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생활전선 기획을 위해 두 가지 공동체에 대한 발제를 준비했다. 첫 번째가 수유+너머이고, 다른 하나가 지행네트워크이다. 일단 수유+너머에 대한 글부터 올려둔다.
수유 + 너머 : 코뮌주의적 공동체를 향한 일상적 삶의 공간
2000년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수유 연구실과 이진경, 고병권의 연구 공간 너머가 합쳐서 만들어진 수유+너머는 공부와 생활을 일치시키며 대안적 지식공동체를 실험해왔다. 물론 수유+너머는 세미나와 강좌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점과 ‘지식공동체’라는 문제의식과 코뮌주의라는 이념적 지향성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20대의 경제적. 정치적 자립을 통한 주체화에 주력하는 공동생활전선과는 차별점이 많은 공동체이다. 그러나 연구자 집단에서 시작하여 밥상 공동체로 진화한 일상적 삶의 공간의 구성능력과 코뮌들의 네트워크(코뮤넷 슈유너머)에 대한 상상력 등은 공동생활전선에 큰 참조가 될 것이라 생각하기에 이들의 활동 내역에 대한 사전 조사를 실시했다.
1. 대략적인 개요
수유+너머의 발전과정은 크게 4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1) 와이빌딩에서의 수유 연구실과 연구공간 너머의 독립채산체제 2) 수유+너머로의 통합과 밥상 공동체의 시작을 이룬 석마빌딩 시기 3) 코뮌주의적 정체성과 규약을 확립한 원남동 연구실 4) 코뮌들의 네트워크를 설립한 최근의 코뮤넷이 그것이다.
대학 진출이 목표였던 박사학위 소유자 고미숙은 대학 체제의 한계와 벽을 실감하고 교수되기의 두 가지 동력이었던 경제적 자립과 배움터(학생들과의)를 해결할 다른 대안을 마련하고자 한다. 그래서 권보드래 등과 함께 수유리에 공부방을 만든다.(강북구청 뒤편 건물 3층 20평, 보증금 2천에 월세 40) 공부방이라는 열리고 텅빈 공간은 다양한 접속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만들어낸다. 고미숙은 서사연(서울사회과학연구소)에 드나들면서 그곳의 회원들인 이진경, 고병권 등과 교류하면서 고전연구 등에만 빠져 있던 학문적 관심사를 들뢰즈/가타리, 니체/라이히 등으로 확장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여전히 대학의 분과체제를 전제로 하는 대학 외부의 지식공동체들의 한계를 뛰어넘고 지식의 횡단을 도모하기 위해 서사연 멤버들과의 교류를 확대한다. 서사연 회원들을 초청하여 니체, 푸코, 라이히, 데리다, 라캉 등에 대한 강의를 개최하면서 공부방은 열린 공간이 되고, 이 강좌에 참여한 이들이 공부방을 드나들고 이진경, 고병권 등이 공부방에 상근하면서 공간 문제와 거리 문제가 시급해지자 고미숙은 강북을 벗어나 도심 한가운데로 진출하고자 한다. 서사연도 마침 분화되면서 새로운 거처를 찾는 중이라 함께 대학로의 와이빌딩에 정착한다.(40평 규모 3층, 보증금 2,500에 월세 100) 이때는 고미숙 등의 수유연구실과 이진경, 고병권 등의 연구 공간 너머가 독립채산 형태로 공존한다.
원래 수유 연구방은 고미숙이 운영비를 전담하는 체제였으나 와이빌딩에서부터는 연구실의 운영이 공적인 체계로 전환된다. (비록 여전히 보증금 2,500을 고미숙, 이진경이, 월세 100만원 중 70만원 고미숙이 부담하긴 했지만) 수유리 시절부터 강좌를 들었던 회원들에게 강좌를 공짜로 듣게 해주는 대신 매달 월 3만원 이상의 일반회비를 내도록 제안했으며 정규회원이 되기 이른 신입회원은 세미나 개수에 무관하게 회비로 한 달에 만원을 납부하도록 했고 세미나 간식은 팀별로 해결하도록 했다. 또한 강좌 수입은 간사비 약간을 제하고 강사에게 전액 지급하는 등 강좌비와 운영비를 분리했다. 그 결과 운영이 안정되어 강좌의 흥행에 신경 쓰지 않고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었다.(성공한 천개의 고원, 마니아적 계몽의 수사학) 강사료가 차별화되면서 흥행 성공한 강사가 강사료 일부를 운영에 보태는 특별회비도 생겨났다. 현재는 전체 수입의 10%를 공간사용료의 명분으로 연구실 운영에 보태고 강좌 전체를 기획, 운영하는 매니저들에게 인건비를 부여하는 등의 운영 원칙의 변화가 생겨났으나 강좌와 운영을 분리하고 강의를 통해 지적 실험을 하는 원칙에는 변화가 없다.
