 역시 25일 국회대정부 질문에서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계획은 무성한데 아무것도 이루어진 게 없다’는 심재권 의원의 지적에 이 총리는 “열심히 해도 북의 태도가 전제돼야만 진정한 의미의 남북관계의 여러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통일부 장관 교체를 통해 대북정책 기조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류길재 장관은 취임 초기 ‘남북대화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으나 2년 동안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통일부가 청와대에 끌려다니며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다. 통일정책조차 ‘통일준비위원회’가 주도한 것이 대표 사례다.

박 대통령은 류 장관의 후임으로 홍용표 대통령 비서실 통일비서관을 임명했다. 그러자 대북정책 변화는 글렀다는 말이 나왔다. 류 장관보다 박 대통령의 의중을 더 파악하고 있는 인사라는 평가 때문이다.

한 통일부 출입기자는 “류길재 장관의 통일부도 제 목소리를 못 내지 않았나. 대통령 비서관을 했던 사람이 임명되면 지금보다 더 할 것”이라며 “남북관계에 있어 독자적 목소리를 내기보다 박 대통령의 의지가 관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기자는 “통일부는 이명박 정부 때보다 더 쪼그라들었다. 그 때는 정치인 출신들이 통일부에 들어가면서 정무적 감각이라도 있었다”며 “남북관계를 청와대에서 총괄하려고 하니 통일부는 전혀 목소리 낼 수 없다. 앞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변하지 않는다면 개선될 가능성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엇박자 나는 남북관계…차라리 ‘외세’ 도움 받아라

남북이 대화가 안 되는 근본적 이유는 남북의 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은 한미 군사훈련 중단, 삐라중단 등 정책 변화를 요구하는데 한국 정부는 이산가족, DMZ 평화공원, 공동행사 등 이벤트를 이야기하니 핀트가 안 맞는다는 것.

권태진 GS&J 인스티튜트 북한동북아연구원장은 “남북한 사이에 대화가 되기 위해서는 상호 관심을 가질만한 의제가 제시되어야 하는데 줄 곳 엇박자를 내고 있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남북 간에 풀 수 없다면 ‘외세’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5월 9일 2차 세계대전 승전70주년 기념행사에 김정은 위원장을 초청했다. 푸틴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도 초청했다. 박 대통령이 응한다면 모스크바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남문희 기자는 “소련은 70년대 동서독 정상회담에서 큰 역할을 했는데, 러시아가 그 패턴을 남북한에도 적용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가스관 연결 등 한반도에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남 기자는 “과거 동서독 정상회담의 성공을 서독 ‘동방정책‘의 성공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소련의 역할이 컸다. 분쟁국가가 자신들의 힘으로 문제를 풀기 어려울 때 누군가 중재를 할 수도 있다”며 “보기에 따라 러시아가 우리에게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바닥까지 떨어진 남북관계의 상황을 고려하면 당사자들끼리 문제를 풀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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