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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미디어스 칼럼

박근혜의 역사관을 넘어서자, 박근혜의 나라를 넘어서자

박근혜의 역사관을 넘어서자, 박근혜의 나라를 넘어서자

 

[연속기고③]박근혜의 역사관, 무엇이 문제인가
조윤호 / '보수의 나라 대한민국 ' 저자

 

편집자주=새누리당 대선 후보 박근혜 후보가 휘청이고 있다. 몇 년여간 가장 강력한 대권주자였던 박 후보는 최근 역사관 문제에 발목이 잡히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리더십을 갖추지 못했단 평가 앞에 위기를 맞고 있다. 박근혜 역사관의 문제는 박정희 시대를 역사의 시공간으로 온전히 바라보지 못한 채, 아버지의 기억에 매달려 있다는 점에 근본적 비극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의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는 박 후보의 말은 역사관의 비극이 되풀이 될 것임을 강력하게 암시한다.

 

<미디어스>는 최근 <보수의 나라 대한민국 : 박근혜로 한국 사회 읽기>를 펴낸 청년 논객 조윤호 씨의 글을 3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대표적 청년 논객 가운데 한 명인 조윤호 씨의 글은 박 후보의 역사관 논쟁이 함의하고 있는 맥락과 배경 그리고 과제를 이해하는데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연재 순서>

① 과거는 과거일 뿐 오해하지 말자? : 박근혜의 과거-미래 이분법
② 국민통합과 100% 대한민국, 정말로? : 박근혜의 나라와 박근혜의 국민
③ 박근혜의 역사관을 넘어서자, 박근혜의 나라를 넘어서자.

 

“저의 이념은 간단하다. 오직 국익과 국민의 이익이 있을 뿐이다.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저의 이념이고, 국민의 행복이 저의 이데올로기이다. 저는 지금까지 정치를 해오면서 모든 정책을 우리 헌법적 가치와 국익의 관점에서 결정해왔고 어느 한쪽에 치우친 적이 없다. 그래서 중도라고 생각한다. 보수도 잘못한 것이 있으면 고쳐야 하고, 진보도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한다. 무엇이 국민의 삶의 질에 도움이 되는지를 판단해서 옳은 것을 따라야 한다.”

 

박근혜가 2007년 <뷰스앤뉴스>와의 인터뷰 중에 한 말이다. 박근혜는 중도를 국익, 국민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세력과 동일시하고 있다. 본인이 시대에 맞지 않은(과거의) 이념논쟁이나 하는 보수나 진보, 좌파나 우파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와 국민을 생각하는 중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는 건,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생각하는 건 보수/진보, 좌파/우파의 틀에 갇히지 않는 중도의 입장일까?



 

▲ 유모차 걷기 대회에 참가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연합뉴스

나침반의 리더십

 

박근혜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방향’이다. 누군가에게 너 좌파냐, 우파냐 라고 물었는데 그 사람이 ‘저는 인간의 행복만 생각한다.’고 대답한다면 이는 너무 단순한 대답이다. 좌파건 우파건, 진보건 보수건 누구나 다 인간이 행복하길 바라고, ‘잘 삶’을 추구한다. 다만 무엇이 행복한 것인지, 무엇이 잘 사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는지 등등에 대한 진보와 보수의 대답이 다를 뿐이다. 박근혜는 미래와 국익을 내세운다. 그런데 그 단어들은 너무나 공허하다. 미래? 어딘지 방향도 모른 채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겠다는 건가? 국익? 국익이 도대체 무엇이고, 국가가 어떤 정책을 추진해야 국익을 얻을 수 있는 건가?

 

설마 박근혜가 방향도 모른 채 앞으로 나아가자고만 이야기할까? 아니다, 박근혜에게는 나침반이 있다. 1980년 2월 4일자 일기에서 박근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이 하자고 하는 것만 하고 인기 얻을 일만 하는 사람은 leader(리더)가 아니라 follower(추종자)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국민은 불안해서 follower를 믿고 살 수는 없다. 선견지명을 갖고 미리미리 판단해서 국가를 잘 이끌어주기를 바라기에 권한도 주고 권위도 부여한 것이다.” 2001년 4월 이화여대에서 주관하는 ‘여성과 정치’ 특강자리에서 박근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리더십이 나침반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면 리더십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박근혜의 나침반은 바로 박근혜 자신이다. 박근혜가 추구하는 나라가 가고자 하는 그 길, 바로 그 길이 박근혜의 방향이다.

