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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미디어스 칼럼

청년세대에게 박근혜 대통령이란

청년세대에게 박근혜 대통령이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이유, 그리고 미래를 위한 제언
조윤호 / 자유기고가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오늘 오전 현충원의 '부친 묘소'에 참배한 후 미소짓고 있다. ⓒ뉴스1

박근혜가 이겼다. 투표율이 높으면 문재인이 유리할 것이라는 언론의 분석을 깨뜨리고, 초박빙이라는 예상마저 깨뜨리고 박근혜는 과반의 지지를 얻은 대통령이 되었다. 이제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청와대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야권 지지자들은 ‘집단 멘붕’에 빠졌다. 박근혜를 막기 위해 표를 몰아준 진보정당의 지지자들도 멘붕에 빠졌다. 트위터에서는 한국의 국민성을 탓하는 글, 안철수가 나왔으면 이겼을 거라는 글, 투표율 낮은 20대를 욕하는 글, 심지어 박근혜 지지층인 노년층을 욕하는 글까지 쏟아져 나왔다. 대체 왜 대한민국 국민은 박근혜를 선택한 것일까?

 

진보세력이 박근혜를 막지 못한 세 가지 이유

야권의 패배 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다. 사람들이 박근혜에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박정희에 대한 향수다. 박정희가 경제를 살리고 근대화에 성공했듯이 박근혜가 우리를 잘 먹고 잘 살게 해줄 거라는 믿음이다. 이러한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철지난 지도자에 대한 비합리적인 열광으로만 볼 수는 없다. 한국의 민중들은 민주화를 이루었으나 민주화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외환위기가 터졌고, 외환위기를 잘 극복하나 싶었는데 외환위기 이후로 도입된 신자유주의로 인해 양극화는 더욱 심각해졌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민주화 세력의 무능함을 질타하고, 과거의 성공 사례이자 조국근대화의 아버지인 박정희를 불러내는 목소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박근혜가 정치에 뛰어든 것도 97년 IMF 사태 직후였다.

민주화 세력을 지지하는 이들은 어떻게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뽑을 수 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이 아니라 산업화와 근대화를 이끈 박정희의 딸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박정희를 추억하게 된 기저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경제문제가 있다. 안철수가 박근혜의 지지층 일부를 흡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가 민주정부의 과오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재인은 ‘참여정부 2기’, ‘민주정부의 재림’ 이상의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한 채, 박근혜가 독재자의 딸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키며 독재 vs 민주주의의 구도로 선거를 치르려 했다.

두 번째 요인은 여전한 지역주의다. 문재인은 서울과 호남 지역에서만 박근혜에게 우세를 보였다. 물론 호남(특히 광주) 사람들에게는 박근혜를 지지할 수 없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여기에 더해 지난 총선 때부터 서울과 지방(영남/충청/강원)이 각각 진보세력과 보수 세력을 지지하는 ‘새로운 지역주의’가 등장했다. 이는 SNS나 진보담론이 서울의 유권자들에게는 먹히지만, 아직 지방에는 그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서울의 경우 상대적으로 먹고 사는데 여유가 있는 중산층이 많고, 뉴타운 같은 정신 나간 방식이 아닌 이상 더 이상 부동산을 활성화 시키거나 지역개발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방은 서울에 비해 늘 홀대받아 왔고, 아직도 진보적인 의제보다는 개발 이슈가 먹혀든다. 정치개혁이나 새 정치를 내세우는 정치인보다 공항을 놓아준다거나 땅값을 올려준다는 정치인을 찍는 것이다. 나꼼수나 SNS 등을 통해 퍼져나갔던 반 새누리당 정서,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 등은 서울에서는 많은 영향을 발휘했으나 지방에서는 그 영향력이 미미했다.

세 번째 요인은 투표율이 높으면 야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민주세력의 오만이다. 문재인이 선거기간 동안 내세운 캐치 프라이즈 중 하나는 ‘투표가 권력을 이긴다.’였다. 박근혜와 보수 세력을 기득권층으로, 민주세력을 이 기득권층에 맞서 아직 대변되지 못한 국민들을 대변하는 대리인으로 상정한 것이다. 이는 원래 한국에는 야당과 진보세력을 지지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들이 적극적으로 의사를 드러내지 못하거나 그러지 않기 ‘때문에’ 보수 세력에게 지고 있다는 생각에 근거한다. 문재인과 민주당이 투표시간 연장에 목숨을 걸고, 문재인이 투표율 77%가 넘으면 말춤을 추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대선보다 투표율이 10%도 넘게 늘어났지만 문재인은 박근혜에게 졌다. 하마터면 투표율이 77%를 넘어 박근혜가 승리했는데 문재인이 광화문에서 말춤을 춰야 하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 청년은?

