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행네트워크 : 지식협동조합으로 나아가는 길

공동생활전선 기획을 위해 두 가지 공동체에 대한 발제를 준비했다. 지난번 수유+너머에 이어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좀 짧은 지행네트워크에 대한 보고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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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순응주의자가 아닙니다

저자

지행네트워크 지음

출판사

난장 | 2009-07-24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나는 순응주의자가 아닙니다』는 2007년 7월 30일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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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행네트워크 : 지식협동조합으로 나아가는 길

지행네트워크는 2007년 여름 대학원 시절부터 제도 밖에서 어울린 세 사람, 이명원, 하승우, 오창은이 만나 인문학적 실천을 모색하는 연구공간을 만들면서 출범했다. 지행네트워크는 지知와 행行의 네트워크라는 이름답게 삶과 괴리된 채 경직된 학문제도 바깥에서 인문학을 열어젖히고 연구자와 활동가, 시민이 소통하는 공동체를 만든다는 취지 아래 세워진 대안지식공동체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학문공동체라는 점에서 우리 공동생활전선과는 차별점이 있으나, 앎과 삶의 일치라는 테제와 실천적 삶의 모색에 관한 고민, 포섭되지 않는 자율성 등이 우리의 문제의식과 일정부분 닿아 있는 부분이 있어서 사전 조사를 실시했다.

1. 제도 밖 대안공간으로써의 지행네트워크

1990년대에 들어서 대학제도라는 틀 밖에서 대안공간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이는 대학이 더 이상 정치권력의 억압에서의 해방구가 아니라 경쟁과 자본의 논리에 따라 체제에 포섭되어 가는 과정 하에서 수많은 연구자들을 수용하지 못하는 한국사회의 시스템 때문에 생겨나는 잉여 박사들과 대학제도 내 학문에 환멸을 느낀 일반 대중들이 조우하면서 생긴 사건이다. 앎과 삶의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받아들이는 태도로서의 감수성이 변화해야하고, 이 감수성의 변화에 기반해 주류적 관점이나 문화, 이미 조직화된 체계를 거부하고 이탈을 감내함으로써 약수자의 주체성을 형성해야한다. 1990년대에서 2000년에 이르기까지 이런 모임을 지향한 이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가 학문. 생활공동체를 지향하는 조직으로 수유+너머와 다중지성의 정원이 그 예이다.(물론 두 단체의 성격은 다소 다르다.) 두 번째는 아카데미 강좌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대안 공간으로 문예아카데미나 철학아카데미, 풀로엮은집 등이 있으며 세 번째는 출판사가 주도가 되어 연구소나 토론 모임을 만드는 경우로 문지문화원사이(문지), 세교연구소(창비), 후마니타스 등이 있다. 이들 모든 대안공간들은 자위적 공간으로 머무르지 않기 위해 불편한 연대, 약소자들의 네트워크를 통한 연대를 추진해야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소개하고자 하는 지행네트워크는 실천인문학 대안공간으로서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으며,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가? 오창은에 의하면 지행네트워크는 제도 밖에서 학문의 숲을 넓히는 창조적 작업을 유지하기 위해 세 가지 사항을 고려하고 있다. 첫 번째가 세대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소통 형식이다. 앞에서 소개한 대부분의 실천적 대안공간들은 기존의 이념에 입각한 조직운동 방식과 달리 자유로운 감성에 익숙한 청년세대와의 교감을 통해 탄생했다. 대안공간들은 다른 세계를 꿈꾸는 실천적 문제의식을 청년세대와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학문과 실천의 결합이다. 지식인 네트워크라는 연대 방식의 운동은 이제 단행본 출판이나 매체 발간을 넘어서서 새로운 방식의 현장 개입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는 실천인문학과 같은 형태의 개입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과의 교류 등으로 대표될 수 있다. 세 번째는 자율성의 확보이다. 제도 밖에서 제도를 공격하는 대안 공간은 자본에 포섭되지 않는 해방구를 마련해야 하고 현실의 권력에 포섭되지 않음으로써 현실의 권력관계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2. 지행네트워크는 어떠한 활동들을 했는가

