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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인문, 사회과학

아프다고 말하는 게 청춘이야!

 


레알 청춘

저자
청년유니온 지음
출판사
삶이보이는창 | 2011-06-03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순도 100% 청춘들의 가슴 찡한 고백일하고 꿈꾸고 저항하는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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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라는 말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의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 말도 없을 것이다. 청춘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사람들은 공통적인 것들을 떠올린다. 낭만, 그렇다. 청춘을 경험했던 자이든, 아직 경험하지 않은 자이든 청춘은 무언가 낭만적이다. 왜 청춘은 낭만적인가? 반항, 도발, 상상력, 순수, 도전, 열정, 패기! 청춘이 낭만적인 이유는 이러한 단어들과 청춘이 결합되기 때문이다.

사사건건 대립하는 진보와 보수라는 이들도 청춘 앞에서는 그 의미에 합의를 이룬다. 현재의 체제를 긍정하는 보수는 현재의 체제를 더 잘 굴러가게 할 청춘들의 도전과 열정에 희망을 건다. 자본주의의 핵심 가치인 도전정신과 모험심. 창조! 그것은 청춘이 가진 낭만과 매치한다. 청년들은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하며 훗날 이 체제에서 성공하기 위해 청춘을 바친다.

현재의 체제를 개혁하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자는 진보 역시 청춘이라는 낭만에 동조한다. 젊은 애들이라면 사회에 도전하기도, 체제에 저항하기도 해야지! 비현실적으로 보일지라도 다양한 대안들에 대해 툭툭 던져보기도 하고 말이야! 80년대 대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정부를 상대로 짱돌도 던져보고 소리도 지르고 말이야. 이들에 따르면 청년들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한다는 ‘순수한’ 열정을 통해 사회에 반항하면서 청춘을 바친다.

그렇기 때문에 ‘20대 개새끼론’이 20대를 어리다고 깔보는 어른들이 아니라 청년들을 꽤나 존중해주는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어른들로부터 유래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보수적인 어른들 못지않게 진보적인 어른들 역시 청춘에 대한 낭만과 온갖 전형적인 이미지들을 공유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청춘에 대한 낭만은 진보적인 어른들이 더 심하다. 일부 보수적인 어른들은 “어린 것들이 뭘 안다고, 세상 물정 모르고 그러는 거지.”라고 청춘을 미성숙과 동일시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에 반해 진보적인 어른들은 적어도 청춘이 무언가를 이룰 수 있으며, 이들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하고 그렇기 때문에 청춘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청춘에 대한) 개념과 현실이 다를 때, 현실이 아직 ‘개념대로 실현’되지 않았음을 탄식한다. 그리고 말한다.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

88만원 세대 이후 세대론이 한창 유행하던 시기『문학 동네』에서 주최한 ‘청춘의 종언’ 좌담회는 진보적인 어른들이 얼마나 청춘에 낭만을 품고 있는지, 그리고 이 낭만을 준거로 어떻게 ‘꼰대’짓을 할 수 있는 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이 좌담회의 대담자들은 20대를 ‘불안’이라는 단어로 규정하면서 요즘의 이십대들이 반항, 도발, 상상력, 순수, 열정 등 청춘의 특질들을 상실한 존재이자 젊음 고유의 패기나 무모함이 부족한 존재라고 평가했다. 특징이 없다, 겁에 질려 있다, 계급적 열등의식을 완전히 내면화하고 있다! 등등.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이 좌담회의 제목대로 청춘이 ‘종언’했다고까지 이야기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세대론의 문제의식을 20대의 ‘자기계발론’이 이어받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20대가 어때야 한다는 그 모든 주장에는 청춘에 대한 낭만적 도식들이 포함되어 있다. 20대가 세대 착취를 받고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타개한단 말인가? 아, 우리의 20대는 청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 청춘 본연의 모습에는 꼭 진보적인 어른이 상정하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순수한 열정을 쏟아 붇는 20대의 모습만 포함되어 있지는 않다.

조선일보와 변희재는 이러한 전제를 누구보다 빨리 캐치했다. 변희재는 70년대 이하 생들로 386세대와는 달리 인터넷과 대중문화를 기반으로 전 세계를 연결하는 새로운 실크로드를 열어가는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라는 뜻의 ‘실크로드 세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는 조선일보의 도움을 받아 실크로드CEO포럼이란 단체를 만들어 회장으로 취임했고 현재 20대가 처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대안들을 제시했다. 대략 20대가 취직을 못하니 해외취업을 하거나 인터넷 관련된 창업을 해서 경제적 난국을 타개하자는 말이었다. 20대가 취업을 못하는 상황을 청춘이 가져야 할 본연의 도전정신과 창조정신으로 타개하자는 주장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우석훈이 조선일보와 변희재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그런 식으로라도 세대론이 소비된다면 좋은 것’이라고 말했을 때 경악했지만, 이건 어쩌면 경악할 일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세대론을 창안한 우석훈이건, 세대론의 문제를 20대의 도전과 창조정신으로 해결하자는 변희재건 둘 다 청춘에 대한 낭만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춘에 대한 낭만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수사가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다. 이 표현이 담고 있는 의미는 두 가지이다. 1) 현재 20대는 아프다! 2) 그러나 그것이 바로 청춘 아니겠는가. 물론 이러한 표현을 하는 어른들이 전부 악의적으로 “20대 너희 아프다고 징징대지 말고 청춘답게 행동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 표현을 책 제목으로 사용한 김난도 교수는 오히려 자신의 책에서 20대를 최대한 이해하고,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어떠한 청춘에 대한 이야기들도, 그것이 청춘에 대한 낭만을 포함하고 있는 한 청년들의 자기희생과 현실에 대한 정당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야. 그러니까 참아라!” 김난도의 책이 다른 자기계발서와 차별성을 갖는 부분은. “참아야 하는데, 그거 참을 수 있게 내가 도와줄게. 덜 아프게.”라고 말해주었다는 데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많은 어른들이, 그리고 많은 청년들이 생각하는 청춘, 그것이 바로 진짜 ‘청춘’이 맞는가?