진보 세력이 패배한 세 가지 이유를 통해 알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이번 선거에서 ‘청년세대’가 변수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에게 실망하고 박정희 향수를 떠올린 중장년층, 진보담론의 영향력은 미미했으나 개발 의제의 영향력은 강했던 지방, 박근혜를 지지한 ‘숨은 표’가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지난 10.26 지방선거 이후 20대 청년들의 정치참여가 선거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으나, 상대적으로 그 영향력은 미미했다.

야권은 청년 세대를 변수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한겨레>는 ‘의병들은 20대였다, 윤봉길도 20대’였다며 20대들에게 도시락폭탄 대신 투표를 던지자고 주문했고(“너 자신의 청춘을 위해 투표하라”, 한겨레, 2012.12.14),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청년 세대에게 재앙이 올 거라며 문재인을 뽑으라고 종용했다.(우석훈, “청년들에게 문재인 지지를 호소하는 이유”) 미안하지만 난 청년세대의 지지를 호소하는 야권의 주장에서 청년세대가 왜 문재인과 야권을 지지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박근혜는 니들의 적이고, 기득권의 수호자이니 반대해야 한다는 당위 이상의 근거를 찾을 수가 없었다. 투표 독려 운동만 난무했다.(투표 독려->투표하지 않았던 20대의 투표->야권의 승리)

하지만 486들과는 달리 청년들에게는 박근혜는 안 된다는 ‘당위’가 없다. ‘공동의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 광주는 90퍼센트를 훌쩍 넘는 압도적인 문재인 지지를 통해 박근혜 비토를 분명히 했다. 박근혜 지지자들 중 일부는 이를 두고 ‘역시 전라도’ ‘호남에서는 민주당이 깃발만 꽂아도 된다.’며 비아냥거리지만. 광주 사람들에게는 박근혜를 절대 지지할 수 없는 ‘공동의 기억’이 있다. 군사독재에게 짓밟혔던 공동의 체험이 있는데, 어떻게 그 군사독재의 일인인 박근혜를 지지할 수 있을까? 486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박정희와 전두환 시절에 독재와 맞서 싸웠던 이들 입장에서는 박근혜에 대한 ‘공동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청년 세대에게는 박근혜를 거부할 만한, 나아가 민주세력을 지지할 만한 ‘공동의 기억’이 없다.

 

‘무능한 박근혜’라는 공동의 기억?

박근혜의 집권은 청년세대에게 없는 ‘공동의 기억’을 만들어주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른다. 이념 싸움에 빠져 민생을 돌보지 않는다고 비난하며 집권한 보수 세력이 민생을 돌보는데, 우리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공동의 기억. 박정희 신화를 등에 업고 집권한 박근혜가 경제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공동의 기억.

박근혜는 소득분위별 차등 등록금 지원으로 평균적인 반값등록금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이것이 과연 등록금에 허덕이는 대학생들의 부담을 ‘실제로’ 덜어줄 수 있을까? 대학이라는 기득권 세력과 싸울 생각이 없는 박근혜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박근혜는 청년실업 문제에 대해 국가가 취업시스템을 지원하고 K-MOVE 제도를 시행하여 청년 창업을 지원하겠다고 말한다. 불안정한 일자리가 즐비한 현실, 그리고 청년들이 안정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대기업에 몰려드는 현실을 그대로 두고,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구와도 싸울 생각이 없는 박근혜가 청년실업을 해결할 수 있을까?(박근혜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고용형태의 구체적인 내용을 외부에 공시하도록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노동유연성 문제는 그대로 둔 채 말이다.) 박근혜는 대학가기 위한 교육이 아니라 꿈과 적성을 실현하는 교육을 실현하겠다고 말한다. 학벌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박근혜가 입시위주의 교육을 타파할 수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왕 박근혜가 집권했으니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자”, “박근혜가 실패하길 바라자.”가 아니다. 박근혜가 한국사회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할 수 있고(아니 심지어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그 경우 청년세대는 새누리당과 보수 세력에 대해 ‘공동의 기억’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민주세력이나 진보좌파에게 희소식은 아니다. 박근혜의 실패는 박근혜보다 더 오른쪽에 있는, 파시즘적인 우익의 도래(일본을 보라!) 혹은 ‘그놈이 그놈’이라는 정치 혐오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박근혜가 집권하는 5년 동안, 민주세력과 진보좌파들은 정말 열심히 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싸움을 통해 왜 박근혜가 아니라 자신들인지에 대한 새로운 ‘공동의 기억’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미디어스>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