 

보수주의자 박근혜의 문제해결법

 

박근혜는 본인이 중도라고 말했지만, 박근혜는 뼛속까지 보수주의자다. 박근혜의 나침반은 오른쪽을 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보수주의란 대체 무엇인가?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보수(保守)란 지킨다, 보존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보수 세력은 무엇을 보존하고 무엇을 지키려 하는가? 바로 현 상태의 구조와 전통이다. 서양에서 보수주의는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탄생했다. 프랑스 혁명을 지켜보던 영국의 보수주의자 에드먼크 버크는《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이란 책을 써서 프랑스 혁명을 맹렬하게 비판했다. 버크를 비롯한 당대의 보수주의자들은 프랑스 혁명의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 등을 비판했다. 자유, 평등, 박애와 같은 가치를 인간이 추구할 수 있다는 믿음의 근거는 ‘계몽주의’이다. 즉 보수주의자들은 인간이 자신의 이성으로 세계를 파악할 수 있으며, 자신의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는 ‘계몽주의’에 맞선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인간을 믿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의 이성을 믿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의 이성을 통해 세계를 파악할 수 없다. 인간의 이성을 믿지 않는 대신, 보수주의자들은 인간의 경험을 믿는다. 수백, 수천 년 간 누적되어 온 인간의 경험과, 인간이 지금 살고 있는 현재의 질서를 믿는다. 보수주의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원래 자유롭지도 선량하게도 태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무정부, 악, 상호파괴로 치닫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을 안정시키고, 영구적인 틀 안에 순응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보수주의자들이 전통을 옹호하고, 현 체제의 질서를 지키고자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박근혜는 보수주의자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제왕적 리더십, 따뜻한 성군 이미지, 박정희 등등의 요인이 박근혜를 보수주의자로 만든다. 박근혜가 들으면 서운해 할지도 모른다. “박근혜는 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가 않다.

 

▲ "나 영계 좋아해" 등의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김성주 새누리당 선대위원장 ⓒ연합뉴스
박근혜는 여성도 일할 수 있는 사회를 강조한다. 진보적이고 진취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보수 세력은 이러한 박근혜의 주장에 별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이미 한국의 보수 세력은 시장주의와 결합했다. ‘시장에서 성공하자’ 정도의 주장은 수용 가능한 것이다. 노동시장에서 승리한 여성들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자본주의에서 성공한 여성으로 추앙받으면서 혜택을 누린다. 노동시장에서 승리한 남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박근혜가 최근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한 김성주가 아마 그런 여성일 것이다. 김성주는 “여자도 군대 가야 한다.”, “아이 키우면서도 쿠키 만들어 팔면서 돈 벌 수 있다”, “난 ‘영계’(젊은 남자를 가리키며)가 좋다.” 등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이에 대해 한 트위터리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성주가 생각하는 이상적 여성이란 군대 가서 강인한 체력/정신력을 함양한 후 애 낳고 직장 없으면 수유하며 쿠키를 구워 인터넷 판매를 하다가 CEO에 오르면 공개적으로 젊은 남성을 성희롱할 수 있는 여성이지요.”(@peer_rage)

 