세미나, 강좌 체제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정규회원들이 증대하기 시작하자 와이빌딩이 비좁아졌고, 건물주와의 갈등이 늘어나면서 수유연구실과 연구 공간 너머는 (보증금, 임대료가 2배 이상에 달하는) 마로니에 공원 뒤의 석마빌딩 5층 60평으로 거처를 옮긴다. 석마빌딩으로 옮기면서 수유연구실과 연구 공간 너머가 하나로 합쳐지고 마침내 수유+너머가 탄생한다. 석마빌딩 5층은 상근자 방, 세미나실 겸 식당으로 나뉘어졌는데 이때부터 비로소 연구실 안에서 밥을 해먹을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주방 문제가 핵심 이슈로 등장.) 또한 탁구대를 식탁 겸 세미나 테이블로 사용하면서 운동이 가능해져 지식공동체가 비로소 밥-운동이라는 일상적 삶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공간이 커지면서 다양하고 이질적 활동이 동시적 가능하면서 연구실에 오는 발걸음이 가벼워져서 연구실 식구들이 증대했고 밤샘 작업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자 상근자 방구석에 수면방도 만들어졌다. 그 결과 강의 공간과 상근공간이 더 필요해져서 빌딩 4층으로까지 확장했고 카페도 만들어졌다. 증가한 보증금과 월세에 대해서는 보증금은 고미숙, 이진경이 부담하고 월세는 일반회원의 회비, 세미나 회비, 특별회비로 충당하는 식으로 운영했다. 이 각종 회비는 고정된 것이 아니지만 활동성과 회비 수납률이 상호비례하면서 매달 활동의 수준을 확인 가능해지는 장점도 생겨났다. 이처럼 석마빌딩은 공간을 활용하는 온갖 실험과 시행착오의 시대였다. 이후 홈페이지까지 제작하면서 수유+너머의 공간 실험은 온라인으로까지 확장된다.
공간 활용의 문제(3층으로의 분할, 옥상과 마당, 많은 창문)와 교통의 문제 등으로 원남동으로 옮겨온 시기부터 수유+너머는 코뮌주의적 정체성을 명확히 한다. 이는 석마빌딩에서 수유+너머가 일상적 삶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발전한 데에 따른 결과였다. (구체적인 코뮌주의적 노력들은 뒷부분에서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고병권, 정선태, 이희경, 권보드래 4명의 대표들이 연구실을 운영하고 고미숙과 이진경은 프리랜서로서 자신이 알아서 새로운 활동을 구성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또한 작년부터 수유+너머는 소규모 연구공동 체의 지역 간 네트워크로 조직을 개편했다. 수유+너머는 기존 연구실을 하나의 코뮌이자 네트워크의 일부인 서울의 베이스캠프로 삼고 접근성(사이 공간으로서의)이 뛰어나고 농촌 공동체와의 교류가 가능한 서울 근교의 문호리를 또 다른 베이스캠프로 삼은 데 이어 ‘수유너머 구로’, ‘수유너머 길’(동작구), ‘수유너머 강원’(춘천), '수유너머 N'(서대문 북아현동), ‘수유너머 r'(용산) 등의 네트워크를 조직했으며 다른 지역으로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 고병권은 조직의 숙련도는 강화되는데 자생력은 어느 순간부터 정체되어 있기에 자생력을 갖춘 여럿으로 산개해 현장에서 사람들과 만나는 방법으로 조직을 성장하게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구로 지역은 2008년부터 수유+너머가 진행해 온 청소년 인문학 공부방을 중심으로 신길동은 탈성매매 여성과, 춘천에서는 인문학에 관심 많은 주민들과 밀착도를 높일 계획이다. 충청. 영남지역에서도 지역 조직 설립 논의가 활발하며 여러 해 동안 먹을거리와 교육 프로그램을 품앗이해 온 전북 부안의 변산 공동체와의 교류도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공부방에서 시작한 수유+너머는 밥상 공동체와 삶의 공간을 거쳐 코뮌들의 네트워크로 진화하고 있다.
