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과거 글/미디어스 칼럼

죽음의 행렬을 막고, 경제민주화로!

죽음의 행렬을 막고, 경제민주화로!

[조윤호의 우파의 시대에 살아가기]
조윤호 / '보수의 나라 대한민국' 저자

 

“나는 회사를 증오한다. 자본 아니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심장이 터지는 것 같다. 내가 못 가진 것이 한이 된다. 민주노조사수 하라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죽어라고 밀어내는 한진 악질자본 박근혜가 대통령되고 5년을 또.......못하겠다. 지회로 돌아오세요. 동지들 여지껏 어떻게 지켜낸 민주노조 입니까?? 꼭 돌아와서 승리해주십시오. 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한진중공업 노동자 최강서의 유서)

노동자의 죽음과 절망의 시대

 

지난 21일 한진중공업 노동자 최강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해고를 당했다가 최근 복직했으나, 회사의 무기한 휴업으로 실질적인 실업자 상태였다. 한진중공업이 노조와 노동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158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및 재산가압류 역시 큰 부담이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현실의 빚을 이기지 못하고 현실을 떠났다.

 

죽음의 행렬은 이어졌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 이운남 조직부장, 민권연대 활동가 최경남, 전국대학노조 한국외대지부 이호일 지부장, 이기연 수석부지부장. 이들이 연달아 죽음을 맞이했다. 이들은 자본권력의 노동자 탄압에 맞섰던 현장 활동가들이다. 자본권력의 탄압을 방조하는 정치권력의 폭력에도 맞섰던 현장 활동가들이다. 이들의 죽음은 ‘희망’이 사라진 우리 사회의 모습을 상징한다.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을 이끌던 활동가들이 절망을 느낄 만큼, 살아서 싸우기보다 차라리 죽기를 택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희망은 사라지고, 추운 날씨만큼 혹독한 시대가 온 것이다.

 

최강서 씨는 박근혜 5년을 더 어떻게 버티겠냐고 말했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다 해서 친노동 정책을 펼쳤을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문재인이 비서실장으로 재임하던 노무현 정부와 노동계의 갈등은 심각했다. 하지만 박근혜의 시대가 노동계의 입장에서 끔찍하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는 노조의 파업이나 노동권에 대해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안타깝게 생각한다.’가 전부다. 불법파견 판결을 받은 현대차에게 위법 행위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사내하도급 법’이라는 선물을 안겨준 새누리당의 집권은 노동계 입장에서 끔찍한 일이다.

 

우리는 이 혹독한 시대에 맞서고, 죽음의 행렬을 막아야 한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죽음의 행렬을 목격한 적이 있다. 참여정부 집권 초기인 2003년은 노동자들의 열사 정국이었다. 배달호, 이현중, 이해남, 김주익, 이용석, 곽재규, 이경해 등의 노동자가 노동자를 살려달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사회의 무관심 속에 죽어갔다. 2003년이 꽤 오래된 일이라면, 최근의 일을 떠올려도 무방하다. 2009년 쌍용차 사태 이후, 이미 23명의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잇따라 죽음을 맞이했다.

 

이런 비극이 반복되는 걸 막아야 한다. 필요한 건 연대다. 연대를 통해 노동자와 활동가들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상황이 절망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연대를 통해 그들이 혼자가 아니며, 그들의 싸움이 그들 자신만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대를 통해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이 ‘무엇’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하청노조) 전 노조간부 이운남씨의 노제가 26일 현대중공업 정문 근처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손배가압류 앞에 벼랑 끝으로 내몰린 노동자들

 

‘손배가압류 철폐’는 우리가 절망에서 희망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단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손배가압류란 손해배상 청구소송 및 재산가압류의 줄임말이다. 손배가압류란 사용자(자본가)가 노동자의 파업으로 인해 손해를 입었다며 제기하는 민사 소송과 그 소송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재산가압류라는 행정집행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1990년대 이전 자본과 국가는 물리력을 동원해 노동운동을 탄압하고 노동조합을 와해시켰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책 <소금꽃나무>는 국가와 자본이 노동자들을 얼마나 잔인하게 짓밟았는지 보여준다. 노조가 파업하고 시위하면 깡패들이 몰려와 때려잡고, 경찰이 달려와 발로 짓밟았다. 빨갱이 누명을 씌워서 잡아다 고문하기 일쑤였다.

 

1990년대 이후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데 제격인 새로운 방법이 생겨났다. (물론 지금도 용역깡패들이 파업현장을 헤집고 다니며, 국가는 이를 방조한다.) 그것이 바로 손배가압류다. 자본은 더이상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 굳이 공권력의 도움을 청하거나, 물리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들은 손배가압류를 통해 노동자들에게 경제적인 압박을 가하고, 노동조합을 와해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2003년 1월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가 65억 원에 달하는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와 재산가압류에 저항하며 분신자살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주익도 사측의 구조조정과 150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를 철회하라며 고공농성을 벌이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원테크 노동자 이해남도 사측의 손배가압류에 항의하며 목숨을 끊었다. 기업이 노조나 노동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액수가 지난해 7월 기준으로 700억 1000만원에 달한다. 가압류 신청 금액도 지난해 기준 160억4900만원이다.