최근 청년유니온이 펴낸 책『레알 청춘』은 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시하고 있다. 청년유니온의 조합원들은, 현장에서 노동하고 저항하고 있는 청년들을 만났다. 종합격투기 선수, 도매점 배달원, 연극배우 지망생, 만화작가, 임용고시 준비생, 지방대 취업 준비생, 공기업 계약직, 학원 강사, 방송작가, 비정규직 연구원, 방송국 시설 관리 파견 비정규직. 그들은 자신의 꿈을 위해, 자신의 생계를 위해 노동을 통해 세상과 싸우는 청춘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들은 동시에 자신들이 싸우고 있는 현실에 담담히 털어놓는다. 모두가 꿈을 지니고 꿈을 위해 살아가지만, 현실은 그 꿈을 꾸는 ‘나’조차 유지하지 못하게 만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또 한 번 확신했다. 이렇게 열심히, 열정적으로,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자신의 생계조차 유지할 수 없다면, 그 이유는 그들이 덜 열정적이고 덜 창조적이어서가 아니라, 사회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청춘들은 소리 지른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프다면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 청춘이다! 고통스럽다고, 나 힘들다고, 그러니까 이렇게 바꿔달라고 소리 지른다. 이전에 모 예능프로그램에 나온 배철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적어도 지금의 청년들은 이 세상에 대한 책임이 적어요.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든 건 청년들이 아니지요, 그래서 자유롭게 세상에 대해 불평할 수 있는 게 청년들입니다.”

나는 이것이 청춘에 대한 가장 적절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잘못이 없다. 그리고 사회는 우리에게 더 열정적이고 더 창조적이 되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다. 사회는 우리에게 한 학기에 10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요구할 수 없으며, 한 시간에 채 5000원도 주지 않으며 노동을 시켜서도 안 된다. 이건 너희가 만든 거지 우리가 만든 게 아니라고, 젠장!

레알 청춘은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 지르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정확한 현실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담담한 그들의 목소리에는, 그리고 솔직한 인터뷰이들의 목소리에는 이 청춘들이 나서면 세상을 뒤집을 수 있을 것이라는 다소 낭만적인 기대도, 그래봤자 안 된다는 냉소도 없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건 그들이 처한 객관적인 현실이다. 대한민국에 사는 대부분의 청춘들이 처해 있는 그 현실. 그리고 그 현실에 대해 소리 질러야 한다는 것, 그것이 ‘레알 청춘’이라는 것. 이 사실을 말하기 위해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특별한’ 20대들을 만나지도, 혹은 그러한 인생 선배들을 찾아가지도 않았다. 평범하지만, 하루하루를 싸우며 살아가는 이들을 만났다.

나는 청년유니온이 여태까지 이러한 방향으로 활동해왔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청년유니온은 아프지만 소리 지르지 못하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일하지 못하는, 일하지만 불안정한 노동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또한 청년유니온은 단순히 아프다고 소리만 지르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이 처한 객관적인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입으로는 청년실업이 문제라고 개나 소나 외쳐도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편의점 알바생 실태조사를 청년유니온이 처음 했다. 청년노동자가 어떻게 일하고 어떤 대우를 받는지, 그 현실에 대해 알기 위해 청년유니온은 ‘레알 청춘’이 그랬던 것처럼 평범하지만, 하루하루를 싸우며 살아가는 아르바이트생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모아냈고 그들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청년유니온이여, 그대들이 바로 ‘레알 청춘’이다. 그리고 그대들이 대변하고 집약해야 할 목소리가 바로 ‘레알 청춘’이다. 그대들이 지금까지 나아갔고, 앞으로 더 나아가야할 방향이 바로 ‘레알 청춘’이다. 레알 청춘답게, 그렇게 앞으로 쭉 힘내길 기원한다. ‘별 일 없이 산다.’는 말이 모든 청춘들에게 ‘기쁘게 들리는’ 그 날까지, 투쟁하고 또 투쟁하자, 화이팅!


<한겨레 훅>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