2. 코뮌주의를 향한 운동 : 배치
코뮌은 서로의 기쁨과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기쁨이 기쁨을 낳고, 능력이 또 다른 능력을 낳고, 능력이 또 다른 능력의 증식을 낳고. 이 과정은 신체를 바꾸는 과정이다. 이 과정 속에서 수동적 위치에 있던 이들이 ‘기쁜 능동촉발’을 가능케 하는 신체로 변이된다. 신체적 변이 속에서, 관계의 새로운 생성 속에서만 코뮌주의는 실현 가능하다. 코뮌주의는 외부를 향한 감염력을 발휘하며, 다른 대상들을 촉발한다. 이런 점에서 코뮌주의란 우리가 미래에 도달해야 할 어떤 장소나 상태가 아니라 지금의 현실을 종식시켜 나가는 살아 있는 노동의 현실적 힘이며 바로 지금, 우리 시대에 내재하고 있는 울림이다.
수유+너머의 활동들은 위에서 묘사된 코뮌주의를 실현해왔다. 일단 연구실이라는 대안지식공동체의 탄생 자체가 사유화된 앎을 넘어선 열린 광장의 설립을 통해 지식을 박제하지 말고 앎의 기쁨을 만끽하자는 것이었으며, 이들의 ‘열림’은 지적 경계를 넘나들며 진행되었다. 강좌와 세미나를 통한 우발적 마주침들이 텅 빈 공간인 연구실을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으로 만들었고 세미나가 세미나를 낳으며 진행되는 지적 횡단은 연구자들의 예측을 넘어서 뻗어나갔다. 연구실이 개인집필 공간에서 세미나와 강좌의 공간, 주방과 탁구대를 겸한 삶의 공간으로 커져가면서 구성원 개인은 연구자와 집필자에서 강의 기획자, 밥 하는 자 등으로 모드 변환한다. 수유+너머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면서도 그들은 열린 공간을 더 이상 ‘닫히게’ 놔두지 않았다. 출판 매니저들과의 접속은 일 년에 열권이 넘는 저서를 생산하게 했으며(대표작이 그린비의 리라이팅 클래식) 텍스트를 주름잡는 외부들, 외부의 주름들인 이들의 활약으로 저자 자신도 알지 못하는 능력이 발현되었다. 고미숙은 리라이팅 클래식을 통해 고전평론가-되기에 성공했고 짧은 글 하나 써보지 못한 권용선은 계몽의 변증법을 읽어낸 ‘촉망받는 신예’가 된다. 그들은 또한 각 지역 네트워크들과의 접속을 통해 코뮌들의 코뮌을 구성하고자 끊임없이 스스로를 열어젖힌다.
이들은 이런 코뮌을 위해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규약을 확립해 나갔다. 코뮌을 깨뜨릴 가장 큰 위협이었던 밥 하는 문제와 관해, 그들은 설거지 감을 줄이기 위해 음식을 남기지 않기로 한다. 이는 다양한 활동을 체험하기 위해 최대한 노동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다. 같은 맥락에서 요리하는 과정과 식사 후의 설거지를 간결이 하기 위해 기름기 많은 음식을 피하려고 육식을 금지했다. 번거로움은 코뮌적 규칙과 어울리지 않는다. 이와 같은 음식쓰레기, 육식과의 전투에서 터득한 또 다른 윤리적 강령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이다. 이 규칙은 모든 활동에 적용되는 범 연구실 차원의 규칙으로, 이는 공간이 비어 있어야, 즉 외부를 향해 열려 있어야 코뮌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청결해야만 열림, 변이가 가능하며 공간이 하나의 기능에 의해 막혀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낭비이다. 석마빌딩 5층의 가운데 공간, 식당 겸 세미나실 겸 탁구장이 각자의 기능에 맞게 빨리빨리 전환되려면 청결은 필수이다. 더 나아가,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타인의 노동을 무상으로 점유하려는 일종의 착취다. 이는 공간은 물론 시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은 타인의 시간을 무상으로 점유하는 것이며 활동 전반을 침체시키는 주범이자 치명적 흔적을 남기는 행위다. 시공간에 대한 태도를 투명하게 하지 않고서는 코뮌적 관계란 결코 가능하지 않다.
