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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온 밀양 할매들 “박근혜 밀양 와서 봐라”

서울 온 밀양 할매들 “박근혜 밀양 와서 봐라”

밀양 주민들 상경, 청와대에 항의서한 전달…“명분 잃은 송전탑 공사 중단하라”


한전의 밀양 송전탑 공사재개를 몸으로 막았던 밀양 주민들이 서울로 올라와 “박근혜 대통령이 밀양에 내려와서 직접 문제를 해결하라”는 내용의 항의서한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18일 11시 30분 밀양에서 올라온 주민 80여명과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대책위(이하 대책위) 활동가들이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명분이 사라진 밀양 송전탑 공사를 즉각 중단시켜줄 것”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준한 대책위 위원장은 “한전이 시급한 공사재개를 촉구했던 명분은 신고리 원전 3호기 때문이었는데, 신고리 3호기의 부품에 문제가 드러나 공사가 1~2년 늦춰지게 됐다”며 “이제 정부가 공사를 강행할 명분이 없다. 정부가 다시 한 번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한전은 지난 2일 밀양 송전탑 공사재개를 선언하며 신고리 3호기의 원활한 가동을 위해 밀양 송전탑 건설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지난 16일 한수원이 신고리 3‧4호기의 케이블 부품이 성능 재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고 밝히면서, 신고리 3호기의 준공 시점이 1-2년 늦춰지게 됐다.

이에 따라 밀양 송전탑 공사재개의 명분도 사라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주민들과 대책위가 계속 신고리 3호기의 위조부품 때문에 공사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해왔는데, 그 말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며 “신고리 3호기가 준공되려면 2년 이상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도 왜 공사를 강행하고 있나”고 말했다. 하 위원장은 또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이런 상황에 대해 설명하면 대부분의 시민들이 ‘급하지도 않고 필요도 없는데 왜 그렇게 공사 하냐’고 묻는다”며 “이런 생각이 시민들의 상식인데 한전과 정부만 모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밀양에서 올라온 주민들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김길곤 평밭마을(밀양시 부북면, 82세) 자치의장은 “새마을 운동에도 참여해 이 나라를 건설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이렇게 몰아붙이고 못살게 구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우리가 돈을 달라고 하나, 옷을 달라고 하나. 그저 아름답고 깨끗한 고향 땅을 오염 안 된 채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가만히 내버려 달라는 것이 우리의 요구”라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전과 정부가 독재시대 때 하던 그 방법대로 우리를 내몬다. 공산주의도 이렇게는 안 한다”며 “주민들하고 대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장면 주민 송영숙(57세)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등 4대악을 척결한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금 정부가 우리에게 자행하고 있는 것 역시 폭력”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밀양으로 내려와야 한다. 직접 현장을 보고 무엇이 옳은지 말씀해 달라”고 말했다.

밀양 송전탑 사태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언론에 대해서도 송씨는 “양심있는 기자들이 밀양에서 와서 기사를 써도 위에서 다 편집하고, 제대로 된 기사가 안 나온다. 나아가 우리를 종북세력으로 만들어 이용한다”며 “조선일보는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썼더라. 수십 명이 다치고 있는데 뭐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거냐”고 반문했다. 산외면 보라마을 주민 한정래씨(56세)도 “신고리 원전 3-4호기 부품이 고장나서 2-3년 동안 밀양 송전탑을 짓지 않아도 된다던데 TV에는 그런 내용이 보도가 잘 안 되더라”고 지적했다.

주민들과 대책위는 기자회견을 통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촉구했다. 대책위는 “대통령께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행복해지는 나라를 이야기했다”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밀양 송전탑 사태는 일생을 국가와 이 사회를 위해 묵묵히 노동하며 헌신한 이 어르신들에 대한 너무나 심대한 모멸”이라고 말했다.

대책위는 이어 △명분이 사라진 밀양 송전탑 공사의 즉각적인 중단 ▲송전탑 공사를 강행한 책임자 처벌 △송전탑 논의를 위한 사회적 공론화기구 구성 등을 요구했다. 김준한 대책위원장과 이남우 밀양 주민대표는 이러한 내용이 담긴 서한을 청와대 민원실에 전달했다.

다음은 밀양주민이 박 대통령에 보내는 공개서한 전문이다.

