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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hook

이명박은 완전한 신자유주의자가 아니다.

최근 이명박 정권과 대기업들 간의 마찰이 화제다. 경제가 회복기에 들어섰으나 대기업만 그 혜택을 누리고 그 혜택이 중소기업이나 서민에게로 ‘낙수’되지 않음에 따른 질책이라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등 정부 고위인사들은 납품단가 인하 등의 대기업의 횡포를 지적하고 대기업만의 독식을 경계하는 발언들을 쏟아내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전경련이 이런 발언들에 대해 경계심을 드러내자 이 대통령은 오히려 ‘전경련이 무조건 대기업을 옹호하는 태도를 버려야한다’고까지 말했다. 혹자들은 집권 후반기에 레임덕에 빠지지 않으려는 이 대통령의 쇼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쇼라고 보기 어렵다. 이는 원래 이명박 대통령의 정체성과 관계되는 본질적인 문제가 표면으로 드러난 것뿐이다.

이명박은 ‘신자유주의’라는 기표로 다 메울 수 없는 기의의 잉여를 지니고 있다. 그는 민영화와 시장경제를 강조하는 한편 국가 주도의 토건 사업을 기획하고 박정희를 연상케 하는 선글라스를 쓰고 기업 현장을 돌아다닌다. 그는 미분양 아파트를 공적 자본으로 사들이고, 어떤 독재정권 시절의 토건 사업에도 뒤지지 않는 대운하와 호남고속도로 건설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으며 신용불량자의 부채 탕감까지 (반대에 부딪혀 철회하긴 했지만) 주장했다. 물가가 오르자 MB물가를 지정해 국가가 물가를 관리하기까지 했다. 그는 개발주의적 신자유주의자이며 신자유주의적 개발주의자다. 그의 정체성은 이 두 가지 ‘사이’에 있다.

 

이런 사이의 위치 때문에 이명박과 그의 정책들을 비판하는 두 가지 세력들이 있다. 조갑제 같은 우파들은 이명박이 경제관계 때문에 어쩌지 못하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강경한 대응을 주창하며 북한을 공격하자고 말한다. 조갑제가 천안함 사건 이후 단호한 대응을 결의하는 한 집회에서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더 이상 우리를 대변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나름 정확한 분석이다. 이택광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은 ‘말로는 시장주의를 외치지만 시장의 우위에 서거나 바깥의 ‘특권’을 달라고 요구‘하는 자들이다. 또한 진정한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명박의 개발주의를 규탄한다. 한나라당의 이한구는 대운하를 비판하면서 경기 부양을 위해 노무현 정권 때부터 경제당국이 종종 시행했던 이자율 인하 정책에 대해서도 ‘시장대로 합시다.’라고 말한다

 

이런 이명박의 이중적인 정체성 때문에 두 가지 다른 세력들은 이명박을 지지했다. 그러나 집권 후반기의 레임덕을 맞이한 지금 이명박은 바로 이 이중적인 정체성 ‘때문에’ 두 가지 다른 세력들로부터 비판 받을 것이다. 재계와 이명박의 갈등은 마치 노태우와 정주영이 갈등한 것처럼 숨겨져 있던 균열이 드러난 것일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명박이 서민을 위해 대기업을 비판한다고 착각해서도, 이명박을 비판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이 합리적 우파라고 혼동해서도 안된다. 네오 이명박의 등장을 막기 위해서는 다음 대선과 총선 때 개발주의도 신자유주의도 모두 지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