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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트 대사 피습과 사드 배치가 대체 무슨 상관?

리퍼트 대사 피습과 사드 배치가 대체 무슨 상관?

새누리당의 김기종 활용법… 테러방지법에 국회 기자회견 금지, 엉뚱한 기초생활수급 비판까지

김기종씨의 마크 리퍼트 대사 피습사건의 파장이 엉뚱한 방향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여당의 대응은 ‘투트랙’이다. ‘종북 숙주’론을 주장하며 이번 사건을 야권과 엮는 동시에 사드(미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테러방지법 등 관련 사안들을 밀어붙이는 전략이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1일 최고위원 및 중진 연석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난번에 말한대로 정책 의원총회를 열어 비공개로 (사드 도입에 대해) 토론하겠다”고 밝혔다. 15일 열릴 당‧정‧청 정책조정회의에서도 사드 도입이 의제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미국과 협의한 바 없다고 밝혔지만, 유승민 원내대표 및 원유철 정책위의장 등 여당 지도부가 나서 사드에 대한 논의에 불을 지피고 있다. 유 원내대표 등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사드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사드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본격화된 것은 최근 리퍼드 대사 피습사건이 벌어진 직후다.

그러나 미국 대사가 피습당한 사건과 사드 도입 배치는 별개의 사안일뿐더러, 공감대를 얻기 힘들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도 아직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여당에서 ‘사드 도입’을 주장하는 것이 협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김성수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10일 브리핑에서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 이후 새누리당이 사드 도입의 필요성을 들고 나오고 있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한 태도”라며 “대사 피습 사건과 사드 도입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미국에 대한 미안함으로 성급하게 결정할 문제가 결코 아니다”고 강조했다.

정의당도 같은 날 정책논평을 통해 “무슨 황제의 칙사가 공격을 받아 천자의 분노를 사지 않기 위해 막대한 금은보화를 안겨줘야 할 것처럼 하는 태도는 21세기 국제질서에도 맞지 않고, 우리의 외교와 안보 이익을 크게 해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불똥은 ‘테러방지법’이다. 지난달 16일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은 대통령 소속 국가대테러대책회의를 설치해 총리가 의장을 맡아 중앙행정기관의 대테러활동을 총 지휘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장 소속의 ‘테러통합대응센터’가 국내외 정보수집과 분석, 테러위험 인물 추적 및 조사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해 국정원에 힘을 실어준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새누리당은 리퍼트 대사 피습 이후 테러방지법 제정을 외치고 있다. 법을 발의한 이병석 의원은 9일 기자회견을 열고 “마크 리퍼트 대사를 테러한 김기종씨는 요주의 인물이었음에도, 별도로 관리할 법적 근거가 없다보니 사전에 테러를 예방할 수가 없었고, 결국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 ‘테러취약국’이라는 민낯을 드러내고 말았다”며 “당­정­청 모두가 머리를 맞대어, ‘테러방지법안’ 통과에 온 힘을 쏟아 부어, 더 이상 제2의 마크 리퍼트 대사와 같은 테러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여야 주례회동에서 테러방지법을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자고 요구했지만 (야당이) 미온적인 태도”라고 밝혔다. 테러방지법이 4월 임시국회의 주요 의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하는 말이다.

야당은 ‘국정원 정치공작 지원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서영교 새정치연합 원내대변인은 12일 “새누리당이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사드 정책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대테러 방지법 이야기도 했다”며 “‘대테러방지법’은 사이버 혼란이 있을 때 국정원에 모든 권한을 주자는 법안이다.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과한 입법이라서 폐기되었던 법안을 다시 들고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여당이 사드 배치에 테러방지법까지 거론하면서 리퍼트 대사 피습을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의당은 “리퍼트 대사 피습에 대한 정부여당의 악용이 도를 지나치고 있다”며 “정부와 여당이 ‘리퍼트 피습’에 대해 현재의 고루한 입장과 정책으로 대처하는 것은 다가오는 재보선 승리, 야당과 시민의 반대를 무릅쓴 보수적 개혁 드라이브를 강행하려는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노동당도 10일 논평을 통해 “테러방지법 제정에 사드 배치까지, 리퍼트 대사 피습사건이라는 떡을 대체 얼마나 나눠먹으려는 것인가. 국민이 새누리당에게 바라는 것은 그런 식의 ‘오병이어’가 아니다”고 밝혔다.

피습사건의 불똥은 어디까지 튈까. 다소 황당해 보이는 주장까지 이어가고 있다. 김기종씨가 국회 정론관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국회 정론관 사용 규칙을 바꿔야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김기종씨가 과거 야당 의원들과 함께 정론관 기자회견에 참석했다는 것이 이유다.

한선교 새누리당 의원은 9일 “논란이 많은 특정단체 및 회원들도 국회의원만 잘 만나게 되면 사전 보안 검열 없이 무방비로 국회에서 자유롭게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한다는 것은 제2의 김기종 사태가 나올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는 것”이라며 “현 국회 기자회견장 운영지침을 개정하여 외부단체나 외부인이 아무 보안 대책없이 국회 정론관을 사용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기종이 미 대사를 피습한 것이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한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정론관 기자회견 덕분에 김기종이 피습할 수 있었다는 뜻일까. 또한 김씨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시민들이 국회에서 기자회견할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무리한 시도로 보인다.

   
▲ 채널A 갈무리
 

황당한 ‘연결고리’는 또 있다. 김민철 조선일보 사회정책부 부장은 10일 데스크칼럼 <기초생활수급자 김기종> 에서 김기종씨가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점을 문제 삼았다. 김 부장은 “김기종 같은 건장한 남자에게 무조건 기초생활 수급 자격을 주는 것은 아니다. 기초생활 수급자 선정에 뭔가 허점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 멀쩡한 사람이 일하지 않고 기초생활 혜택을 계속 받으려고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을 받아온 제도”라며 “이번 기회에 기초생활 수급자 선정에 허점이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볼 필요도 있다”라고 말했다. 김씨가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제도를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 정부와 언론은 이번 사건에 대해 ‘테러’라는 표현 대신 ‘무분별한 폭력’ ‘공격’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반면 여당과 몇몇 언론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사안들까지 엮어 공격하고 있다. 이러다 김기종씨가 입었던 개량한복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