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대신 경제’, 김종인의 승부수? 자충수?
[뉴스분석] “허무한 엔딩으로 끝난 필리버스트”… 총선 앞두고 연착륙은커녕 출구전략 상실
160여 시간 야권 지지자들의 격려를 받으며 진행됐던 더불어민주당의 필리버스터를 멈춘 것은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와 비대위원들이었다.더 민주는 2월 29일 밤 비상대책위원회의를 열고 필리버스터를 중단하기로 했다. 이날 오후 열린 두 차례의 의원총회에서는 필리버스터 중단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은 채 이종걸 원내대표 등 지도부에게 위임하기로 했다. 이 원내대표는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양당이 합의해 본회의를 정회한 후 선거법을 처리하고 다시 필리버스터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상황 변화는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벌어졌다. 언론보도 등을 종합하면 김종인 대표는 “필리버스터를 이제 중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박영선 비대위원은 “내일(1일) 조간신문에 ‘선거법 발목을 잡은 야당’이라고 새까맣게 쓰지 않겠느냐”라고 이 원내대표를 설득했다.
필 리버스터 중단의 근거는 ‘경제 실패 프레임’을 내세워야 이긴다는 김종인 대표의 확신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이미 여러 차례 총선전략으로 ‘경제 실패 프레임’을 내걸었다. 총선에서 박근혜 정부의 경제 실패를 전면에 내걸고 대안적인 경제정책을 전면에 내세워야 승리할 수 있다는 논리다.
김 대표는 지난달 28일 대표 취임 한달 기자회견에서 “현 정부 3년 동안의 경제 및 정책 실패에 대해 전면적으로 전쟁을 선포할 각오로 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한국일보와 인터뷰에 서도 “선거 앞두고 결국은 국민의 삶이 가장 큰 이슈다. 모든 사람이 살기 어렵다고 얘기하고 가계부채 1,200조원이 넘어가 거기서 상환이 불능한 금액이 300조원 가까지 간다고 한다”며 “이 문제는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이를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이냐, 이것이 선거에 쟁점화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김 대표의 그간 행보를 이해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설 연휴 때 ‘북한 궤멸’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 영입을 두고 정체성 논란이 일자 “특정한 눈을 갖고 보는 사람들이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우경화 논란에 대해서는 “일관성은 무슨 놈의 일관성이냐. 일관성이 밥 먹여주는 줄 아느냐”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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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북한 문제가 부각되자 ‘북한 궤멸’이라며 보수진영의 공격을 차단했다.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해 진행되는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킨 것도 비슷한 행보다. 개성공단이나 테러방지법 등을 안보이슈 혹은 이념이슈로 보고, 이런 이슈로 총선을 끌고 가서는
패배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더민주당 내에도 이런 목소리가 있다. 민병두 의원이 1일 의총에서 “과거 선거의
전례를 보면 ‘이념 전쟁’으로는 한 번도 승리한 적이 없었다. 김종인이라는 경제전문가를 ‘캐스팅’해온 상황에서 (테러방지법 등)
이념 전쟁으로 싸우는 것도 맞는 전략이 아니다”고 말한 것이 대표 사례다.
하지만 더민주당의 필리버스터로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모처럼 야당이 잘 싸운다’는 평가가 높았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김종인 대표와 비대위는 선거법 처리를
지연시키면서까지 정부여당과 각을 세울 경우 돌아올 역풍과 필리버스터를 중단했을 때 야권 지지자들이 실망감을 드러내면서 돌아올 역풍
사이에서 후자를 선택했다.
더민주의 ‘연착륙 전략’이 부재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이념 프레임이 총선 국면에서 불리하다 판단하고 경제 프레임으로 전환해야겠다고 판단할 수 있다. 문제는
테러방지법의 문제점은 부각시켜놓고 결국 여당의 양보를 못 얻어냈다는 점”이라며 “그렇기에 필리버스터 중단으로 돌아올 지지층의
실망과 비판을 새누리당에 대한 비판으로 돌리며 국면을 연착륙시킬 내부전략이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오히려 여러
차례 혼선만 빚어졌다. 의원총회에서 논의됐던 사안이 비대위에서 뒤집히고, 반발이 커지자 다시 의원총회를 열기로 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당초 1일 오전 9시 기자회견에서 필리버스터 중단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의원들의 반발이 커지자 이 원내대표는
“의원총회를 통해 의견을 모아 자세한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 입장 발표를 미뤘다.
이러한 혼선을 두고 필리버스터를
끝내려는 비대위와 필리버스터를 유지하려는 원내대표 간 갈등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그간 이 원내대표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국민들이 성원하고 있다. 대표 포털 사이트에 5개 이상의 필리버스터 관련 검색어가 10시간 이상 올라있다”(2월 24일
비대위 회의) “국회 방청석을 꽉 채웠다. 정치가 이렇게 재밌는 것인 줄 몰랐다고 한다”(2월 29일 의원총회)며 필리버스터에
대한 여론의 지지에 한껏 고무된 모습을 보였다. ‘이대로 끝낼 순 없다’는 이 원내대표와 ‘끝내야 한다’는 김종인 대표가 충돌해
‘연착륙’은커녕 혼선과 내부 갈등이 결말을 장식하게 됐다.
최영일 평론가는 “필리버스터 시작과 전개까지 성공하면서
클라이막스까지 고조됐는데 갑자기 엔딩이 허무해져버린 셈”이라며 “총선 승리를 위해 프레임 전환이 필요했다면 필리버스트의 에너지를
총선을 향한 에너지로 전환시켰어야 하는데, 전략이 부실했다”고 평가했다.
의원총회라는 절차가 남아 있지만 현실적으로
‘필리버스트 중단’이라는 결정이 뒤집힐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에서 의총 개최를 알리면서도 “오늘
중으로 테러방지법에 대한 무제한 토론을 마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의총이 의견을 수렴하고 결정하는 장이 아니라 ‘불만 수리’
시간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지난 29일 당무위원회 결정으로 선거 관련된 전권은 김종인 대표에게 넘어갔다.
필리버스터를 멈춰선 안 된다는 주장은 김 대표와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다. 더민주당에 속한 100여명의 의원들은 필리버스터 중단을
계기로 이제 좋든 싫든 김종인 대표의 판단과 전략에 총선의 운명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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