12월 테제 <연구실이 코뮌이 되려면> / 고미숙
공간이 왜 청결해야 하는가? 그것은 공간-기계를 활용하는 가장 쉽고도 분명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수행자들의 암자 혹은 달동네 빈민운동가들의 낡은 집에 들어가 보라. 조금도 불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실제보다 훨씬 넓게 느껴진다. 이유는 청결하고 소박하기 때문이다.(무소유와 궁핍의 차이!) 공간과 관련하여 외부성이란 외부자들을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는가 하는 구체적 사안이다. 낯선 사람이 와서 공간에 호의를 가질 수 있는 최우선적인 길이 청결과 친절 말고 달리 무엇이 있는가? 특히 여러 사람이 함께 쓰는 공간은 무조건(!) 청결해야 한다. 그래야 탁구대와 세미나 테이블, 혹은 식탁 등으로 변이하기에 용이해진다. 더럽다는 것은 공간을 축소시키고 변용가능성을 떨어뜨린다는 의미에서 ‘무능력’(혹은 공간의 부르주아적 소유)'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코뮌주의를 위한 또 다른 강령은, 원남동 연구실 3층 공부방의 기본규칙이기도 한 ‘책상 위에서 유목하기’이다. 연구자들은 신입자들이 오면 자신의 책상을 내어주며 이동한다. 책상 뿐 아니라 ‘앉아서 유목하기’도 실천해야한다. 한두 분기를 기준으로 모든 활동을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맡는 방식인 유목적 배치로 일을 분배한다. 끊임없이 변이를 추구하면서 활동마다 특징을 부여할 수 있어야 외부와 소통하는 능력이 증대된다. 코뮌은 자족적이기에 실패한다. 내적 경계의 고정, 즉 경계의 명료함은 개인이든 집단이든 그 활동 에너지를 위축되게 만든다. 고로 수유+너머의 조직표는 다른 조직처럼 체계적이지 않고 중구난방이다.
코뮌을 운영하는 데 필수적인 또 하나의 요소는 힘이다. 코뮌도 힘이다.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신체는 수동적, 방어적이 되며 건강할 때, 내적 에너지가 밖으로 흘러넘칠 때 남을 배려할 수도 감염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연구실에서는 하루 종일 운동프로그램이 돌아간다. 수유+너머의 전통 스포츠인 탁구는 물론 옥상에서의 제기와 산책, 요가, 등산까지.(이진경이 요가의 절정고수라 함.) 연애에 관해서도 룰이 있다. 연애의 자유를 맘껏 누리되, 그것으로 코뮌의 흐름을 막지는 말라. 커플의 블랙홀에 빠져 다른 관계들로부터 고립되어 섬이 되어버리거나, 커플 사이의 다툼이 다른 활동에 계속 장애요소가 되어서는 안된다.
수유+너머에는 단 하나의 차별 요소만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유머감각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이다. 진지함은 공동체의 치명적 약점으로 이 진지함은 상하위계를 작동하게 하고 안팎의 경계를 뚜렷하게 하여 결국 공동체의 정체를 가져온다.(가장 진지한 사람이 이진경이라 함.) 이 때 유머란 특별한 개그능력이 아니라 강철 같은 명랑성(니체)을 뜻한다. 마음의 경계를 푸는 것으로서의 유머는 노마디즘의 토대다.
위의 모든 규율들보다 더 근본적으로 코뮌에 가장 큰 방해가 되는 요소이자 문턱이 있다. 바로 자의식이다. 코뮌에 참여하는 이들은 생활 패턴을 바꾸어야 한다. 하기 싫은 주방당번과 청소와 정리를 해야 하고 원래 버릇보다 일찍 일어나야 할 수도 있으며 세미나도 열심히 해야 한다. 집합적 리듬에 동참하지 않고, 예컨대 약속을 어기거나 시간에 늦거나 발제를 펑크 내거나 하는 것 등은 치명적 결함이다. 타인의 간섭을 절대 받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이 문턱에서 걸려 넘어질 것이다. 많은 공동체들은 이러한 자의식, 자존심, 자기에 대한 집착의 충동으로 실패했다. 돈과 지위, 명성을 버리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바로 이 무의식에 새겨진 자의식을 버리는 일이다. 자신에 대한 맹목적 집착을 버리지 않는 한 코뮌은 불가능하다. 욕망과 능력에 따라 자유롭게 활동하되 코뮌적 리듬을 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습속이 나로 하여금 그리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지 명료하게 보아야 한다. 자의식, 그것이 코뮌의 가장 큰 적이다.
