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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classic

존 로크 : 정치공동체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통치론

저자
존 로크 지음
출판사
까치 | 2007-06-15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로크의 통치론을 우리말로 옮긴 책. 통치론은 시기를 달리하여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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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로 작성한 날림 글이지만 올려둡니다.


같은 사회계약론자로 분류되지만, 홉스와 로크의 차이는 매우 명확하다. 여러 가지 차이가 있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주권/최고권을 어떻게 상정하고 있는가”라고 할 수 있다. 홉스는 주권이 단일성/지속성을 가져야 한다는 장 보댕의 주장을 계승한다. 보댕은 정치공동체 내에서 발생하는 종교내란과 같은 형태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분쟁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힘을 모두 제압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 주권을 상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주권이 단일성과 지속성을 가져야만 정치적 결정이 단일하게 그리고 권위를 가지고 작동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정치공동체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아가 보댕은 군주 1인이 주권자가 되어야 주권의 단일성과 지속성이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보댕의 생각은 당대의 절대군주정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이론적인 영향을 주었다.


홉스는 보댕처럼 절대군주정의 정당화에서 시작하지 않았다. 그는 혁명을 통해 새롭게 수립된 정치공동체, 크롬웰의 공화정에 “어떻게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서 시작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홉스는 자연 상태의 만인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인위적 인격이자 주권자인 ‘코멘웰스’에게 양도함으로써 사회 상태에 들어선다는 사회계약론의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양도’된 주권이 단일하고, 지속성을 가져야한다는 생각은 보댕과 다르지 않았다.


로크는 이 지점에서 보댕과도. 그리고 홉스와도 단절한다. 로크와 홉스의 차이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통해 정식화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체 로크가 상정한 정치사회에서 ‘주권’은 어디에 있는가?” 근대국가에서 주권 개념을 처음으로 정식화한 장 보댕은 주권이 절대왕정의 군주에게 있다고 말했다. 홉스는 자연 상태가 아닌 사회 상태에서 주권은 인위적 인격이자 주권자인 코멘웰스에게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보댕과 홉스가 주권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하게 설명하는데 반해, 로크는 그렇지 않다. 그는 사실상 최고권력/주권을 다수로 상정한다. 그는 홉스는 결코 언급하지 않았던 ‘임기’나 ‘선출’과 같은 개념을 통해 주권의 지속성에 타격을 가하는데 이어, 다수의 최고권력/주권을 상정함으로써 주권의 단일성에도 (일정 부분) 타격을 가하는 셈이다.


로크는 제일 먼저, 정치사회의 최고 권력을 입법권에 부여한다. 몇 가지 제한이 있지만, “입법권은 모든 국가에서 최고의 권력이다.”(128) 로크가 국가 내에서 입법권이 최고 권력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정치사회의 수립에 관한 그의 논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연 상태에서도 인간을 자유로우며, 천부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 그들이 가진 권리는 “그 향유가 매우 불확실하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침해할 위험에 놓여”(119) 있다. 향유가 불확실한 권리의 대표적인 사례는 재산이다. 따라서 인간은 “비록 자유롭지만 두려움과 지속적인 위험으로 가득 찬 이 상황을 기꺼이 떠나고자”(119)하며, “생명, 자유, 자산의 상호보존을 위해서 사회를 결성할 것을 추구하거나 기꺼이 사회에 가입하려고”(119) 한다.


이처럼 사회 상태에서 인간이 자연 상태와 달리 재산을 보호받을 수 있는 이유는 자연 상태에서는 없는 것들이 사회 상태에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법률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기준이자 사람들 사이에서 모든 분쟁을 해결하는 공통된 척도로서 공통의 동의를 통해서 수용되고 인정된 법률 그리고 확립되고 안정된, 잘 알려진 법률이 없다.”(120) 즉 사람들이 사회에 들어가는 가장 커다란 목적 중 하나가 바로 사회에는 법률이 있기 때문이고, 이를 근거로 입법권은 한 정부의 최고 권력으로 기능한다.


로크는 입법권이 최고 권력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입법권이 행정권보다 우월하다고 말한다. 이는 이론적으로 주권의 단일성을 어떻게든 유지하려는 로크 나름의 노력일 것이다. 집행권을 지닌 집행부는 입법권을 지닌 입법부의 승인과 허가 하에서만 자신의 권력을 발휘할 수 있다. 입법부가 법률로 지정한 내용에 따라서만 집행부의 집행권을 발동한다. 이는 입법부가 법률과 규칙이 위반된 경우 “집행권을 부여하는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144) 따라서, “행정권(집행권)은 입법권에 분명히 종속되고 책임을 져야하며, 또한 입법부의 뜻에 따라 변경되고 해임된다.”(145)
그러나 로크는 혼란스럽게도, 집행부가 최고 권력을 행사할 여지를 남겨 놓았다. 이는 대권과 연합권의 존재 때문이다. 대권이란 법에 의해 사회의 모든 것이 규율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행정권을 가진 자의 재량(의 권력)이다. 이 대권은 두 가지를 근거로 정당화되는데, 첫 째는 입법자의 한계이고, 두 번째는 법의 경직성이다. 먼저 입법자는 미래에 사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법을 ‘불충분’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법의 불충분성을 채우기 위해 집행부의 대권이 인정된다. 또한 법이 모든 것을 세세하게 규정할 수 없고, 제정 의도와 달라질 수 있다는 ‘법의 경직성’ 때문에, 집행부의 대권이 인정된다.


