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인문, 사회과학

기자들이여, 던져주는 먹이를 받아먹지 말라!

기자들이여, 던져주는 먹이를 받아먹지 말라!

[서평] 대한민국은 왜 헛발질만 하는가 / 변상욱 / 페이퍼로드 펴냄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 시절 언론은 통제 당했고 언론은 ‘땡박뉴스’를 반복했다.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에는 보복이 들어오던 시절이었다. 전두환 정권에 의해 보복당한 언론 중 하나가 기독교방송 CBS이다. CBS는 시사보도 기능을 박탈당했고 CBS 기자들은 프레스카드 없는 ‘불법 사이비 기자’였다.

CBS의 변상욱 대기자는 1984년 “전두환으로 시작해 이순자로 끝나는 땡전뉴스”라는 표현을 방송에 내보내는 ‘사고’를 치기도 했고,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때는 “고문은 사라져야 한다”는 방송 리포트를 내보내기도 한 인물이다. 그 시절을 기자로 살았던 그가 보기에 21세기 대한민국 사회는, 그리고 언론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대한민국은 왜 헛발질을 하는가>는 이러한 고민이 담긴 책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과거 독재시절에 비해 많은 것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많은 것이 변화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땡전뉴스’는 ‘땡박뉴스’로 바뀌었고, 언론은 세월호 참사 앞에서 국민보다 대통령과 정부를 더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정치와 행정이 있어야 할 자리에 지배와 군림이 들어섰다. 우리 사회 구조적 모순인 차별과 불평등은 여전하다.

변 기자의 문제의식은 책의 말미 <기자 그리고 ‘기자 비슷한 자’>라는 대목에 압축되어 있다. 그는 “저널리즘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바는 인간, 그리고 사회적 여건과 운명에 얽혀 들어가는 인간의 정황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을 지향하는 것과 뉴스가 인간 개개인에게 함몰되는 것은 전혀 다르다”며 “뉴스 가치가 있는 사안이라면 시대적 배경이 있고 사회구조에 따른 맥락이 존재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뉴스는 배경과 맥락은 외면하고 개인의 영욕에 초점을 맞춘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치를 다룰 때 정치인에 주목하는 것이다. 언론은 정치에 대해 말할 때 신념과 철학, 위임받는 과정, 책임과 비전, 미래가 아니라 거기에 얽혀들어 싸우는 인물들에 주목한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다룰 때도 몇몇 언론은 진실규명과 전개과정, 선거결과에 미친 영향에 주목하기보다 여당과 야당의 ‘정쟁’에만 주목했다.

이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은 왜 헛발질을 하는가>는 ‘기자 비슷한 자’가 아니라 ‘기자’가 쓴 책이다. 이 책에서 변상욱 기자는 뉴스의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맥락에 대해 탐구한다. 저출산 문제를 다룰 땐 ‘저출산이 아닌 저책임사회’라며 육아비용을 개인에게만 떠맡기는 사회구조의 문제를 지적한다. 노인 고독사에 대해 이야기할 땐 단지 노인의 문제가 아닌 가난한 계층으로 확대되는 ‘건강불평등’ 문제에 대해 언급한다. 자살문제에 대해 말할 때는 개인의 나약함이 아닌 ‘1등만 챙기는 사회’를 부각시킨다.



대한민국은 왜 헛 발질만 하는가

저자
변상욱 지음
출판사
페이퍼로드 | 2014-06-25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CBS 대기자 변상욱이 말하는 우리들의 분노와 절망과 희망!정치...
가격비교

변 기자는 사회적 맥락을 넘어서 ‘역사’에도 주목한다. 한국사회 군사문화의 뿌리를 찾기 위해 일제와 프로이센까지 파고 들어간다. 병역비리가 심각해지면 한반도에서 있었던 천 년 간의 병역비리 역사를 훑어준다. 주한미군 범죄가 벌어지면 주한미군 범죄 역사를 다룬다.

거대 구조만 보다 보면 세세한 것을 놓치기 십상이지만, 변 기자는 언론인이 해야 할 일 중 하나인 ‘팩트 채킹’도 잊지 않는다. 1등 당첨자가 30명이나 쏟아져 제기된 ‘로또 조작설’과 무책임한 언론 보도에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 더 나아가 왜 이런 ‘조작설’이 나오게 됐는지 배경까지 짚어준다. 여성을 공유재산으로 만들기 위해 기모노가 나왔다는 사회 통념에 대해서도 바로잡아준다.

언론이 현상을 넘어 현상의 이면과 사회적 맥락을 짚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게을러서 일까. 보다 중요한 이유는 구조적 문제를 이야기할 때 결국 권력과 ‘가진 자’들을 겨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때 KBS는 대통령을 비판하는 유가족의 목소리 대신 박수소리만 채워 넣었고, 주류 언론들은 해경과 정부의 무능 대신 선장의 부도덕과 유병언 소식으로 뉴스를 채웠다. 연애매체 <디스패치>가 신뢰받는 상황까지 왔다.

변 기자는 “당신이 억압자와 하나라는 것을 깨달을 때 당신은 비로소 억압자에게 맞설 수 있다”는 미국 실천불교 지도자 베르니에 그라스의 말을 인용한다. 언론인 스스로가 사회 부조리의 일부이며 부패한 정치권력의 일부이고, 탐욕스런 자본 세력의 일부임을 알아차려 각성해야한다는 것이다.

변상욱 기자가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저널리스트들이 권력이 “던져주는 먹이를 받아먹지 않는” 맹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헛발질만 하는’ 대한민국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 이 책의 수익금 전부가 청와대와 CBS 간의 소송비 마련에 보태지는 이유도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