3. 코뮌주의를 향한 운동 : 축제
이 절에서는 수유+너머가 본래의 정체성인 ‘지식의 향연’을 위해 어떤 시도들을 해왔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수유+너머에는 석마빌딩 시기부터 원남동 연구실 시기까지 카페 트렌스라는 특이한 시설이 있었다. 인터뷰 전문 웹진 <퍼슨웹>이 운영하는 카페에 방문한 수유+너머는 그 구조에 반해 연구실에도 카페 트렌스라는 공간을 마련한다. 세미나실이나 강의실은 아무리 개방한다 해도 외부와의 소통능력이 제한되기 마련이다. 아주 적극적인 사람들이 아니면 그런 공간에 선뜻 발을 들여놓기 쉽지 않고, 그런 장애를 넘어서게 하려면 개인별로 엄청난 정성을 쏟아야 한다. 그러나 카페라는 공간은 그런 장애를 쉽게 넘어서고 외부와 쉽게 접촉할 수 있다. 수유+너머는 카페 트렌스라는 공간을 확보한 후 그곳에서 음악, 영화, 만화 등 다양한 활동을 향유할 수 있었다. 만화가와 조각가들과의 교류가 가능해졌고 그곳에서 화요토론회와 케포이필리아 같은 대규모 지식의 향연이 가능해지게 된 것이다.
수유+너머가 점점 확장되면서 탄생한 것이 케포이필리아이다. 회원 수가 늘어나면서 회원들 사이의 균열, 즉 지적 횡단과 유목적 삶이 아니라 자신의 전공과 연계된 특정분야만 공부하려는 경향이 나타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서고금의 지적 경계를 가로지르는 케포이필리아 커리큘럼이라는 것이 등장했다. 맑스에서 시작하여 주자, 왕양명을 거쳐 다산과 연암, 사파티스타와 베어하트를 지나 데리다와 나가르주나, 네그리 등 기존의 배치를 변환하고자 하는 전복적 열정과 전위적 강밀함, 시공을 가르는 비전을 가진 지식의 향연이 케포필리아 하에서 펼쳐지고 있다. 한 텍스트를 정복하는 데 한 달 정도 소요되며, 각각의 과정마다 4,5명의 패널이 정해져 그들이 지도교사의 지도를 받아 집중 세미나를 하고 발제문을 작성해 50-60명 앞에서 발표한다. 이 과정을 넘어야 일반회원이 될 수 있으며 한 과정이 끝났을 때 회원들은 한 편의 에세이를 쓰거나 다른 사람의 에세이를 읽고 논평을 해주어야 한다. 에세이와 논평을 다 쓰면 조별로 나뉘어 토론을 진행한다. 이 ‘에세이의 날’이 오면 1층에서 3층 요가 방까지 모든 공간에서 조별 세미나가 이루어진다.
세미나 이야기가 나온 김에 수유+너머의 세미나 방식에 대해 알아보자. 수유+너머는 기본적으로 ‘스승과 친구는 하나다’라는 명제를 따른다. 강의실은 강사와 학생의 거리를 최대한 좁히기 위해 원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구실에서는 원탁과 세미나 테이블, 개인 책상 따위가 그대로 죽 나열된 채 강의가 진행되며 강사의 위치는 수시로 바뀌고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는 교실의 배치가 획일적이 되어 학습자 간의 소외가 심화되는 현상을 막기 위함이다. 강의 중에 오직 선생에게만 집중하는 구조 하에서는 수강생 상호간의 접촉이 차단되어 버리기에 인적 유대는 강의실 밖에서만 가능해지고, 이런 식의 이원화는 지적 소통이나 토론의 역동성을 현저하게 낮춰버린다. 토론회, 세미나, 강의에 항상 차와 간식을 준비하는 것 역시 함께 먹고 마심으로써 조금이라도 친화력을 키우기 위해서이다. 또한 수유+너머의 세미나에서는 선생이었던 이가 수강생이 되는 변환이 자유자재로 이루어지며 공개강좌와 세미나 사이의 수많은 변형들이 일자적 중심 없이 리좀과 같이 뻗어나간다.
