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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인문, 사회과학

한 해 2천 명이 죽어나가는 세월호 대한민국

한 해 2천 명이 죽어나가는 세월호 대한민국
[서평] 노동자, 쓰러지다 / 희정 / 오월의봄 펴냄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가 어느새 두 달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아직 12명의 희생자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 있고, 정확한 사고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정부와 언론은 유병언만 잡으면 다 끝날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안전’이 자리 잡을 자리를 ‘이윤’이 대체한 결과 발생한 끔찍한 참사였다. 안전보다 이윤을 택한 기업은 노후화된 선박을 사용했고, 상습적으로 적재량을 초과하는 화물을 실어 날랐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각종 ‘규제완화’가 있었다.

기업이 안전 대신 이윤을 택하는 사이, 이를 감시해야할 기관들은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여객선 안전관리를 맡은 해운조합은 세월호의 문제점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세월호는 무단 증축과 개축을 일삼았지만 한국선급의 안전검사를 무사통과했다. 해운조합과 한국선급의 간부들은 퇴직 관료들과 낙하산으로 채워졌다.

그 사이 승객들의 안전은 ‘외주화’되었고 누구도 이들의 목숨을 책임지지 않았다. 새월호에 타고 있던 선원들은 비정규직이었고, 청해진해운은 이들에게 안전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않았다. 이들은 승객들을 내버려둔 채 제일 먼저 침몰하는 배를 빠져 나왔다.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구조를 주도한 건 해양경찰이 아니라 민간업체 언딘이었다. 해경 관계자들은 “언딘이 해경보다 낫다”고 떠들고 다녔다.

세월호는 갑자기 벌어진 참사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이 얽혀 만들어진 참사다. <노동자, 쓰러지다>는 어쩌면 우리 사회가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세월호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세월호 이전에도, 규제완화와 기업의 이윤 그리고 이를 감시하지 않은 정부, 위험의 외주화로 인해 한해 2천 명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어왔다. 3월부터 5월까지 두 달 간 울산 현대중공업 공장에서 8명의 하청노동자가 화재사고, 추락사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정부는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 유병언 회장을 잡으러 대한민국 전체를 이 잡듯이 뒤지지만, 현대중공업의 실소유주는 노동자들의 죽음에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노동자, 쓰러지다>에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이 등장한다. 공장에서 죽으면 중대재해가 될까봐 죽기 전에 공장 밖으로 옮겨지는 조선소 하청노동자들, 압착과 추락 및 절단으로 매년 700명 씩 죽어나가는 건설 노동자들, 비용절감과 안전의 외주화로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인 철도노동자들, 민영화 이후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KT 노동자들,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으며 과로로 쓰러지는 우체국 노동자들, 유해물질에 노출돼 죽어나가는 삼성백혈병 노동자들, ‘행복하세요’를 외치지만 정작 자신들은 행복하지 않은 감정노동자들.


노동자 쓰러지다

저자
희정 지음
출판사
오월의봄 | 2014-06-04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노동자의 목숨값은 얼마인가요?” 하루에 7명씩 죽어가는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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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다른’ 죽음들 속에서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노동시간이나 노동 방식을 통제할 권한이 없다. 이들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이, 자신의 일터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위험에 내맡겨져 있다. 심지어 산재보험조차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수두룩하다. 노동자가 아니라 ‘특수고용직’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들이 겪고 있는 또 다른 공통점은 ‘위험의 외주화’다. 조선업의 경우 사내하청 기업에서 산재와 사망이 더 많이 일어난다. “위험마저 외주화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조선소의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산재를 입은 후 어떻게 대응했는지 물었더니 산재보험으로 치료했다는 대답은 열 명 중 두 명에 그쳤다. 정부기관 조사에서도 산재를 입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18%만 산재보험을 적용받았다고 나왔다. 철도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노동자들 사이에서 “다치는 건 정규직, 죽는 건 하청 직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세월호 참사는 ‘운항해서는 안 되는’ 배가 운항하면서 벌어진 비극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한국사회는 또 하나의 거대한 세월호다. 하루 평균 7명, 한해 평균 2천 명의 노동자들이 산재로 죽어나가는 사이 산재보험은 흑자를 기록하고, 기업들은 수백억의 산재보험료를 할인받으며 배를 불렸다. 이제 이 세월호의 운항을 멈추고, 이 배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더불어 책임져야 할 이들에게 책임을 물려야한다. 그래야 더 이상 죽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