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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classic

여러분 꿈을 좀 꿉시다

 


유토피아

저자
토머스 모어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12-10-2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토머스 모어의 인문 정신이 집약된 사회사상적 명저『유토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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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topia,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 대한 이 책은 명백히 당대를 풍자했다. 가난한 이들로 넘쳐나고 가난을 이기지 못해 도둑질을 하고, 빵 하나를 훔쳐도 극형에 처하는 현실세계의 나라와 거지가 없는 이상세계의 나라, 날 때부터 주어진 신분으로 배부르고 사치스럽게 사는 귀족들과 죽을 만큼 노동해도 굶어 죽어야하는 평민의 불평등이 극에 달한 현실세계의 나라와 노동을 중시하며 모든 사람들이 일하고 평등한 부를 누리는 이상세계의 나라는 극적인 대비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정치철학” 고전이라기에 이 책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나라의 모습만을 서술하는 등 다소 황당하여 소설로 밖에 안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의 가치를 조금 다른 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1. 플라톤적 이상주의의 흔적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이 책에 가득 깔려 있는 이상주의의 그림자에 대해 논하려고 한다. 토마스 모어가 스스로도 밝힌 바 있듯이 이 책은 플라톤의 그림자가 잔뜩 드리워져 있는 책이다. 그 그림자의 정체는 플라톤적 이상주의다. 플라톤은 태초에 인간들은 선의 이데아가 극에 달한 나라, 아틀란티스에 살고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타락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 국가에 대해 설명한다.(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처자 공유제와 사유재산 공유와 전체주의적 기질을 지닌 교육방식 등이 그것이다. 플라톤의 이상 국가는 욕망, 이성, 기개의 영혼들이 각자 조화를 이루며 정의롭게 살아가는 말 그대로 아주 “이상”적인 국가다.

모어의 유토피아 역시 이와 매우 유사하다. 어딘지 모를 섬에 존재한다는 유토피아는 플라톤이 말한 사유재산 공유가 실현되어 부의 불평등이 없는 나라다. 또한 200명의 대표들과 극소수의 성직자들이 다스리는 이 나라는 정의롭고 공평정대하다. 더욱이 플라톤의 대화편처럼 대화로 책이 전개된다는 점 역시 매우 흡사하다.

2. 현실과 유리된 이상주의?

그렇다면 우리는 플라톤에게 가해지는 손쉬운 비판들을 모어에게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과 유리된 채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 국가의 모델을 설정해 놓은 채 현실이 그곳으로 가기 위한 방법과 그를 위한 정치적 주체들의 역동성에 주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플라톤이 4단계의 정치체제를 구분하고 동시에 어떻게 하면 그 이데아의 국가에 도달할 것인가에 대해 나름 현실적으로 고민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모어의 이야기는 더더욱 소설처럼 들릴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데?

3. 전복적 냉소주의를 펼쳐라

모어의 이상주의가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와 대비되며 그 당시 사상의 다양성을 보여주었다는 것 같은 통속적인 유의미성은 일단 제쳐두고, 나는 유토피아론의 그 전복적 냉소주의의 가능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지젝이『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에서 밝혔듯이 냉소주의에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거리두기적 냉소주의’와 ‘전복적 냉소주의’이다.

거리두기적 냉소주의는 그냥 웃음, 조소만으로 끝나는 말 그대로의 냉소이다. “웃기는 군”일 뿐이다. 이러한 냉소주의는 냉소하는 대상과 거리를 두면서 비웃을 뿐이다. 그 웃음 짓는 것만으로 대상의 부조리성이 무너지는가? 전체주의의 희극성을 지켜보면서 비웃는다. “웃기는 군, 저것 참.” 근데 그것이 전체주의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주는가? 아니다. 정반대이다. 이러한 냉소주의 안에서 이데올로기는 더욱 더 공고해진다. 왜냐하면, 냉소적인 사람은 비웃으면서도 그 이데올로기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수능이라는 말도 안되는 교육체계, 실컷 비웃고 신나게 욕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공부하고 있다. 이들은 그 이데올로기에 완전히 포섭당한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증상symptom을 알아차리고 있으면서도 그 이데올로기에 의해 스스로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페터 슬로텔디즈크는 이러한 거리두기적 냉소주의와 비교되는 키니시즘kynicism, 전복적 냉소주의를 주장한다. 슬로텔디즈크는 냉소만 하지 말고 뒤집어버리라고 요구한다. 이 키니시즘은 이데올로기라는 공식문화를 아이러니와 풍자를 통해 완벽하게 거부한다. 수능이 말도 안된다, 그러면 거부하는 것이다. 이것이 당사자에게 엄청난 부담일지라도. 피켓 들고 수능 철폐 운동하고 교육부 앞에서 기자회견이라도 하라는 거다. 그 시간에 수능 공부 하지 말고!

모어의 유토피아가 현실과 완전히 괴리되어 보이는 것은 어쩌면 그가 전복적 냉소주의를 주창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돈 때문에 사람이 죽는 불평등한 착취 구조가 절정에 달한 당대 영국, 종교를 가지고 서로 죽이는 종교전쟁의 망령이 휩쓸고 지나간 영국. 반면에 유토피아에선 모든 이들이 경제적으로 평등하고 착취당하지 않으며 하나의 ‘신’은 있지만 그 신을 어떻게 부르든지 간에 그것에 따라 다양한 종파들이 존재하고 그들은 각자 자유롭게 포교할 수 있다! 이것이 이상적인 국가라면 영국은 이에 가장 동떨어진, 저질 중에 저질적인 국가이다.

그는 체제 내의 개혁이나 수정의 방식을 주장하지 않는다. 예컨대 자본주의의 불평등에 대해 “노동시간은 주당 19시간에서 14시간으로 줄이라”거나 “종교전쟁 나면 피해가 커지기 전에 화해하라” 같은 이데올로기를 더욱 더 강화해주는 어설픈 조언 따윈 하지 않는다. 또한 그는 자본주의가 발달해 가던 중에 자본주의의 근본적 폐단을 지적하며 과감히 공산주의를 주장하며 종교전쟁으로 이성을 잃어가던 시대에 과감히 종교적 관용을 주장한다. 어설프게 타협하고 현실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가 가진 “이상주의”이며 “전복적 냉소주의”이다. 풍자하고 비웃되,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전복하려 한다.

이상주의를 욕하기 가장 쉬운 비판은, 바로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꿈에 불과하다 하여도, 꿈을 꿀 수 있다는 건 인간에게 행복한 것이다. 꿈이 없는 인간이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세상에 없는 나라 유토피아는 어쩌면, 이것이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의해 u-topia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꿈이나 꾸고 있는 사람들, 유토피아를 희망했던 이들에 의해, 지금의 좋은 세계가 건설된 것은 아닐까. “잠자고 있는 자에게 권리란 없다.” 그리고, “유토피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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