수유+너머의 세미나를 역동적으로 만들어주는 가장 큰 요인은 세미나 게릴라들이다. 수유+너머의 세미나는 일반회원들의 지적 욕구에 따라 제안되며 하나의 세미나는 또 다른 변이들을 끊임없이 증식한다. 일본어 강독이 과학사로, 영화 세미나가 정신분석으로 이어진다. 고미숙의 경우 하루에 반드시 1,2개의 세미나를 할 정도로 활동적이었는데 그 이유는 세미나가 훈련과정임은 물론 연구실 운영의 주요 창구로 신입회원의 포섭, 회원들 사이의 능동적 관계, 일상의 윤리의 구성 모두 세미나를 통해 가능했기 때문이다. 고미숙 외에 다른 회원들도 1,2개에서 시작하여 5,6개로 늘려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지적 호기심이 옆으로 뻗어나간다. 자기 전공이 뭔지 자기가 원래 뭘 하려고 했는지 잊어버린 채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이 아”닌 상태가 되어버린다. 이 세미나 게릴라들은 예측 불가능한 지점들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균열을 일으킴으로써 구획된 선들을 가로지르며 예기치 않은 지적 흐름들을 생성한다. 이 흐름은 담론의 생산과 무관한 과시용 프로젝트가 아니라 홈 파인 공간에서 매끄러운 지대로 나아가려는 운동이며 지식생산의 배치에 대한 새로운 문제설정이다. 이런 게릴라들이 연구실을 이끌어나가는 주된 동력이다. 일상적 활동성도, 외부와 접속하고 변이하는 능력도 이들로부터 나온다.
수유+너머의 ‘지식의 향연’이라는 설립 목적에 가장 알맞은 활동이 바로 화요토론회이다. 수유+너머의 연구원들은 심포지엄을 축제로 만드는 상상을 했는데, 예컨대 상상을 뛰어넘는 선정적인 테마를 가지고 다방면의 연구자들이 발제를 하는 것이다. 중간 중간 록, 발라드, 클래식 등 다양한 종류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주제와 관련된 슬라이드나 비디오가 상영되며 논쟁을 극한까지 몰아 부칠 수 있는 토론이 펼쳐진다. 이런 축제는 몇 개월의 교육과정도 해낼 수 없는 신체적 감응을 만들어내는 학술 라이브이다. 평소에 갈고 닦은 내용의 정수만 간추려 대중 앞에서 벌이는 한 판의 퍼포먼스, 이를 통해 새로운 지적 동료들을 만나고 다시 새로운 유형의 밴드를 조직하는 것이다. 이런 라이브의 성과물들이 쌓여 자연스럽게 하나의 매체로 조직된다면 지식의 기쁨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심포지엄은 근엄하고 지루한 학술대회가 아니라 생동감 넘치는 축제이자 라이브 무대 이어야한다. 이 학술 라이브는 하나의 사회적 형식이 되어야만 하며, 수유+너머의 화요토론회는 이런 학술라이브를 예비하는 실험장이다. 화요토론회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발표를 자청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심지어 발표 사례비도 받지 않고!) 이는 화요토론회의 특유의 생동감 때문이며, 이 화요토론회는 수유+너머가 시작한 중대한 실험으로 계속 진행될 것이다.
4. 코뮌은 어떤 공간 이어야하는가?
수유+너머의 모든 운동이 그러하였듯이, 코뮌은 자본주의 외부를 지향한다. 이는 혁명의 새로운 배치를 위한 비전 탐구의 과정이다. 그리고 자본의 포획장치로부터의 탈주, 그리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일상의 전면적 재조직화가 우리가 추구하는 혁명이다. 이것은 전복적인 동시에 자의식의 문턱을 넘는 수행이다. 이런 문제의식 하에서 코뮌의 공간은 크게 세 가지로 구획될 것이다.
1) 일상의 공간. 이곳은 모든 이들이 섞여 나날의 일상을 구성하는, 일하고 먹고 놀고 즐기는 공간이다. 그 누구도 타자화하지도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경계의 넘나듦이 이 일상의 공간에서 가능해져야한다. 모든 경계에서는 꽃이 핀다.
2) 배움터. 무지로부터의 해방은 자유의 필수적 전제이다.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앎이란 삶과 굳게 결합되어야한다. 삶과 무관한 앎이야말로 반코뮌적이자 자본주의적이기 때문이다. 코뮌적 네트워크 하에서 사람들은 세계 곳곳의 배움터들을 자유롭게 순례하며 그렇게 해서 터득한 지식 혹은 지혜는 코뮌의 동력으로 전이된다. 이 주고받음에는 어떠한 경계도 없다.
3) 명상 센터. 우리의 삶과 지식이 국경과 인간, 우주 전체로 흘러넘치기 위한 구도의 장이다. 자의식을 넘어 자신을 비움으로써 우리는 자신을 외부의 역동적 흐름에 아낌없이 던질 수 있다. 이 속에서 일상의 공간과 배움터에서 터득한 지식들은 강렬한 신체적 에너지로 전이될 것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공간들은 따로, 또 동시적으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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