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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벌 때문에 코치들이 대표팀 안 맡으려 한다”

“파벌 때문에 코치들이 대표팀 안 맡으려 한다”

‘안현수 현상’ 고민하는 토론회 열려…“엘리트체육 시스템 재검토해야”

대한민국 대표팀의 소치올림픽 성적은 ‘세계 13위’였지만, 이번 올림픽은 성적 이상의 무언가를 남겼다. 소치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을 제치고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선수는 안현수, 빅토르 안이다. 한국인들은 러시아에 귀화해 금메달을 안긴 빅토르 안을 비난하기보다 그를 응원하고, 빙상연맹이 파벌 싸움으로 빅토르 안처럼 뛰어난 선수를 놓쳤다고 비난했다. 빅토르 안의 금메달이 확정되자 빙상연맹 홈페이지는 마비됐다.

빙상연맹의 ‘파벌’가 선수 선발이나 훈련 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빅토르 안은 선수 시절 파벌 문제 때문에 여자 대표팀과 같이 훈련을 했다. 쇼트트랙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대표팀 코치까지 했던 이준호 감독은 26일 서강대에서 열린 ‘소치올림픽으로 드러난 대한민국 체육계의 문제점’ 토론회에서 “2002년 내가 대표팀 코치를 할 때도 파벌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 감독은 “다른 파벌 코치를 끌어내리고 자기 쪽 사람을 집어넣으려고 코치들끼리 서로 흠집 내고 선수들도 이에 동참 한다”며 “선수들이 툭 하면 어느 코치한테 맞았다며 뛰쳐나가고 그래서 일 년에 2-3번씩 코치가 바뀌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이 감독은 “더 이상 자격 있고 능력 있는 코치들은 밖에서 레슨해서 돈 벌지 대표 팀을 맡으려 하지 않는다. 퇴직금도 없고 선수들 눈치도 봐야하는데 어떤 사람이 코치를 하려고 하겠나”라고 말했다.

   
▲ 26일 오후 서강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소와 문화연대의 주최로 ‘소치올림픽으로 드러난 대한민국 체육계의 문제점’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그렇다면 파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토론회에 참석한 정희준 동아대 교수는 “파벌을 강제로 없앨 수 있을까. 국가별로 1명씩만 출전하는 게 아니라면 파벌과 짬짜미, 담합은 사라지기 힘들다”며 “파벌을 없애기 위해서는 엘리트체육의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한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빅토르 안을 ‘파벌의 희생자’로 보는 시각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쇼트트랙 선수나 지도자들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라는 반응이더라. 억울한 데 말을 할 수 없는 분위기”라며 “안현수가 러시아에 귀화한 이유는 파벌에 희생됐다기보다 한국에서 운동하기 싫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현수가 태릉에서 훈련받다 무릎이 다쳤을 때 협회는 뒷바라지를 해주지 않았다. 그 때의 섭섭함이 귀화에 영향을 미쳤다”며 “또한 한국의 획일적이고 강압적인 훈련문화도 안현수를 러시아로 가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이 분리돼 운동선수를 검투사 기르듯이 가둬놓고 운동기계를 만드는 한국의 시스템에서 파벌을 비롯한 각종 운동협회의 부정부패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운동이 좋아서 운동하는 선수들은 100명 중 1명도 안 된다. 부모와 감독이 하라니까 대학 가야 하니까 한다”며 “어릴 때부터 승부조작과 판정비리, 뇌물과 감독 접대는 당연한 것으로 배우고 대학도 커넥션으로 가고 프로팀에도 돈 내고 가는 문화가 있다. 메달을 못 따도 된다는 각오로 이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장달영 변호사 역시 “우리나라의 스포츠 엘리트 육성 시스템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 변호사는 “박태환이 그렇듯이 세계적인 스타가 된 선수들을 보면 협회나 연맹하고 갈등관계를 갖고 있다. 김연아도 태릉 등 연맹의 집단적인 훈련시스템이 아닌 개인의 노력으로 성공했고, 이상화도 빙상연맹에서 가라고 하는 팀을 마다하고 다른 팀을 갔다”며 “한국의 협회 체제, 엘리트 육성 시스템이 국제 경쟁력 차원에서 적절한 지 다시 한 번 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협회의 비리 행위에 대한 상시적인 감시도 필수적이다. 강재훈 KBS 스포츠부 기자는 “기자들이 스포츠계 파벌이 문제라 하는데 언론사 내에도 파벌이 있다. 대통령이 체육계를 한 번 털라고 지시했는데 2008년 친박계 공천학살이나 2012년 친이계 공천학살도 파벌 싸움 아니었나”며 “파벌은 어디에나 있다. 정치권이 지시하거나 개입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강 기자는 “펜싱협회의 파벌 문제를 취재한 적이 있는데 불법이나 위법이 있는 게 아니라 워낙 교묘한 방식으로 작동해서 문제제기 하기 어려웠다. 파벌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면서 “해답은 결국 상급단체인 대한체육회가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강 기자는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면 검찰이 필요없듯이, 지금 권한을 가지고 있는 대한체육회가 비리를 제대로 적발하고, 문제 임원을즉시 퇴출시키는 등 관리 감독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