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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새와 피닉제, 정동영까지, 정치 철새들의 계보

김민새와 피닉제, 정동영까지, 정치 철새들의 계보

[뉴스분석] 13번 바꿔도 살아남은 이인제, 1번 바꿨다 사라진 김민석… 정동영의 마지막 승부수는 먹힐까

“나보고 철새라고 하지만 나는 정확한 노선을 가지고 날아가는 새다”

4.29 재보선 관악을 출마를 선언한 정동영 국민모임 인재영입위원장은 지난 1일 기자들과 오찬 자리에서 ‘철새론’을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철새’라는 말은 정치인 입장에서 가장 치명적인 오명중 하나다. 

‘철새’란 이해관계에 따라 당적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정치인을 뜻한다. 이 과정에서 연고도 없는 지역구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도 하고 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면 당을 나가 당선된 다음 다시 당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어머니 정동영입니다’ 새정치국민회의부터 국민모임까지

당적으로만 보면 정동영 위원장의 이력은 화려하다. 정 위원장은 1996년 15대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전주 덕진에 출마해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정 위원장은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 총재 특보, 청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정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 들어 열린우리당이 창당하자 민주당을 떠나 열린우리당에 합류했다. 이후 당 의장을 맡았고,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합당해 만든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했다.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으나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했다. 정 위원장은 이후 2008년 총선에서 서울 동작구에 출마하지만 정몽준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했다.

정 위원장이 ‘철새’라는 비판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2009년 재보선 선거 때문이다. 당이 공천을 주지 않자 정 위원장은 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전주 덕진에 출마해 당선된다. 당시 정동영 후보의 플랜카드에는 ‘어머니, 정동영입니다’라는 문구가 담겼다. 집(전주)을 나가 여러 곳을 방황했던 아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는 의미를 함축하는 문구였다. 그는 당선 이후 2010년 민주통합당으로 복귀했다.

정 위원장은 2012년 총선에 서울 강남구에 출마하지만 김종훈 새누리당 후보에게 패했다. 정 위원장은 이후 2015년 새정치연합을 탈당해 ‘국민모임’에 합류하고, 관악을 재보선 선거에 출마하기에 이른다. 

정 위원장 측은 ‘철새’라는 비판을 매우 억울해하고 있다. 정 위원장이 당적도 지역구도 옮긴 게 맞지만 이익이 아니라 노선을 따라 움직였다는 것이다. 실제 정 위원장은 야당에서 여당으로, 여당에서 야당으로 옮겨간 일은 없다. 

정동영 위원장 대변인을 맡고 있는 임종인 전 민주당 의원은 “새누리당은 철새라고 말할 수 있지만 민주당은 그러면 안 된다. 안 나간다는 동작 나가라고, 강남도 (당에서) 나가라고 해서 나갔다”며 “이익을 쫓아다닌 사람이 철새지, 당을 위해서 옮겨 다닌 사람이 철새냐”고 지적했다.

철새 계의 시조새 이인제, 14번 바꿔 6번 살아남다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철새 정치인 계의 ‘시조새’다. 당적만 13번을 옮겼고, 무소속까지 더하면 14번이라는 깨기 힘든 기록을 남겼다. 당을 이렇게 옮기면서도 6번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돼 ‘피닉제’ ‘불사조’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는 여당에서 야당으로, 야당에서 여당으로, 또 지역정당으로 옮겨 다녔다. 당을 만들기도 했다. “진보정당에만 들어오면 그랜드슬램”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이 의원은 88년 13대 총선에서 통일민주당 소속으로 경기도 안양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93년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97년 대선에서는 당 내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패하자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에 출마한다.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면서, ‘정권교체의 주역’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정권이 교체되자 그는 새정치국민회의로 당적을 옮긴다. 대선후보에 다시 도전했으나 2002년 노무현 후보에게 패했고, 그러자 탈당해 이회창 후보 지지선언을 한다.  

   
▲ SBS 뉴스 갈무리.
 

여당과 야당을 오가던 이 의원은 이번엔 지역정당을 찾는다.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는 자민련(자유민주연합) 소속으로 17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이 의원은 18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고, 2005년 국민중심당을 창당했으나 2007년 다시 탈당해 민주당으로 향한다. 

2008년 공천에서 탈락한 이 의원은 무소속으로 충남 논산에 출마해 당선되는데. 이 때 27.7%의 득표율을 얻으면서 최저 득표율의 주인공이 됐다. 이어 그는 2011년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자유선진당에 입당하고, 이회창 전 의원과 함께하게 된다. 자유선진당이 새누리당(구 한나라당)과 합당하면서 이인제 의원은 새누리당 소속이 됐다.

