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은 왜 ‘마이웨이’를 선택했나
안철수 최후통첩에도 “탈당과 분당은 정답 될 수 없다”…총선 뒷전으로 밀어낼 전당대회는 선택 못 해
문재인 대표가 ‘마이웨이’의 길을 걷고 있다. 안철수 의원의 최후통첩에도, 주승용 최고위원의 사퇴에도 정면돌파를 감행하는 모습이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지난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정희 시인의 시 ‘상한 영혼을 위하여’를 올렸다. 이 시에는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디든 못 가랴”라는 구절이 나온다. 문 대표의 생각이 드러난 시라는 해석이 나왔다.
문재인 대표는 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대립과 분열을 부추기는 방식은 정답이 아니다. 탈당과 분당, 혁신의 무력화는 그 어떤 명분에도 불구하고 정답이 될 수 없다”며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주장을 할 수 있지만 한번 결정하면 자신의 뜻과 다르더라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이웨이’를 선언한 것이다.
문 대표는 오영식 최고위원에 이어 비주류계인 주승용 최고위원이 최고위원직을 사퇴했음에도 공석인 자리에 대해 보궐선거를 치르지 않기로 했다.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하고 있는 비주류계 이종걸 원내대표와 최재천 정책위의장도 강하게 비판했다. 문 대표는 이 원내대표에게 “원내대표가 그래서야 되겠느냐. 한쪽(비주류) 편만 드는 것 아니냐. 당무를 거부하려면 당직을 사퇴하는 게 도리”라고, 최재천 정책위의장에겐 “당직을 사퇴하지 않고 당무를 거부하면 교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철수 의원의 최후통첩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안 의원은 지난 6일 문 대표에게 혁신전당대회를 요구하며 칩거에 들어갔다. 탈당설까지 나오고 있다. 문 대표는 8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탈당이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안 전 대표는 우리 당을 만든 일종의 공동창업주다. 대표가 물러가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탈당할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안 의원의 혁신전당대회 요구에 대해서도 “힘을 합쳐서 똘똘 뭉쳐도 내년 총선에서 이길까 말까 그런 상황”이라며 “총선을 앞둔 시기에 서로 대결하고 분열하는 전대를 선택하는 것은 어렵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또한 8일 국민TV와 인터뷰에서 “정의당, 천정배 신당 세력과 통합하는 전대라면 대표직을 내려놓을 수 있다”고 선언했다. 안철수 의원이 탈당할 경우 연합할 수 있는 새정치연합 밖의 세력들에 대한 통합 전당대회를 제안함으로써 안 의원을 오히려 압박한 셈이다.
문재인 대표가 ‘마이웨이’를 선택한 데에는 정면 돌파해도 된다는 자신감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 의원과 비주류 측에서는 20명-30명이 탈당할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오지만, 총선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탈당이 어렵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새정치연합 전략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는 진성준 의원은 8일 JTBC와 인터뷰에서 “탈당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정치생명을 거는 일인데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더구나 새정치민주연합의 창업 주역이신데 탈당을 결행하기란 명분이 너무 약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 의원은 또한 “정치인 개개인의 정치생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게 결단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수도권의 경우에는 탈당을 해서 독자적으로 출마할 경우에 무소속이거나 또는 당을 만든다고 해도 기호 2번을 받지 못하고 기호 3번이나 4번에 머물러서 선거를 치러야 되는데 그런 결단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목소리는 크지만 비주류 측의 세력이 강하지 않다는 점이 이미 드러났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9월 16일 새정치민주연합 제2차 중앙위원회에서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과 연계된 혁신위 공천안이 통과됐다. 비주류계가 불참해 중앙위원회를 무산시킬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으나 중앙위는 과반수 성원을 넘기며 순조롭게 시작됐다. 몇몇 의원들은 무기명 투표를 요구하며 문제를 제기했으나 퇴장한 의원은 박지원, 조경태, 문병호, 최원식, 유성엽, 권은희 의원 등 10여명에 그쳤다.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은 “언론에는 친노 대 비노, 주류 대 비주류라고 해서 마치 목소리가 비슷한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 중앙위원회에서 보니 몇 명 안 나갔다. 어느 쪽에도 속해 있지 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비주류의 세가 확인된 셈”이라고 밝혔다.
진성준 의원은 “당의 당헌에 보면 대의원 3분의 1 이상이 서명해서 요청을 하면 전당대회를 소집하도록 돼 있다. 이런 합법적 방법들이 남아 있는데 탈당과 같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명분이 약한 일”이라고 밝혔다. 뒤집어 말하면 문 대표 측이 비주류의 세가 전당대회 개최를 합법적으로 요구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도, 대의원들을 설득할 만큼 비주류 측의 명분이 정당하다고 보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표 입장에서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 ‘마이웨이’를 고집할 수밖에 이유라는 분석도 나온다. 문 대표는 ‘총선 승리’를 내걸고 당 대표가 됐다. 총선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할 경우 사퇴론이 급등할 것이고 대선후보로서의 입지도 급격히 좁아진다.
문재인 대표 측의 한 관계자는 문 대표가 혁신전대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총선 준비를 거의 할 수 없는 상황이 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 당 대표에게 주어진 소임은 총선 체제를 구축하는 것인데, 총선을 앞두고 전당대회가 열리면 정쟁의 장이 벌어지고 구성원들이 양쪽으로 줄을 서게 되면서 분열이 이어진다”며 “힘을 모아서 총선을 준비할 당력은 분산될 가능성이 높다. 총선을 앞두고도 인재영입을 못하고, 새누리당에 비해 뒤쳐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지금 당장의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안 의원의 혁신전당대회 제안을 받아들인다 해도 전당대회를 치르다보면 계파 갈등이 분출되고 총선 준비는 뒷전으로 밀린다는 것이다. 그러다 총선에서 패배하면 문재인 대표의 사퇴론이 거세질 것이다. 문 대표 입장에선 어차피 맞을 매라면 미리 맞자고 판단했을 수 있다.
문제는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 간 치킨게임으로 진행될 경우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자들과 중도층이 당에 등을 돌리는 상황이다.
탈당, 분당론이 이어지면서 수도권 의원들은 비대위 체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몇 백 표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수도권에서
지지자들이 이탈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표는 정면 돌파를 강행하면서도 당이 쪼개지는 파국은 막을 수 있는 묘수를
찾아야할 처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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