 

최근 화두가 되었던 투쟁사업장의 노동자들과 노조는 하나같이 손배가압류에 얽혀 있다. 최강서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한진중공업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액은 158억 원이다. 현대사 사측이 이운남을 비롯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액은 116억 원이다. 이 외에도 쌍용차가 노동자들에게 237억, MBC 사측이 노조원들에게 195억, KEC 사측이 노동자들에게 156억, 철도공사가 노조에 65억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한 달 월급이 100만원도 안 되는 홍익대 청소노동자들도 해고 철회를 주장하며 싸우다 홍익대로부터 2억8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했다. 노동자들이 평생을 일해도 만져보기 힘든 돈 때문에 노동자들이 생계 압박에 시달리고, 더 나아가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합법파업’이라는 어색한 단어

 

손배가압류는 사측의 사유재산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남용’되고 있다. 손배가압류와 마주한 노동자들은 경제적인 압박을 느끼고, 자본과의 싸움을 포기한다. KEC의 한 노동자는 “파업 이후 회사 간부로부터 사표를 쓰면 손해배상 대상에서 빼주겠다는 회유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또한 철도노조가 2009년 파업에 들어가려고 하자, 사측인 코레일은 법정 최종판결도 나오지 않았는데 2006년 파업 때 청구한 손해배상에 대한 가압류를 신청하겠다고 노조를 협박했다. 이런 식으로 사측 관리자들은 사표를 쓰면 소송을 철회하겠다며 노동자들의 입을 막고, 까불면 손해배상 청구를 하겠다며 노동자들의 단결을 막는다.

 

사측이 이렇게 손배가압류를 남발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파업이 ‘합법파업’으로 인정받는 것이 너무나 힘들기 때문이다. 혹시 ‘합법파업’이라 불리는 파업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내가 기억하기로는 언론이나 정부, 사측이 파업에 대해 ‘합법’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적이 없다. 글을 쓰면서도 이 단어가 너무 어색해서 신조어를 사용하는 기분이 들 정도다. 파업이 벌어지면 사측이 “이건 불법파업입니다. 엄중 대처하겠습니다.”라고 주장하는 모습, 언론이 “불법파업으로 시민의 발목을 잡는다.”라고 지면을 가득 채우는 모습, 정부가 ‘법치주의’ 운운하는 모습은 눈에 생생한데, 합법파업이라는 단어는 도무지 들어본 적이 없다.

 

이처럼 노동자들의 파업은 웬만하면 다 ‘불법’이 된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은 불법인 걸 알면서도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다. 사측은 불법파업이라는 이유로 각종 법적인 대응에 나선다. 손배가압류도 사측이 불법파업에 대응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정부는 불법이니까 어쩔 수 없다며 손 놓고 있다. “여야가 잘(해서 해결하자)”이라는 말을 유행시켰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아마 노동자들의 파업이 터지면 “노사가 잘(해서 해결하자)”이라는 말을 반복할 것이다.

 

한국에 비해 노동운동의 역사가 깊은 영국에서도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가 사회적인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1900년 영국 웨일즈 남부의 철도회사 태프 베일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다. 사측은 노조의 파업으로 재산상의, 경영상의 피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법원은 사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사건 이후 노동자와 노조는 파업이나 노동쟁의를 꺼렸고, 영국 노동운동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계속 투쟁했고, 노동당을 움직였다. 결국 노동자들은 1906년, ‘사측이 노동쟁의에 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내용의 ‘노동쟁의법’이 제정되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노동문제는 ‘노사가 잘’ 해결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권리를 제대로 인정함으로써, 노동자들의 파업을 사회가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함으로써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지난 11월 여의도 당사에서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죽음의 행렬을 막고, 경제민주화로 가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한다. 너도 나도 경제민주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도대체 경제민주화란 무엇인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무소속 김소연 후보가 군소후보 TV토론회에서 경제민주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왜 경제에 '민주화'를 이야기할까 생각해봤습니다. 지금까지 경제가 독재였다는 말이 아닐까요.”

 

민주주의 사회란, 민주화된 사회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누구에게나 보장하는 사회이다. 1인이나 소수가 대다수의 삶을 결정하는 독재는 민주주의의 반대말이다. 즉 김소연 후보의 말처럼 경제민주화는 몇몇 자본가들이 우리의 미래를 좌지우지 하는 현실에서 벗어나자는 요구이다. 하지만 독재가 없어진다고 민주화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독재를 대체할 새로운 권력이 없다면 독재는 또 다른 독재로 교체될 뿐이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는 재벌을 때려잡는 것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경제민주화가 재벌개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자와 서민에게 경제를 통제하고 결정할 힘이 있어야 경제민주화다. 하지만 한국현실을 고려하면 이는 요원한 일이다. 노동자들에게는 경제를 통제하고 결정할 힘은커녕 자본의 탄압에 맞설 노동권도 없다. 자본가들은 손배가압류라는 무기를 통해 노동자들이 단결하고 단체행동을 할 권리를 실질적으로 침해한다.

 

손배가압류를 없애고, 노동권을 보장받는 사회로 나아가자, 그리고 이어서 노동자와 서민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경제민주화’로 나아가자. 이 죽음의 행렬을 멈춰야 한다.

 

<미디어스>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