<박근혜 대통령께 드리는 밀양 주민들의 공개 서한>

국정에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지금 밀양 송전탑 주민들은 18일째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서 하루하루 지옥 같은 나날들을 지내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언론을 통해서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장의 상황은 이보다 훨씬 참혹합니다. 벌써 33명이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22명이 연행되었습니다. 태풍이 지나가는 비바람 속에서 비닐을 뒤집어쓰고 농성하는 주민들이 있습니다. 쇠사슬을 묶은 노인의 사지를 들어 짐승처럼 끄집어내는 강제 해산은 날마다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끔찍하고 처참한 상황들이 밀양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할머니들이 ‘이렇게 사는 것이 죽는게 낫다’고 울부짖습니다.

대통령께서는 밀양 송전탑 문제와 관련하여 과연 누구로부터 보고를 받고 계십니까? 아마도 청와대 비서관, 총리실 간부급 공무원들이 올린 보고서를 보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분들은 밀양 현장에 와 봤을까요? 다녀왔다면 누구를 만나고 왔을까요? 극소수 찬성 측 주민대표들, 관변단체, 한전 관계자, 이 분들이 아닐까요? 오늘 이 자리에 몰려온 이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밀양 송전탑 문제는 이렇게 극렬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전개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님!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밀양 주민들이 왜 이렇게 8년동안이나 국책사업을 막아서고 있는지, 보수언론이 ‘외부세력의 사주에 넘어간 몽매한 시골 노인들’로 매도해도, 인터넷상의 입 험한 자들이 ‘보상금 더 받으려고 떼쓰는 노인네들’로 매도해도, 왜 이렇게 노인들이 목숨을 걸고 막고 있는지 그 이유가 정말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밀양 주민들은 이미 국무총리까지 내려와서 힘을 실어주었던 정부의 보상안을 경과지 전체 주민 64%에 해당하는 2,263명이라는 압도적인 반대 서명으로 거부했습니다. 서명에 동참한 자녀들까지 포함하면 전체 80%에 육박하는 숫자입니다. 밀양 송전탑 문제는 절대로 보상으로 풀 수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님! 지금 신고리3호기 핵심 부품인 제어케이블이 성능 테스트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미 예고된 일이었습니다. 신고리3호기 준공은 2년 이상 미루어졌습니다. 밀양 송전탑 공사는 급하지 않습니다.

대통령께서는 ‘국민 한사람 한 사람이 행복해지는 나라’를 이야기하셨습니다. 모든 국민의 삶이 소중하지만, 더더욱 이 어르신들의 삶은, 이 분들의 노년의 행복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어르신들은 이 나라가 가장 힘든 시기에 태어나 모두가 떠난 시골 농촌을 지키며 가장 그늘진 곳에서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왔고 자식들을 길러내 오늘날의 이 나라를 만든 분들입니다. 그러나, 지금 어떻습니까? 지금 벌어지고 있는 밀양 송전탑 사태는 일생을 국가와 이 사회를 위해 묵묵히 노동하며 헌신한 이 어르신들에 대한 너무나 심대한 모멸입니다.

아무런 명분도 정당성도 없는 공사를 지금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과연 이래도 되는 것입니까? 이렇게 강행되는 공사 속에서 생겨날 일들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까?

밀양 주민들은 대통령께 이렇게 요청합니다.

1. 명분이 사라진 밀양 송전탑 공사를 즉각 중단시켜 주십시오.

2. 책임자를 처벌해 주십시오. 아무런 시급성이 없었던, 핵심 관계자들은 모르지 않았을 작금의 이 사태를 예견하고 있으면서도 밀양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여 주민들을 말할 수 없는 고통에 빠뜨리고, 공권력을 낭비하게 한 실무 책임자, 국무총리실,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전력, 경찰청의 책임자를 처벌해 주십시오.

3. 밀양 송전탑 사회적 공론화기구를 구성해 주십시오! 밀양 송전탑 문제는 밀양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앞으로 수많은 공공갈등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밀양 송전탑 문제는 이 갈등을 풀어갈 수 있을 좋은 선례가 되어야 합니다. 이미 언론을 통해 밀양 송전탑에 얽힌 건강권의 문제, 재산상 피해의 문제, 타당성과 대안에 대한 이야기가 사회적 공론으로 떠올랐습니다. 밀양 송전탑 사회적 공론화 기구를 구성해 주십시오!

2013년 10월 18일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