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건 성공보수 무효" 대법 판결 늦게 보도된 이유는
대법원 판결에 걸린 엠바고, 기자들 편의 때문? “오판과 편의 겹칠 경우 폐해 크다” 지적도
대법원이 형사사건의 성공 보수는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변호사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중요한 판결이었으나 이 판결 내용은 판결 다음 날인 24일에야 언론에 보도됐다. 당일 SNS에 알려졌던 것에 비하면 하루 늦은 소식이었다. 대법원 판결이 하루가 지나서야 언론에 보도된 이유가 무엇일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23일 형사사건의 성공 보수는 무효라는 결정을 내렸다. 변호사들이 형사 사건을 맡을 때 소송에서 이기거나 의뢰인이 석방되면 착수금 이외에 성공보수 명목으로 돈을 더 받곤 했는데, 대법원이 성공보수를 받아선 안 된다고 결정한 것이다.
대법원은 “특정한 수사방향이나 재판의 결과를 ‘성공’으로 정해 대가로 금전을 주고받기로 하는 변호사와 의뢰인의 합의는 선량한 풍속 내지 건전한 사회질서에 위반된다”는 점을 이번 결정의 이유로 제시했다.
형사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변호사들에게는 큰 영향을 미칠 중대한 판결이었다. 그간 성공보수금은 사건의 난이도와 변호사 경력 등에 따라 제각각 책정돼 왔고, 판사나 검사 출신 ‘전관’들의 경우 높은 성공보수금을 받아왔다. 이에 따라 선고가 난 23일부터 인터넷과 SNS를 통해 이러한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나 이에 대한 언론보도는 하루 늦은 24일 12시가 넘어서야 등장했다. ‘엠바고’ 때문이었다. 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는 23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오늘 ‘형사사건에서 성공보수약정은 무효’라는 대법원판결이 전원합의로 나왔습니다. 이거 엄청난 뉴스”라며 “근데 진짜 웃기는 건 판결이 나왔는데도 기사가 뜨지 않는다. 기자실에서 엠바고 걸었단다”고 밝혔다.
법조 출입 기자들에 따르면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출입기자단이 원칙적으로 15일 간 ‘엠바고’를 건다. 대법 판결에 대한 엠바고는 왜 존재하는 걸까. 한 법조출입기자 A기자는 “선고 전에 미리 선고날짜가 뜨면서 선고사건 목록도 같이 공지된다. 근데 선고되는 판결이 너무 많다”며 기자들의 ‘편의’를 엠바고의 이유로 꼽았다.
A 기자는 “중요한 사건들은 기자단 논의를 거쳐 즉시처리로 푼다. 이석기 재판이나 원세훈‧김용판 사건 등은 속보를 써야하는 즉시처리대상”이라며 “남은 사건들은 원칙적으로 15일 간 엠바고가 걸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법원 같은 경우 1심도 있고 2심도 있고, 과거사 재판의 경우 재심 상고심도 있으니 판결문이 많다. 기사 하나 쓰는데도 굉장히 오래 걸리고 확정판결이기에 잘못 썼다가 소송 당하면 100% 진다”며 “확정판결이니 주의해서 조심해서 정확하게 써야하기에, 이런 여러 가지 사정상 엠바고가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엠바고로 15일이 잡히는 이유는 보통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대법원 소부가 2주에 한 번씩 선고를 하기 때문이다. A기자는 “지난주 목요일에 소부선고가 있었고, 2주일 뒤 새로운 소부선고가 있다고 치면 그 2주 사이에 엠바고를 걸어둔 소부선고를 하나씩 처리 한다”며 “엠바고를 배분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기자들의 편의를 위한 엠바고가 ‘담합’으로 작용하면서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인섭 교수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국민의 알권리는 기자들의 엠바고 담합으로 간단히 무시한다. 기자와 업체를 위한 언론통제, 이 같은 창피한 편의주의 카르텔은 깨어져야 한다”며 “기자는 담합이 아니라 경쟁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기자들이 선고가 내려지지마자 기사를 쓰면서 벌어지는 경쟁을 피하기 위해 엠바고를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A 기자 역시 “기자 윤리나 직업적인 측면에서 보면 엠바고를 걸면 안 된다. 나오면 바로 바로 쓰는 게 기자가 할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사건은 소부사건도 아니고 보통 즉시처리하는 전원합의체 판결이었기에 문제제기가 가능하다”며 “하지만 법조 기자들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피치 못할 사정도 있다. 엠바고를 깨면 출입정지 등 중징계를 맞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기자단 간사 경험이 있는 이범준 전 법조전문기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대법원 판결에 대한 15일간 엠바고 제도는 매우 부적절하고 부당한 것이며, 특히 기자들의 편의와 오판이 겹쳐질 경우 그 폐해는 이루 말로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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