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대회 예선 논제용으로 썼던 글.
지난 5월 26일, 우리 정부는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의 전면 참여를 공식 발표하였다. PSI는 2003년 미 부시행정부가 WMD 및 그 운송수단의 세계적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창설한 미국 주도의 국제 공조 협의체로서 한국은 이미 PSI 훈련에 참관단을 파견하거나 브리핑을 청취하는 등 옵서버 자격으로 PSI에 부분참여를 하고 있었다. 전면 참여를 하게 되면 한국은 총회와 ‘운용전문가회의’에 참석하여 WMD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1년에 2~3차례 열리는 WMD 차단 훈련에 참여하게 된다.
이러한 PSI참여가 논란이 되고 있는 이유는 바로 PSI가 실질적으로 북한을 겨냥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PSI의 창설의 직접적 계기가 된 사건은 2002년 말 발생한 ‘소산호사건’이었고, 2003년 북한의 NPT탈퇴와 고농축 우라늄 생산에 대한 대응으로서 PSI 창설의 필요성이 증가하였다. 때문에 한국은 PSI 전면 참여를 남북관계와 연관 지어 매우 신중하게 고려해왔다. 우리는 이런 민감한 PSI에 한국이 과연 전면 참여해야하는 것인지에 대해 남북관계와 PSI의 실효성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한국의 PSI 전면참여는 남북관계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최근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한국 정부가 PSI 전면 참여를 선언하자 북한은 PSI 전면참여는 곧 선전포고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북한의 핵 실험 직후에 이루어지는 PSI 전면 참여는 “보복”의 성격을 강하게 띨 수밖에 없고 이는 북한의 또 다른 도발, 혹은 또 다른 보복의 명분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북한은 이명박 정부의 ‘비핵. 개방 3000’이나 ‘북핵 포기 우선론’ 등의 대북기조를 ‘역도’라거나 ‘파멸로 가는 길’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해왔다. PSI 전면 참여는 이러한 대북정책 비판을 더욱 강화하는 명분을 제공해줄 것이며 이 명분을 바탕으로 북한은 한국의 대북정책을 문제 삼으며 새로운 도발을 감행할 것이다. 북한은 PSI 참여를 빌미로 현대아산 유씨 억류 장기화 위협, NLL 침범, 정전협정 무력화 발언, 개성공단 폐쇄 위협 등을 반복하면서 한국을 곤혹스럽게 만들 것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긴장과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다음으로 이러한 남북관계 경색을 감안하고서라도 한국이 PSI에 전면 참여할 만한 필요성이 있는가 역시 의문이다. 현재 한국의 안보에 가장 위협이 되는 사항은 북한의 핵 보유와 ICBM(대륙간 탄도 미사일) 발사이다. 그러나 PSI에 전면 참여한다 해서 북한의 핵 실험과 ICBM 발사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북한은 PSI 전면참여를 선전포고라 주장하며 벼랑 끝 전술을 반복할 것이다. 또한 PSI의 목적이라 할 수 있는 WMD 수송이 의심되는 선박에 대한 감시 및 검색은 2005년 합의한 남북해운합의서에 의거하여 일정 부분 수행할 수 있으며 최근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 1874호에 의하여 북한의 거의 모든 무기가 금수 대상이 되고 공해상의 화물 검색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남북 간의 합의와 보다 더 국제적인 대표성을 띤 유엔 결의안에 의해 우려되는 선박에 대한 감시 및 검색이 가능한데도 미국 중심의 대북공세의 상징인 PSI에 가입하는 것은 북한에게 도발과 벼랑 끝 전술의 명분을 제공할 것이다.
북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한국의 안보에 가장 위협이 되는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간 동안 한국의 의사와는 별개로 진행되어왔다. 북한에 대한 각종 제재는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 하에 결정되어지고 있으며 북한 역시 통미봉남을 통해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려 한다. 그리고 한국은 이러한 국제사회, 혹은 미·중의 의사결정에 편승하여 북한을 제재하거나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여 왔다. 최근 미국은 물론 북한과 우호관계에 있던 중국과 러시아마저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이러한 대북고립의 일환인 PSI에 전면 참여하여 북한의 도발을 유발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북한을 고립에서부터 벗어나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역할을 함으로써 북한 문제에 있어서 주도권을 행사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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