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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문학 외

지존파와 삼풍백화점이 '리얼'로 반복되는 2014년

지존파와 삼풍백화점이 '리얼'로 반복되는 2014년
[리뷰]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 픽션 아닌 리얼의 1994년, 반복되는 2014년

최근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90년대는 아름답다. ‘응답하라 1994’가 그렇고, ‘건축학개론’이 그렇다. 하지만 90년대 역시 여느 시대처럼 많은 일들이 벌어졌던 시대였고, 아름다운 추억 외에도 떠올리기 싫은 악몽 같은 사건들이 있었다. <논픽션 다이어리>(감독 정윤석)는 추억 속에 묻혀 잊혀졌던 90년대의 악몽들을 다시 끄집어낸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제목 그대로 ‘픽션’이 아닌 ‘리얼’이다. 94년 추석에 벌어진 끔찍한 지존파 연쇄살인사건. 얼마 지나지 않은 94년 10월에 벌어진 성수대교 붕괴사고, 95년에 벌어진 삼풍백화점 붕괴. <논픽션 다이어리>는 얼핏 관계없어 보이는 살인사건과 안전사고를 ‘자본주의의 모순’이라는 키워드로 엮어낸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90년대 김영삼 정부 시절 이루어진 세계화와 개방화,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이 있다.
 
지존파사건은 우리에게 끔찍한 살인마들이 무고한 시민들을 납치해 무자비하게 살인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논픽션 다이어리>가 다루는 지존파 사건은 조금 다르다. 지존파는 부자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부유한 자들을 없애자는 강령을 지니고 있던, “빈부격차가 살인동기가 된 연쇄살인사건”이었다. 지존파가 사형 당하기 전 지존파를 만난 간수들과 형사들, 종교인들은 하나같이 지존파 구성원들이 놀라울 정도로 ‘순진했다’고 증언한다.
 
하지만 당시 지존파는 ‘괴물’로 묘사됐다. 언론에는 “더 죽이지 못해 아쉽다”는 악마들의 모습이 등장했고, 사형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속전속결로 집행됐다. 도덕성이 타락했다며 도덕 교육을 강조하는 운동들만 벌어졌다. 지존파라는 괴물이 탄생했던 그 배경, 빈부격차와 도농 간 격차, 그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등은 그대로 남았다.
 
  
▲ 논픽션다이어리 예고편 갈무리
 
지존파 사건 이후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상품백화점이 무너졌다. 500명이 넘는 사람이 한 순간에 사망한 최악의 참사였다. ‘없는 것이 없는’ 자본주의의 상징, 백화점에 ‘안전’이 없었다. 건물이 붕괴하고 있는 조짐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관리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문제제기는 묵살됐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지존파 살인사건과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사이에서 공통점 두 가지와 차이점 한 가지를 발견한다. 공통점은 한국이 경제성장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자본주의의 모순’이 사건의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차이점은 수습과정이다. 잔인한 살인을 저지른 지존파 구성원 전원은 1년 만에 사형 당했다. 하지만 삼풍백화점 사건의 책임자들은 살인이 아닌 ‘과실치사’ 혐의를 받았고,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은 채 지금도 잘 살고 있다. 
 


논픽션 다이어리 (2014)

Non-fiction Diary 
7.3
감독
정윤석
출연
고병천, 김형태, 박상구, 조성애, 오후근
정보
다큐멘터리, 스릴러 | 한국 | 93 분 | 2014-07-17



지존파 사건과 삼풍백화점 모두를 경험한 고병천 전 서초경찰서 강력반장은 우리에게 반문한다. "두 사건 모두 돈 때문에 일어났다. 하지만 연쇄살인을 저지른 지존파는 모두 사형 당했는데 왜 500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사건의 책임자들은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을까." <논픽션다이어리>는 이 지점에서 5.18 광주를 끌어들인다. 한 지존파 구성원은 경찰에 의해 끌려나가며 이렇게 일갈한다. 

“왜 전두환, 노태우는 무죄인데 나만 유죄냐!!!”
 
지존파 사건과 삼풍백화점 사건의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두 사건 모두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문제제기와 고민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존파사건은 살인범들을 사형시키는 것으로 끝났고, 삼풍백화점은 죽은 사람만 억울한,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참사’가 되어버렸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2014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논픽션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공포영화에 가깝다. 얼마 전 육군 28사단에서 윤일병이 다른 병사들에 의해 구타‧고문당하다 결국 사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해자들을 향해 엄청난 비난이 쏟아진다. 20년이 지난 후 2024년에도 우리는 여전히 군대 폭력에 직면하고, 20년 전 군대 내 ‘폭력의 대물림’에 주목하지 못했다고 한탄하고 있지 않을까?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다. 참사 이후, 언론은 선장과 선원들을 비난했다. 대통령은 선장을 살인자로 규정했다. 지존파 사건 때처럼, ‘살인자’들을 엄벌하면 그걸로 끝나는 걸까. 유병언 일가도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과실치사’ 이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삼풍백화점 사건처럼, 그렇게 끝나버리는 것은 아닐까.
 
논픽션 ‘다이어리’가 기록한 90년대는 암울했다. 이 다이어리에 적힐 2014년은 어떤 모습일까. 적어도  90년대가 반복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