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가 제2의 ‘교학사 교과서’인 3가지 이유
국정교과서 강행하면…친일독재 미화에 날림 제작으로 외면받은 교학사 교과서 꼴 난다
정부가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발행체제를 국정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하고, 발표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교육부는 11일 당정협의를 거쳐 12일 국정화 방침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정부의 국정교과서 강행에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따라서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강행할 경우 몇 가지 문제점이 야기될 것으로 보인다. 국정교과서의 미래는 지난 2013년 교학사 교과서가 보여줬다.
1. ‘편향’될 수밖에 없는 국정교과서
정부여당은 국정교과서의 필요성으로 기존 교과서의 ‘좌편향’을 문제 삼는다. 공천 룰을 두고 다투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친박 계가 하나가 됐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치적 편향에 의해 역사관을 왜곡하는 지금의 교육현실을 바로잡고자 하는 게 국정교과서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친박 계인 이정현 최고위원은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교과서에 편향을 가져온 역사교과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에 대한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가 필요하다”며 국정조사까지 제안했다.
하지만 정작 국정교과서가 편향된 교과서가 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박수현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9일 브리핑에서 “많은 국민은 국정화를 강행하는 의도가 결국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려는 것이라 믿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우려에 대해 정부여당은 ‘편향된 교과서는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김무성 대표는 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친일·독재를 미화할 거라는 주장은 사실 호도”라고 주장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진보 혹은 보수 편향 논란이 일지 않도록 다양한 집단의 의견을 물어 집필진을 구성할 것’이라 밝혔고, 교육부는 편찬과정에서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강조했다.
그 러나 학계가 국정교과서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상황에서 누가 집필진으로 들어가 의견을 내려할 지도 의문이다. 역사학과 교수 1100여명이 국정교과서 반대 성명을 발표했고 역사학계 원로, 학부모단체는 물론 한국사 교과서 집필기준을 개발하던 연구진마저 국정화 반대입장을 밝혔다.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등 일부전문가들은 집필 보이콧까지 선언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교과서를 강행한다면 집필진은 국정교과서에 찬성하는, ‘우편향’된 연구자들로 꾸려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진보나 중도적 시각을 지닌 연구진이 대거 불참하면서 정부여당이 내세우는 ‘균형잡힌 교과서’의 길은 요원해진다. 국정교과서가 지난 2013년 친일독재 미화 논란을 일으켰던 교학사 교과서의 길을 걷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2. ‘날림 제작’ 피하기 어려운 국정교과서
박근혜 대통령은 현행 검정교과서의 문제점으로 사실 오류를 제기했다.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에 많은 사실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고교 한국사 검정심사 기간은 4개월에 불과했다.
하지만 국정교과서야말로 날림으로 제작될 가능성이 높다. 교육부는 한국사 교과서를 2017년 3월부터 중‧고등학교에 보급할 계획이다. 교과서가 만들어지면 한 학기 이상 연구학교를 선정해 시범 적용을 거쳐야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어도 내년 2학기에는 교과서가 완성돼야 한다. 남은 기간은 10개월 남짓이다.
게다가 학계의 대다수가 국정교과서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집필진을 구하는 과정도 난관에 부딪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교과서 제작기간이 2~3년이라는 점에서 이번에 만들어질 국정교과서는 집필기간, 심의‧수정 과정을 간소화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보수언론조차 국정교과서 전환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8일 사설에 서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는 1년 반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이 모든 난관을 뚫고 국민이 바라는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게 어렵다면 기존의 검정 교과서를 바로잡는 장치를 강화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교과서 서술 지침을 세심하게 정하고 이를 집필에 철저하게 반영했는지 심의를 강화하는 것만으로도 교과서의 많은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13년 교학사 교과서 역시 날림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사실관계 오류가 수백 가지에 달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불량교과서’라는 오명을 쓰게 됐고, 사진 출처를 ‘네이버’ ‘구글’이라고 밝히는 등 출처조차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당시 교학사 교과서의 집필진이었던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수정해야 할 점이 있다고 보고, 지적된 부분을 적극 수용할 것이다. 집필기간이 다른 교과서보다 짧았다”면서도 “시행착오가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믿을 수 없는 교과서라고 말하는 건 과장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 ||
3. 현장에서 외면 받을 국정교과서
설사 어렵게 집필진을 구해서 10개월 만에 교과서를 뚝딱 만들어낸다 해도 국정교과서 학교 현장에서 보이콧에 부딪칠 가능성이 높다.
교육감들도 국정교과서에 반대하고 있다. 전국 14개 시‧도 교육감들은 한국서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긴급성명을 통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주장은 역사교과서를 정상화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역사교육의 파행을 가져와 역사교육을 비정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지난해 교육감선거 당시 후보들에게 정부가 국정화를 강행할 경우에 대한 대응방안을 질의했는데, 당시 몇몇 후보들은 국정교과서 대신 대안교재를 사용하겠다고 답했다. 진보 교육감들에 의해 국정교과서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교사들이 교과서를 보이콧하면서 국정교과서가 외면 받을 가능성도 높다. 김태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9월 4일부터 8일까지 전국 중·고교 사회과 교사 2만4천195명을 대상으로 국정화에 대한 찬반 의견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8%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9월 5일부터 9일까지 전국역사교사모임 소속 현직 역사교사 10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역사교사들 98.6%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동의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국정교과서를 채택한다 해도 교사들이 교과서를 제쳐두고 다른 참고자료나 교재를 활용하는 것까지 막기는 어렵다.
교학사 교과서도 비슷하게 외면을 받았다. 친일독재 미화와 우편향 논란에 휩싸이면서 교학사 교과서 채택한 학교는 전체 학교의 1% 미만을 웃돌았고, 그나마 채택한 학교들도 잇따라 채택을 철회했다.
이처럼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강행한다면 친일독재미화에 날림 제작으로 현장의 외면을 받은 교학사교과서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이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는 데에는 다른 ‘정치적’ 이유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김성수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9일 브리핑에서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이념 논쟁, 색깔 논쟁을 일으키려는 의도도 숨겨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만약 교과서 국정화가 안고 있는 시대역행적, 후진적 문제의 본질을 색깔론으로 덮어씌워 보수층 결집을 꾀하려는 의도라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위험한 음모”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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