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부담 줄어든다” 국정교과서의 은밀한 제안
40대 중도층 겨냥한 새누리의 국정교과서 이중전략…“어차피 EBS로 공부하는데…”
정부여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며 기존 교과서가 좌편향 되어 있다는 논리를 내세워 이념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국정화 논리에는 실용주의적 면모도 곁들어져 있다. 바로 수능이다.
새누리당은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면 2017년 수능 필수과목이 되는 국사과목에 대한 학생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11일 당정협의회에서 “지난해 한국 교육과정 평가원 여론조사에서 학부모 중 56.2%가 국정화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수능 필수 과목인 한국사 교과서 통합으로 수능 부담이 최소화되길 바라는 대다수 학생들의 의견이 존중돼야 한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역사교과서개선특별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강은희 의원은 지난 9월 23일 YTN ‘신율의 출발 새아침’ 인터뷰에 서 “검정을 채택할 때는 전체 교과서에 있는 공통적인 부분만 출제하게 되어 있는데, 실제로 출제하다보면 8종 모두 공통된 부분을 추려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통상 3종에서 5종정도에만 공통적으로 있어도 수능에 출제할 수 있다”며 “그래서 어느 교과서를 배운 학생들은 절대 만점이 나지 않는 상황도 발생했다”고 말했다. 교과서가 하나면 수능 부담이 줄어든다는 것.
강은희 의원이 주최한 10월 9일 ‘대입제도와 수능 안정화, 어디로 가야하나’ 세미나에서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전국 고교 2학년생 2천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학생의 53.3%가 국정화에 따라 수능 부담이 감소할 것이라 답했다. 또 응답학생의 56.8%는 현재 8종인 한국사 교과서를 줄여야 한다고 답했다.
‘국정화하면 수능부담이 줄어든다’는 논리는 ‘좌편향’ 카드와 함께 병행하는 새누리당의 ‘실용주의’ 전략이다. 기존 교과서가
좌편향됐다고 주장할수록 보수진영은 결집하겠지만 야권 지지층, 진보진영도 결집한다. 이런 상황에서 40대 중도-진보층에게 ‘네
자식의 수능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고 외치는 셈이다. 이념이 아니라 실리를 자극한다.
서울의 고등학교 교사 A씨는 “당위나 가치를 제쳐두고 편익의 측면에서 따진다면 학생과 교사, 학부모 중에 국정화를 반길 사람들도 많을 것”이라며 “주어진 교재 하나 가지고 고민 안 하고 출제하고 시험공부할 수 있고, 교과서 선정 작업도 안 해도 된다. 까라는대로 까면 되니 얼마나 편하겠나”라고 말했다. ‘수능 부담 완화’ 카드가 이런 정서를 노렸다는 것이다.
야당은 이에 ‘시험 부담 더 커진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8일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국정화 시절 국사 문제가 어렵게 꼬여 수험생을 괴롭혔다. 수험생 자녀가 국사 교육의 어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은 국정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설훈 새정치연합 의원은 13일 ‘신율의 출발 새아침’ 인터뷰에서 “8종으로 되어 있을 때는 8종에 공통적으로 있는 부분만 이해하면 되는데, 한 종이 되면 (교과서를) 달달 외워야 한다”고 말했다. 시험범위가 교과서 하나로 한정되면서 세세한 부분까지 시험에 나올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수능 부담이 완화되느냐 여부는 국정화와 별 관련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교문위 소속 유기홍 새정치연합 의원이 지난 9월 10일 전국 역사교사 10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정교과서가 교사와 학생들의 수능준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냐’는 질문에 ‘수능이 더 어려워진다’는 의견이 45.9%, ‘더 수월해진다’는 의견이 4.4%였다. 가장 많은 답변은 49.7%를 차지한 ‘차이가 없다’였다.
서울의 고등학교 교사 B씨는 “어차피 고3은 수능 준비하면서 교과서를 안 본다. EBS로 공부한다”며 “EBS 연계 비율이 그대로라면 국정으로 바꾸는 게 수능 부담 완화와 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2017년부터 필수가 되는 한국사는 절대 평가로, 만점 50점에 40점 이상이면 1등급이고 5점 단위로 1등급씩 내려가는 방식이다. 부담을 줄이는 쉬운 수능으로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평이하게 출제한다’는 것이 교육부의 방침이다. B교사는 “암기보다는 개념자체를 활용하는 문제를 내는 수능의 기조를 유지한다면 국정이냐 검정이냐는 별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교 사들은 국정교과서가 수능 필수과목과 연계되면서 영향을 미칠 부분은 ‘시험 부담’이 아니라 ‘교사들의 학습 재량권’이라고 말한다. 일각에서는 국정화를 밀어붙이면 교사들이 국정교과서를 제쳐두고 다른 참고자료나 교재를 활용하면서 국정화에 저항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몇몇 교육감은 대안교재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하지만 교사들은 국정교과서가 시험, 그것도 수능 필수과목도 연계되는 한 쉽지 않다고 말한다.
B교사는 “국정교과서로 수업하면서 ‘교과서엔 이렇게 적혀있지만 사실 이런 의견도 있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시험이 걸려 있으니 문제다. 특히 한국사는 필수라서 더 문제”라며 “학생들 입장에선 교과서엔 이렇게 나왔는데 선생님은 다른 말을 했네, 시험에 나오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 혼란이 올 수 있다. 교사 입장에서도 그럼 골치 아파진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고등학교 역사교사 C씨는 “대안교과서를 사용하는 게 법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수능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국사가 필수가 아니라면 대안교과서로 자유롭게 가르칠 수 있지만 필수인 이상 특정 정치세력을 미화하거나 치적을 포장하는 내용이라 해도 안 가르칠 수가 없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국정교과서의 사전작업으로 한국사를 수능 필수로 넣은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고 말했다.
A교사 역시 “원칙대로라면 교육과정 틀 내에서 분명 국정교과서를 거부하면서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지만 시험과 연동된다는 점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A교사는 이어 “또한 국정화가 역사분야에 한정되고, 다른 교사들 입장에서 자기문제가 아니다보니 학교 전체에서 웅성웅성 거리며 ‘국정교과서 거부하자’는 동력이 생기기 어렵다”며 “이런 분위기에서 몇몇 역사교사들이 학습 재량권을 발휘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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