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가 아니라 신문 판매”, ‘레프트21’, 헌재까지 간 사연
'미신고 집회' 무죄 판결 났지만, 신문 판매 48시간 전 신고 의무화 논란… “언론 자유 심각한 침해”
다함께가 발행하는 <레프트21>이 거리에서 신문을 팔다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연행된 후 이에
반발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레프트21>은 노동자연대다함께(이하 다함께)가 격주 간 발행하는
신문이다.
사건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형환, 김문주, 신명희, 김득영 등 4명의 다함께 활동가들은 2010년 5월 7일 강남역
6번 출구 인근에 가판대를 설치하고 <레프트21> 31호를 판매했다. 이들은 신문내용을 요약한 피켓을 몸에 두르고
기사제목이 적힌 홍보 전단지를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배포했다.
오후 7시 40분 경 이들에게 경찰 두 명이 다가왔다. 서초경찰서 소속 경찰들은 집회 신고를 했냐고 물은 뒤 신문 판매 중지를
요구했다. 경찰이 신문 판매를 집회로 판단한 이유는 이들이 “MB정부는 전교조, 공무원 탄압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몸 피켓을
착용한 채 “안보 위기는 사기다”는 내용의 유인물을 나누어주면서 “천안함 사건이 터졌는데 이는 이명박 정부가 안보 위기를 조장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경제가 나빠졌다”고 외쳤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들이 구호를 제창하면서 신문 판매를 빙자한 집회를
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신문 판매 모습을 본 한 시민의 신고로 현장에 출동했다고 밝혔다. 당시 인근을 지나던 한 시민이 경찰서에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사건을 만들어 조작했다고 떠들고 있는 자들이 있는데 너무 심한 억지 같으니 조치를 해달라”는 취지로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김형환씨 등은 자신들이 집회를 한 것이 아니라 신문 판매를 했을 뿐이라며 경찰의 요구를 거부했고, 이에 경찰과 활동가들 간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다함께 활동가 김지태, 조익진씨가 경찰들에게 항의했고, 경찰은 이들 6명을 집시법
위반으로 강제 연행했다.
이후 검찰은 다함께 활동가 6명을 집시법 위반으로 기소했고, 800만원의 약식 명령을 내렸다. 다함께는 ‘판매자 벌금형 철회와 언론자유 수호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꾸리고 기자회견 등을 통해 무죄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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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프트21’ 31호 |
얼핏 보면 5명 무죄에 한 명도 선고유예를 받았으니 다함께 활동가들이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대책위의 평가다. 대책위 대표를 맡고 있는 김지태씨는 2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무죄와 선고유예의 이유는 신문 판매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가담이라거나 형 선고가 가혹하다는 점 때문이다. 우리가 미신고집회를 했다는 검찰 측의 핵심주장은 모두 인정됐다”며 “무죄 판결은 생색내기일 뿐 우리의 승리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한 “그 사건 이후 신문을 판매할 때마다 계속 집회신고를 내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 굉장히 피해이고, 언론의 자유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대책위가 이 문제를 헌법재판소에 들고 간 이유다. 대책위는 집시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11년 헌법재판소에 집시법 제6조 1항과 제22조 2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집시법 6조 1항에 따르면 옥외집회나 시위를 주최하려는 목적과 일시, 장소, 주최자 정보 등을 적은 신고서를 집회 시작 720시간 전부터 48시간 전에 관할 경찰서장에 제출해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집회 또는 시위를 주최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는 집시법상 금지되는 집회 또는 시위를 주최한 자와 같은 형량의 처벌이다.
대책위는 48시간 전에 예측할 수 없는 우발적 집회나 긴급집회를 구별하지 않고 모든 옥외집회에 대해 신고의무를 부과하면 결국 우발적 집회나 긴급집회를 금지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사전신고제의 신고의무는 행정절차적 협력의무이고 협력의무는 과태료 등 행정상 제재로 충분히 확보 가능하기 때문에 법률상 금지된 집회의 주최자와 동일한 형을 가하는 것은 과잉형벌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대책위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1월 28일 대책위의 청구를 모두 각하했다. 헌재는 여러 옥외집회와 시위가 경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질서유지를 위해 사전신고제가 필요하기에 48시간 전 사전신고는 지나치지 않다고 밝혔다. 또한 48시간 내 신고할 수 없는 긴급한 사정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개별 사안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 법률의 해석‧적용에 관한 문제라고 밝혔다.
헌재 내부에서도 반대 의견이 있었다. 이정미, 김이수, 이진성, 강일원 등 4인의 재판관은 대책위의 주장을 받아들여 긴급집회 관한 부분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고, 과잉형벌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헌법재판관 5명이 기각을 결정하면서 헌법소원은 각하됐다.
김지태 대책위 대표는 “대법원에 이어 헌재도 이런 결정을 해서 유감스럽다”며 “대응차원에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경찰의 강제연행이 잘못됐다며 ‘대한민국’(법률상 대표자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제기했고, 1심과 2심에서 기각 당하자 최근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김 대표는 “민변에 요청해 유엔에 이 문제를 가져가는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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