2007년 7월 30일에 “행동하는 지식을 꿈꾸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출발한 지행네트워크는 “경화된 학문제도와 담론, 일상과 역사의 차가운 괴리,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서늘한 냉소를 뛰어넘어, 함께 있으되 자율적인 내밀한 소통과 연대의 인큐베이터”를 표방했다. 지행네트워크는 위의 세 가지 고려사항들을 지향하며 여러 가지 실험들을 시도하기에 앞서 본인들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작업을 우선시했다. 이는 지행네트워크가 인문학. 사회과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학,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역사학, 여성학 등의 전공자들이 함께하는 연구 집단을 꿈꾸었지만 초기에는 문학 전공자 이명원, 오창은과 정치학 전공자 하승우만 결합하는 데 따른 한계 때문이었으며 2008년 3월 경 시민단체와 진보정당 상근자로 활동한 이강준이 합류한 이후 시민사회단체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른 문제의식 때문이기도 했다. 그들은 초기에 “우리 지식인의 존재근거를 묻는다.”라는 주제의 내부 세미나를 진행했다. 이 세미나는 매주 연구위원들이 진행하는 운영위원회 회의와 함께 이루어졌는데 <문명론의 개략> 같은 지식인 담론을 비판적으로 독해하고 평가하는 내부 토론회 형식을 띠었으며 지행네트워크가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가를 논의하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이 세미나를 통해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닌 이들의 차이를 확인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것과 함께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함으로써 공통감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세미나로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확인한 후 지행네트워크는 1) 젊은 세대와의 교류 2) 학문과 실천의 결합 3) 공동체의 자율성 확보를 위한 활동들을 전개했다. 2008년 1월부터 3월까지 지행네트워크는 “아닙니다. 나는 순응주의자가 아닙니다. : 낡은 세계에 던지는 여덟 가지 질문”이라는 청년강좌를 진행했다. 이 강좌는 비교적 성공적인 세대 간 소통의 자리가 되어, 이를 계기로 지행네트워크에 대한 청년세대의 관심이 높아졌고 이들과의 교류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방학 때마다 청년강좌를 진행해 달라는 요구도 이어졌다. 그러나 이로 인해 지행네트워크가 ‘변형된 청년교육기관의 역할을 수행해야하는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학문과 실천의 결합을 위해서 지행네트워크는 2007년 7월부터 첫째 주 월요일에 콜로키움을 진행했다. 지식행동, 지행합일을 추구하기 위한 민주주의적 소통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지행은 “좋은 삶을 말한다 : 생태/자치/예술”이라는 테마로 콜로키움을 진행했다. 지행은 이 자리에서 시민운동, 지식인운동을 실제 현상에서 전개하는 이들을 초청해 대화하고 소통함으로써 이론과 현실의 결합을 추구하고자 했다. (발표자로 김종철, 이택광, 김상봉 등) 이 콜로키움은 1) 현장 활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현실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2) 지식인들과 시민단체들 사이의 소통에 단초를 제공했으며 3) 지행네트워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콜로키움이 대중적 형태로 외화(단행본)되거나 새로운 소통 방식을 창출해 시민 영역의 활동 강화에 도움을 주는 방식의 발전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지행의 또 다른 현장 개입은 ‘찾아가는 실천인문학’ 사업으로, KB한마음 사원을 대상으로 일상과 자신에 대한 성찰을 유도하는 주제를 중심으로 인문학강좌를 실시했으며 2008년부터는 안양교도소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2009년엔 수원구치소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평화 인문학 강의를 진행한 것이었다. 가장 적극적인 현장 개입은 촛불집회 담론화에 대한 적극적 개입이었다. 2008년의 촛불집회의 의미화 작업은 공동의 입장 속에서 각자의 의견을 피력하는 담론 투쟁의 장이었는데, 지행은 대중의 자발적 참여를 제도 질서 내에 가두려는 보수적 논의에 문제를 제기하며 촛불집회를 둘러싼 논쟁을 촉발하는 데 기여했다.

 

3. 지식협동조합을 제안한다.

지행의 가장 중요한 지향점인 자율성 확보를 위해 그들이 제시한 것이 바로 지식협동조합이다. 현재 지식인은 길잡이나 저항의 상징으로 작용하지 않으며 체제 내에, 국가나 시장의 권력에 포섭되어 있다. 냉전, 반공이데올로기의 자리에 세계화와 경쟁의 담론이 들어섰고 대학마다 재벌기업의 이름을 딴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앎과 삶의 분리를 넘어서는 앎을 배반하는 삶, 삶을 위장하는 앎이 늘어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궁극적으로 지식인들은 다른 존재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밥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방식 중 하나가 서로가 서로의 삶을 지탱하는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은 1) 자발적이고 열린 조합원제 2) 민주적 운영 3)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조합이 조합원의 자본을 민주적으로 관리하고 조합원은 잉여금의 사용을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한다.) 4) 자치와 자립(정부, 기업과 계약을 할 경우 조건이 붙는다!) 5) 교육, 훈련 및 홍보 활동 6) 협동조합 간의 협동 7)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라는 원칙을 지닌다. 이런 원칙들과 협동조합은 국가와 시장을 대체할 잠재력을 가지며 이 잠재력이란 오늘날 국가와 시장이 벌여놓은 삶터와 일터의, 도시와 농촌의 분리에 대한 극복이다. 생산자협동조합은 삶터와 일터의 분리를 극복할 단초를 마련했고 소비자협동조합은 도시와 농촌을 잇는 다리를 놓았다.

그렇다면 지식협동조합도 가능할까? 지식만큼 협동의 가치를 잘 실현하는 것도 없다. 지식은 공공성을 지니며, 자본주의가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것에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협동조합의 성격과 유사하다. 지식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은 지식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주체로서 일정한 자본을 출자하고, 조합원이 선출한 사람들이 조합의 공간과 자본을 관리한다. 그들은 공간을 마련하고 활동을 시작하여 외국어를 배우고 가르치거나 어려운 철학을 쉽게 소통하며 과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설명하고 지역사회의 전통과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며 지식을 만들고 소비하는 과정에 참여한다. 게다가 지식은 다른 협동조합과 달리 인류 공동의 재산이기에 비조합원들도 공유할 수 있어야 하며 다만 비조합원들은 생산한 지식을 가공하고 재생산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없기에 조합원 가입의 동기를 지닌다. 지식협동조합이 이렇게 활동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4)원칙, 자치와 자립이다. 국가나 자본이 이를 활용하려는 것을 막고 조합원들이 지식협동조합을 통제해야 한다. 그리고 협동조합을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협동조합 간의 연대를 활성화하고 지역 사회와 교류, 협동하며(지역화폐와의 결합) 지역사회에 충분한 기여를 해야 한다.

이러한 지식협동조합은 삶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한국의 지식인들이 자신의 앎에 삶의 뿌리를 달아줄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현재 지행네트워크는 지식협동조합의 기본적인 틀을 만들고 시민이나 다양한 형태의 단체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