나아가 박근혜는 중소기업에게, 청년들에게 기회의 평등을 주자고 말한다. 그러나 아무리 성공할 기회를 주어도, 한국사회에서 성공하는 건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공정한 기회를 주어도, 설사 중소기업과 사회적 약자들이 경제적, 사회적 성공을 거둘 수 있다 해도 누군가는 ‘패배’한다. 패자에게 재도전의 기회가 주어질 뿐, 패자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는 이에 대해 꼭 성공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말한다. 이 논법에 따르면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려고 용쓰지 말고 비정규직 나름대로 행복하면 된다. 취업준비생들이 꼭 대기업 입사하려 하지 말고 중소기업에 들어가 나름대로 행복하면 된다. 꼭 서울대 가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적성을 살려 행복하게 살면 된다. 참으로 보수주의자다운 해결방식이다. 사회구조는 건드리지 않고, 개인이 시장에 뛰어들어 이기거나 개인이 마음가짐을 바꾸면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바보인가? 비정규직은 행복하게 살 줄 몰라서 아등바등 정규직이 되려고 하는 건가? 대학생들은 행복하게 살 줄 모르고 과도한 욕심으로 대기업만 바라보고 있는 건가? 고3 수험생들은 적성과 끼를 키우며 살면 되는데 지나치게 서울대에 목매는 건가? 아니다. 그들이 성공하고 싶은 이유는, 한국사회에서 성공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돈 없이, 직장 없이, 안정된 직장 없이 늘 불안에 시달리는 한국인들은 높은 지위에 올라가 안정된 삶을 누리고 싶어 한다. 정규직, 대기업, 서울대를 꿈꾸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박근혜 캠프는 지난 9월 10일 박근혜와 인디 음악인들 간의 만남을 계획했다. 박근혜 캠프는 만남의 취지를 밝히는 과정에서 “인디밴드는 그야말로 ‘음악계의 2군’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디’는 프로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는 음악인들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곡을 쓰고 음반 제작과 유통까지 주류 기획사 등에 소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해결하는 음악생산 행태를 일컫는 말이다. 1군에 비해 떨어지는 2군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디 음악은 주류 음악에 대한 2군이었군요. 앞으로 소녀시대를 목표로 열심히 매진 해야겠습니다.”(인디레이블 붕가붕가 레코드 고건혁 대표)

“멀쩡한 사람을 패자로 부르고 거기다 계급을 나누는 패기가 바로 ‘국민대통합’인가”(한 누리꾼)

 

이와 관련된 친박계 의원의 한 발언도 논란을 일으켰다. 한 친박계 의원은 지난 9월 10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고양 원더스라는 2군 야구팀 방문에 이어 인디밴드와의 만남은 대중의 관심권 밖에 있는 비주류를 끌어안는다는 ‘대통합’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야구팬들은 고양원더스가 왜 비주류냐며 분개했다. “인디밴드든 2군이든 일단 ‘패자’로 낙인찍는 것부터 그들 생각의 한계다.”(야구팬 박윤석씨)

 

박근혜 캠프는 캠프 관계자와 친박계 의원들의 말이 박근혜의 뜻과는 상관이 없다고 밝혔지만, 이와는 별개로 그들의 발언은 박근혜의 ‘국민행복’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폭로했다. 박근혜 캠프가 보여주었듯이 한국 사회는 주류가 아니면 비주류라 이름 붙이고, 나름대로의 방식대로 자신의 꿈과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비주류, 2군 딱지를 붙인다. 그 이유는 이 사회가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나눠지고, 승자만이 행복을 독점할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성공과 무관한 꿈과 행복을 추구한단 말인가?

 

박근혜는 학생 각자의 자질과 적성, 끼를 키우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학벌에 의해 개인의 삶이 결정되는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적성과 끼를 키울 수 있을까? 박근혜가 학생 각자의 자질과 적성을 키우는 교육을 추구하고 싶다면 학벌사회가 없어져야 한다. 대학입시의 과열과 그로 인한 사교육비 증진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박근혜는 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은 채, ‘학생의 적성과 자질을 키우는 교육’에 대해서만 원론적으로 되풀이한다.

 

▲ 29일자 경향신문 1면

 

보수주의자 박근혜의 국가관과 역사관

 

이 지점에서 박근혜의 국가관과 역사관이 만난다. 보수주의자 박근혜는 전통과 질서를 중요시하고, 현재의 체제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개인들이 그 체제를 받아들여 마음을 바꾸거나, 그 체제 안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본인을 담금질하는 것이 대안이다. 국가는 개인들이 담금질을 잘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준다. 1960년의 한국에 살았던 박근혜도, 72년의 한국에 살았던 박근혜도 전통과 질서를 중요시하고, 이를 보장하는 안정된 국가를 원한다. 박정희는 혼란을 바로잡고 국가다운 국가를 건설했고, 한국을 안정된 자본주의 질서로 이끌었다. “대체 아버지가 뭘 잘못했다는 거지?”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보수주의자가 믿는 건 인간의 경험이다. 인간의 경험이 쌓여서 구조가 되고, 이 구조는 언제나 부족하지만 ‘최선’의 것이다. 5.16의 박정희도, 유신선언을 한 박정희도 모두 우리의 과거이며.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역사다. 부족했을지 몰라도 당시에는 ‘최선’이었다. 보수주의자에게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만이 과제다. 그리고 이 미래를 현재의 구조 안에 종속시키려는 시도가 이 사회를 안정화할 수 있다. 박근혜가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는 하지 않으면서 미래를 논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박근혜의 역사관을 넘어서자, 박근혜의 국가를 넘어서자

