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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캬라멜 뮤비가 ‘인명경시’했다구요?

오렌지캬라멜 뮤비가 ‘인명경시’했다구요?

“인명경시 아닌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풍자”…“성 상품화의 관점에서 봐야”

인어 복장을 한 여성들이 비닐 팩에 들어가 있다. 비닐 팩에는 가격표도 붙어있다. 이 여성들은 초밥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젓가락이 여성들을 집으러 오기도 하고, 여성들이 초밥의 간장 소스에 발을 담그기도 한다. 이들은 도마 위에서 노래를 부른다.

위에 묘사된 장면들은 여성 걸그룹 ‘오렌지캬랴멜’의 뮤직비디오 ‘까탈레나’에 나오는 장면들이다. 오렌지캬라멜은 예전부터 다소 황당하고 특이한 컨셉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하지만 KBS에서는 ‘카탈레나’ 뮤직비디오를 볼 수 없다. KBS가 까탈레나가 방송에 부적격하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KBS는 지난 21일 공식 홈페이지에 2014년 3월 3주차 뮤직비디오 심의 결과를 공지했다. 오렌지캬라멜은 방송 부적격 곡으로 선정됐고, 이유는 ‘인명경시’였다. 비닐을 쓰고 있는 장면 등 오렌지캬라멜 멤버들이 초밥으로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는 것이 이유다.

하지만 대중은 ‘인명경시’라는 이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이다. KBS가 구태한 기준으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MBC, SBS는 뮤직비디오에 대해 전체 관람가로 심의가 나왔지만, KBS만 유독 방송 부적격 판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누리꾼(@Kangriro)은 “인명경시를 이유로 카탈레나 뮤직비디오 방영금지 조치한 KBS는 문화 경시 이유로 제재 받아야 한다”고 비판했고, 또 다른 누리꾼(@lacknights)은 “인명경시? 국정원 간첩조작이나 제대로 보도해라. 유우성 여동생 감금한 게 인명경시다”라고 말했다.

   
▲ 오렌지캬라멜 뮤직비디오 ‘카탈레나’의 한 장면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2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만 가지고 이건 된다, 혹은 안 된다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예전에 가사에 술 이야기만 들어가도 심의에 걸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표피적인 부분이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을 보고 심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까탈레나’ 뮤직비디오가 인명경시가 아니라 우리사회에 대한 풍자라고 설명했다. 인간이 초밥처럼 묘사되고, 식탁 위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선택을 받는 장면 등은 외모지상주의를 풍자한 장면이라는 것.

KBS는 지난해 4월 싸이의 신곡 ‘젠틀맨’ 뮤직비디오에 대해서도 방송 부적격 판정을 내린 적이 있다. ‘젠틀맨’ 도입부에 싸이가 주차금지 시설물을 발로 차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이 공공시설물 훼손에 해당한다는 이유였다. 정덕현 평론가는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원숙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유머코드로 이해해야 하는 부분을 겉에 보이는 모습만 가지고 평가하는데, 이렇게 심의하면 안 걸리는 부분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오렌지캬라멜 뮤직비디오 ‘카탈레나’의 한 장면

반면 인명경시에 의한 부적격 판정은 잘못됐지만 ‘여성의 성 상품화’라는 관점으로 ‘까탈레나’ 뮤직비디오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윤정주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인명경시보다 여성의 성 상품화가 먼저 다가왔다”며 “뮤직비디오 속에 자연산에는 비싼 가격이 붙고 양식에는 싼 가격이 붙는 장면 등이 나오는데 이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고민 없이 만들어진 장면 아닌가”라고 말했다.

윤 소장은 ‘카탈레나’가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풍자라는 지적에 대해 “여성의 입장에서 봤을 때 풍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풍자를 노리고 그렇게 만들었다면 그 의도는 빗나간 것”이라며 “외모지상주의를 비웃으면서 화려한 의상을 입고 외모를 꾸미는 모습들이 나올 이유가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윤 소장은 이어 “인명경시는 적절한 부적격 사유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며 KBS가 여성의 성 상품화 등 다른 이유를 들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