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정하지 않다> 맨 마지막 장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왜냐면, ‘사회는 여전히 충분히 진보적이지 않아’라는 식의 비관론(“이 사회는 빨갱이/페미들이 전부 지배했어!”라는 식의 비관론도 성격은 다르지만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대신 우리가 이룬 것에 자부심을 가질 때, 과감한 변화도 가능하고 다수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을 하면서도 고민이 있었다. 자부심의 정치가 자칫 대책없는 비관론을 대책없는 낙관론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되진 않을까? <추월의 시대>를 읽고 그런 우려를 상당 부분 씻어낼 수 있었다. 우리가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고 그 근거를 객관적으로 하나하나 짚어주기 때문이다. 공채나 저출산, 비정규직 문제 등 구체적인 이슈에 대해 평할 능력은 안 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의 문제의식이 의미 있고, 지금의 대한민국에, 특히 청년세대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뇌리에 남은 몇 가지 내용을 덧붙여본다. 책을 읽고 난 뒤 책을 바탕으로 메모한 내용이라 책의 원문과는 다름.
“한국사회에 팽배한 비관론은 선진국의 이상형과 한국사회의 모자람을 대비해 각성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몸이 웃자란 한국사회는 이제 그런 식으로 진단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 몸이 어떤 방식으로 자라났는지 성과를 먼저 진단하고 본인의 체형과 체질에 걸맞은 해법을 도출해야 한다”
“GDP 세계10위, 촛불혁명, 군사력 6위. 한국은 더이상 선진국 따라잡기에 몰두할 필요가 없는 선진국이다. 일본과 미국(산업화), 서구 유럽과 북유럽(민주화세력)을 롤모델로 삼을 게 아니라, 이제 그런 열등감으로 구성되었던 자의식을 자긍심으로 바꾸는 정치가 필요하다”
“양극화된 대한민국 엘리트들은 무책임의 정치를 반복해왔다. 일이 잘못된 책임을 무조건 상대 당파의 탓으로 돌린다. 자기 판단을 고집하지 않고 아닌 것 같으면 뒤집으며, 또 엘리트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는 ‘책임있는 포퓰리즘’이 ‘무책임한 엘리트’의 정치를 바로잡아 왔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는 그동안 부작용으로 여겨졌으나 사회의 방향을 바꾸기로 결심한 이후부터는 ‘빠른 변화’의 원동력이다. 한국인들이 싫어하는 것은 느릿느릿한 것이 아니라 답답한 것, 즉 피드백 없는 정치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은 안전과 존엄의 문제를 뜸 들이지 말고 ‘빨리빨리’ 해결하길 원한다. 이 요구에 피드백하는 정치세력이 국민의 선택을 받을 것”
“대한민국 역사는 실용적 선택을 해온 중도파가 결정했다. 군부독재세력은 경제성장과 민주화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했고, 민주화세력은 경제성장의 성과 자체를 부정했다. 중도파 시민들은 경제성장, 민주화 둘 다 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유신체제는 부정하지만 박정희의 중화학공업정책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민주화운동가는 존경하지만 주사파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이야말로 한국사회 당파의 세계관 바깥에서 균형추 역할을 했다. 또 청년세대는 이들 중도파에 어울리는 그룹이다. 산업화, 민주화 어느 서사에도 공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와 복지국가를 동시에 지지한다.”
“청년세대에게 필요한 정치는 가장 센 두 세대(산업화‧민주화)를 살해하는 것이 아니다. 살해는 불가능할뿐더러, 두 세대의 핵심적인 오류는 상대방을 부인한 것이다. 두 선배 세대의 성과를 모두 긍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오류를 극복할 수 있다.”
“선진국을 추격하던 대한민국은 코로나 전쟁을 거치며 그들을 추월해버렸다. 한국은 이제 롤모델을 꼽고 그 방향으로 진격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이 해왔던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장단점과 한계, 보완책을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K-스탠다드가 성립하고 한국 사회를 다른 나라의 롤모델로 제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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