 

우리가 박근혜의 역사관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박근혜의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다면 박근혜의 나침반을 반대편으로 돌려야 한다. ‘우린 좋은 곳으로 가고 있어요. 가장 안전한 곳을 찾아 항해중이에요.’라며 승객들을 이끄는 조타수 박근혜를 끌어내리고,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지도의 정체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

 

박근혜에게 원칙이자 상식인 게 우리한테는 원칙도 상식이 아닐 수 있다. 2007년까지만 해도 박근혜에게 줄푸세는 헌법(시장경제)에 부합하는 원칙이자 상식이었다. 이를 지키지 않고 높은 세금을 매겨 투자자들을 도망가게 하고, 시장에 개입하려 하는 열린우리당은 '간판을 내려야 할 정당'이었다. 그러던 박근혜가 이제는 공정한 시장경제, 원칙이 선 자본주의를 내세운다. 박근혜에게 자본주의 그 자체는, 시장경제 그 자체는 의심할 여지없이 좋은 체제인 모양이다. 시장경제가 공정하기만 하면, 자본주의가 원칙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상관없다. 과연 그럴까?

 

박근혜가 내세우는 '국익'도 마찬가지다. 박근혜는 한미FTA에 찬성하며, 한미FTA가 대한민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므로 꼭 해야 한다고 말했다.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 걸까? 박근혜는 제주에 해군기지를 짓는 것도 국익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누구에게 이익일까? 박근혜는 찬성과 반대가 갈릴 수 있으며, 이익을 보는 사람들과 손해를 보는 사람들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안을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버린다. 국가는 이 국익을 추구하기 위해 존재하며, 지도자는 국익을 위해서라면 일부의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자신의 정책을 강행한다. 박정희가 노동자들을 죽여 가며 국익을 위해 개발독재를 밀어붙이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면서 국익을 위해 유신을 밀어붙였듯이 말이다. 대안은 없다.

 

박근혜의 정적을 자처하는 진보 진영은 박근혜의 상식과 원칙을 뛰어넘는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박근혜가 내세우는 공정한 시장경제와 원칙이 선 자본주의가 민중의 삶을 나아지는 데 별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모든 이들이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이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모색해야 한다. 박근혜가 내세우는 국익이 누구에게 이익이고 누구에게 손해인지도 낱낱이 밝혀야 한다. 국가와 지도자가 국익이라는 이름하에 밀어붙였던 일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짓밟았는지 보여줘야 한다.

 

박근혜는 지난 24일 “역사를 잊어버리는 사람이 역사의 보복을 받는다는 말이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의혹'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의 영토가 짓밟힌 일, 장병들이 이를 지키기 위해 죽어간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에게 국가의 영토가 짓밟힌 것은 기억해야 할 역사이지만, 국가가 노동자들을 짓밟은 일, 국가가 한 기업인의 재산을 강탈한 일, 국가가 빨갱이 딱지를 붙여가며 국민을 살해한 일은 미래를 위해 잊어도 상관없는 역사인 모양이다.

 

박근혜는 미래를 위해 과거는 잊자고 말하지만, 우리는 절대 과거를 잊어선 안 된다. 국가가 폭력을 휘둘렀던 과거를 ‘최선’이라 평가하고, ‘어쩔 수 없었다.’고 평가하는 이상 그 과거는 미래에 반복되기 때문이다. 국가는 국익을 내세워 다시 한 번 힘없는 노동자와 민중들을 짓밟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누군가 나타나 그 과거를 잊고, 다시 미래로 나아가자고 말할 것이다. 박근혜의 말을 빌려 말해보자. 역사를 잊어버리는 사람은 역사의 보복을 받는다. ‘반복됨’을 통해서.

 

<미디어스>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