대외적으로 존재하는 집행부의 재량은 연합권이다. 이는 하나의 정치사회가 그 정치사회 밖의 모든 단체, 사람과 마주할 때 발생한다. 전쟁 같은 이러한 상황은 언제 터질지 모르고 사안이 매우 급박하다.(정치공동체의 존폐와 관계되므로) 따라서 이를 해결하는 권한은 ‘상시적’ 권력인 집행권에 부여되며, 이 권리를 ‘연합권’이라 한다. 그렇다면 이 연합권은 어떻게 집행부로 하여금 최고 권력을 행사하도록 하는가? “국가 내에서 구성원들은 사회의 법률에 의해서 지배된다. 그러나 여타 인류에 대해서 그들은 하나의 단체를 구성하며. 그 단체는 이전에 구성원들이 처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타 인류에 대해서는 자연 상태에 놓여 있다.”(140) 즉 국가 밖의 모든 사람 및 공동체와 마주하는 순간, 전쟁과 강화, 연맹과 동맹, 교섭을 하는 순간 그 공동체의 법률은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따라서 집행부는 입법부가 제정하는 법률에 일정 부분 자율성을 누리며 연합권을 발휘할 수 있다.


물론 로크는 입법부가 집행부보다 우월하다고 말했지만, 실제적인 힘(집행력)을 지닌 집행부가 입법부를 무시한다면, 실질적으로 입법부가 집행부를 제어할 방법은 없다. 이런 점에서 로크는 대놓고 집행부에게 최고 권력을 부여하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주었다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동시에 로크는 역시 최고 권력을 ‘인민’에게 부여하기도 했다. 통치론 곳곳에서는 입법권과 집행권에 제약을 가하는 조건들이 등장한다. 공공선이라든가, 인민의 복지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입법부는 자의적으로 법률을 제정하고 공포해서 안 되며, 인민의 복지를 위해서만 법률을 제정하고 공포해야한다. 또한 인민의 동의 없이 그들의 재산에 세금을 부과해서는 안 되며, 법률을 제정할 권력을 그 밖의 다른 사람/기관에게 이전하거나 인민이 그 권력을 설정한 곳 이외의 다른 곳으로 설정해서도 안 된다. “입법부는 일정한 목적을 위해서만 활동할 수 있는 단지 신탁된 권력이므로 입법부가 그들에게 맡겨진 신탁에 반해서 행동하는 것이 발견될 때 입법부를 폐지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최고 권력은 여전히 인민에게 있다.”(155)


또한 로크는 인민에게 집행부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할 경우 이들을 인민이 힘으로 제압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실제적인 집행력을 지닌 집행부가 입법부를 무시한다면 어떻게 될까? 로크는 인민의 힘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국가의 힘을 장악하고 있는 행정권이 입법부가 소집과 활동을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해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148) “인민은 그들의 권력을 행사하여 그들의 입법부를 본래대로 회복시킬 권리를 가지고 있다.”(148)


이렇게 최고 권력이 다수의 곳에 놓여 있다고 할 때,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다수의 최고 권력이 존재하면, 정치공동체가 과연 안전과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대답하기 위헤, 우리는 로크에게 ‘안전’과 ‘평화’란 무엇인지 상기해야 한다. 홉스와 비교해보자. 홉스가 설명한 대로라면,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생명을 위협받고 늘 전쟁 상태에 시달린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안전과 평화를 보장받기 못하기 때문에, 주권자에게 권리를 양도하며 사회 상태로 들어선다. 반면에 로크에게 자연 상태란 불안정한 상태일 뿐이다. 자유와 권리가 있으나, 그것을 ‘확실히’ 보장받지 못하는 상태가 자연 상태이다. 이를 보장받기 위해 인간은 사회 상태에 들어선다. 즉 로크에게 ‘안전’이란 내 재산과 생명과 자유가 보장받는 상태이며, 평화 역시 그러한 상태이다. 정치공동체를 이를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만일 사회 상태에서 그 ‘목적’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누군가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들은 자연 상태보다 더 열악한 상태에 처하게”(132) 된다. 자연 상태에서 인민들에겐 자신의 권리를 방어할 자유와 힘이라도 있다. 그러나 사회 상태에서는 강한 권력을 지닌 권력자들이 탄생해버렸기 때문에, 이들로부터 인민 개개인은 자신을 방어하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로크는 권력을 분립하여 권력의 자의적이고 법률에 근거하지 않는 행사를 방지하고, 또 제한하고자 했던 것이다. 행정권과 입법권의 분리는 이 때문이다. 또한 이를 어길 경우 인민이 기존의 정치사회를 뒤집어엎을 수 있는 것도 당연하다. 내 재산과 자유와 생명이, 즉 안전과 평화가 보장받지 못한다면 굳이 왜 이 정치사회에 남아 있어야 하는가?


따라서 다수의 최고 권력으로 인해 정치공동체가 안전과 평화를 유지하기 어렵지 않을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 로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최고 권력을 한 곳에 두는(홉스 식처럼) 방식으로는 정치공동체가 안전과 평화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처럼 안전과 평화를 유지하지 못하는 정치공동체는 인민의 손에 해체되어 마땅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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