이 의원은 지난 2일 YTN ‘신율의 출발 새 아침’에 출연해 정동영 위원장과 자신을 비교하는 질문에 대해 “나하고 비교를 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나는 국민의 큰 여론에 따라서 움직이다 보니까, 또 저의 노선이나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 어려운 길을 많이 걸었다”고 답했다. 

중앙정치에 이인제 의원이 있다면 지방정치엔 우근민 전 제주지사가 있다. 그는 95년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무소속 신구범 후보에게 패했다. 그러자 98년 새정치국민회의로 당적을 옮겼고 제주지사가 됐다. 이후 재선에 성공했으나 선거법 위반으로 낙마했다. 

우 지사는 2010년 다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를 시도했으나 성희롱 전력이 문제가 되자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우 전 지사는 지난 2013년 다시 새누리당 행을 택했다. 15년 만에 새누리당으로 돌아온 셈이다. 

   
▲ 이회창 전 의원이 2007년 대선 당시 판도라TV ‘칭찬합니다’ 릴레이에 출연해 이인제 의원을 칭찬하는 모습. 판도라TV 갈무리
 

한 번의 잘못된 선택, 차세대 리더에서 ‘김민새’로

이렇게 당적을 여러 번 바꾸면서도 살아남은 불사조가 있는 반면,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정치무대에서 사라진 정치인도 있다. 김민석 전 민주당 의원이다. 김 전 의원은 30대에 2000년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하고, 2002년 서울시장에 출마해 많은 표를 얻으면서 차세대 정치리더로 주목받았다.

김 전 의원은 그러나 2002년 대선 국면에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질 무렵 탈당하고,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를 지지해 당 안팎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김민새’(김민석+철새)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로 단일화가 결정되고 정몽준 후보가 노무현 지지를 철회하면서 그의 탈당은 명분을 상실했다. 김 전 의원은 그 이후로 재기에 실패했다. 

여당에서 야당으로, 손학규와 윤여준

손학규 전 의원도 철새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않은 정치인이다. 한나라당에서 3선 의원을 지내고 경기도지사까지 했던 손 전 의원은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향한다. 당시 손 전 의원은 한나라당 내에서 이명박 후보, 박근혜 후보에 이어 대선 후보 지지율 3위였다. 당에서 입지가 좁아지자 당적을 옮겼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역구도 여러 차례 옮겼다. 14대, 15대 총선에서는 경기 광명에서 당선됐으나 2011년 재보선에서는 한나라당의 텃밭이라 불리던 성남 분당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그러나 2014년 7.30 재보선에서 경기 수원에 출마했다가 패배하면서 정계를 은퇴했다. 수원에 출마했을 때 새누리당은 손학규 전 의원을 ‘정치 철새’라고 강하게 몰아붙였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양당으로부터 모두 ‘철새’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회창 총재 시절의 한나라당에서 정치를 시작한 그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전까지 안철수 의원을 도왔다. 그러다 2012년 대선 때는 문재인 후보 찬조연설을 했다. 대선 이후에는 안 의원이 주도하던 ‘새정치추진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윤 전 장관은 이에 대해 지난해 1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나는 추운 겨울철 먹이를 구하러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는 철새처럼 먹을 걸 찾아서 어디를 간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도 몸담았던 당을 박차고 나오고 당을 합치기도 했지만 그들을 철새라고 부르진 않는다. 이회창 전 총재도 마찬가지”라며 “당을 옮기더라도 대중이 이해를 해주는 경우는 철새라는 딱지가 붙지 않는데 대중이 개인적 이해관계에 따라, 노선과 정치 구조의 문제와 관계없이 당을 옮겼다고 보면 철새라는 욕을 먹는다”고 설명했다.

최영일 평론가는 또한 “정당의 힘보다 개인의 힘이 더 강할 때, 인물이 파워가 있을 때 당을 해체시키든 흡수하든 창당하든 대중은 그 인물에 대해 철새라고 부르지 않는다”며 “정동영 위원장의 경우 관악 유권자들이 그를 큰 인물, 노선 가치를 고집한 인물로 봐주느냐 아니냐에 따라 철새가 될지 좋은 기회를 잡을지 그 갈림길에 있다. 결국 철새다 아니다는 정치인 스스로 입증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