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잃은 자들의 눈물, “국가가 우릴 벌레 보듯한다” |
[현장] ‘4·16 약속의 밤’ 광장 가득채운 시민들 “1년 지나도 그래도, 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에” |
세월호 1주기 추모행사가 분노의 함성과 울음소리로 뒤섞였다.
16일 오후 7시 서울 시청광장에서 4·16가족협의회와 4월16일 약속국민연대가 주최한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행사인 ‘4·16
약속의 밤’ 행사에 7만여명(주최측)이 모인 가운데 단원고 최윤민 언니 최윤아씨는 “1년전 오늘 2014년 4월 16일 저희는
동생들이 죽어가는 것을 생방송으로 지켜봐야했습니다. 제발 저희들이 죽어가는 것만은 지켜보지 말아주세요”라고 호소했다.
이어 최씨는 “제발 이 나라에서 숨 쉴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저희가 내민 손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세월호 좀 인양해주세요. 저는 실종자 다윤이의 언니를 볼때마다 죄책감이 듭니다. 시행령을 폐기해주세요”라고 말했다.
최씨는 “대통령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가화만사성이란 말을 아시나요. 가족이 화목해야 밖에 일이 잘 돌아갑니다. 대통령님 이 나라는 너무 병들어 있습니다”라며 “당장 아이가 죽어가는데 밖에 일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제발 뭐가 먼저인지 우선순위를 다시 정해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시간은 멈춰있었다. 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양승진, 고창석, 권재근, 권혁규, 이영숙. 9명의 이름이 시청광장에 울려 퍼지자 촛불 대신 국화꽃을 든 시민들은 최씨의 호소에 눈물을 훔치면서 광장은 일순간 눈물바다로 변했다.
살아남은 가족은 하루 하루 악몽에 시달렸다. 단원고 김민정 엄마 정정임씨는 영상을 통해 “수학여행가기 전에 갑자기 민정이가 그랬다. 배타고 가다죽으면 아무도 모를 수도 있다. 우리 식구들은 배를 타본 적이 없어서 안전 수칙을 몰랐다. ‘그래도 큰 배가 설마 사고가 날까.’ 엄마라는 내가 대답을 한다는 게 구명조끼 입고 가만히 있으면 와서 도와줄 거라고, 쓸데없는 소리한다고, 구명조끼입고 가만히 있으라고”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자식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다는 바람으로 1년을 버텼지만 공허한 메아리만 남았다. 4·16가족협의회 전명선 위원장은 “지금까지 우리가 국가에 그토록 가슴 터지게 절규하며 외쳤던 것은 진상규명을 제대로 해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세월호를 인양해 실종자를 찾자는 것”이라며 “오늘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 위패와 영정 앞에서 국가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우리는 끝내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외쳤다.
전 위원장은 “오늘 우리는 (국가의) 정확한 답변을 들은 것”이라며 “고귀하게 희생된 259명의 영정과 9명의 실종자들이 우리에게 남긴 사명과 숙제를 위해 철옹성 같은 청와대의 답변을 듣는 그날까지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남은 자는 떠난 자에게 한없이 미안했다.
“섣부른 희망을 이야기 하지 말라. 어른들이 아이를 죽였다. 국가가 국민들을 산채로 수장시킨 것이다. 캄캄한 바다 속에 너희들을 묻어놓고 이 비겁한 아빠는 아직 숨이 붙어있구나.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고 있구나”(유용주 시인)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끝내 눈물을 보이면서 분노를 쏟아냈다. 허다윤 양 아빠 허흥환씨는 “1년이 되도록 정부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저 차디찬 세월호 어두 캄캄한 곳에는 실종자 사람이 있습니다. 근데 저들은 벌레보듯 하고 있습니다. 저는 미치도록 보고싶습니다”라고 말을 잇지 못하자 시민들은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시청 광장은 세월호의 아픔을 노래하는 소리로 가득찼다.
“제발 꿈이라면 좋겠어. 숨죽인 기도의 노래도 부서지는 파도를 따라 아무 흔적도 없이 흩어져 버려. 기적을 바랬지만 생명을 원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대답 없는 꽃이여. 천국이 있다면 꿈의 소풍을 떠나 그곳에서 부디 행복하여라.”(가수 안치환 ‘꿈의 소풍을 떠나 부디 행복하여라’)
“이제 4월은 옛날의 4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는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다. 눈물을 털고 일어서자고 쉽게 말하지 마라. 하늘도 알고 바다도 아는 슬픔이었다. 화인처럼 찍혀 평생 남아있을 아픔이었다. 죽어서도 가지고 갈 이별이었다.”(노래패 우리나라 ‘화이’)
이날 추모제에는 유난히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유모차를 끌고 온 아이 엄마‧아빠들이 눈에 띠었다. 이들은 ‘1년이 지났는데 바뀐 게 있는 것 같나’라는 질문에 하나 같이 “변한 것도 해결된 것도 아무것도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고등학교 3학년 고승원씨는 추모제 참가를 위해 학원 선생님, 학원 친구들과 함께 충청도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고씨는 “죽은 학생들과 동갑이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동갑인 친구들의 죽음에 크게 슬퍼하는 분위기”라며 “세월호 사건에 관심이 많아서 집회가 있을 때마다 친구들과 함께 서울에 왔고, 진도 팽목항에도 여러차례 다녀왔다”고 말했다.
고씨는 “1년이 지났는데 해결된 것도 없다. 한국사회는 그대로”라며 “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은 “1년이 지나도록 해결된 게 하나도 없다. 처음엔 슬펐다가 분노가 일었고. 이제 허탈하기까지 하다”며 “2년 쯤 지나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 같다”고 말했다. ‘왜 2년이냐’고 묻자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야 해결되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가 “유가족들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만나지도 않으니까”라고 거들었다.
서울에 사는 30대 김익환씨 부부는 유모차 두 대를 끌고 집회에 참여했다. 1살, 2살, 3살 세 아들과 함께 온 김씨는 “아이들이 죽었을 때, 내 아이 일 같아서 매일 울었다. 1년이 지나도 잊지 못하고 나왔다”며 “그런데 그동안 해결된 게 전혀 없다. 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밝혔다.
한국 여행 중에 행사를 찾은 외국인들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호주에서 온 아드리아노 코텔시(52)씨는 “몇년 전에 호주에서 산불이 났는데 그건 자연재해였다. 60명 가량이 사망했다. 그때 호주 정부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미흡하게 대처했다”며 “하지만 한국 정부처럼 사건을 덮으려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리고 세월호는 피할 수 있었던 사고였다고 생각했다. 호주의 산불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헤더볼트(57)씨는 “처음에는 배가 뒤집혀서 구조하고 있다는 뉴스를 봤고 하루 지나서 배가 침몰해 300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며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지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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