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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2030잠금해제

판도라의 상자 앞에 선 청년들

지난 11월 22일 한미 FTA 비준 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매일 저녁 시민과 노동자, 학생들이 거리에 모여 한미 FTA 비준무효를 외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한미 FTA 반대집회의 구성원 중 많은 수를 20대 30대 청년들이 차지하고 있다. 시사인 보도에 따르면 온라인을 활용하는 2030 세대 중 65.8%가 한미 FTA에 반대의사를 표명했다고 한다. 한미 FTA에 찬성하는 어른들이 보기엔 통탄할 이다. 아니, 한미 FTA로 최소 7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중장기적으로 35만 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는 데! 청년실업의 타개책이 될 수 있는데 대체 왜 청년들이 반대하는 거지!?

한미 FTA로 인해 정말 일자리가 늘어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잠시 접어두자. 한미 FTA는 판도라의 상자와 같기 때문에, 그 상자가 열렸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 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일자리가 늘어날지 줄어들지 예측 할 수 없다. 이 점을 고려하여, 정부가 홍보하는 대로 한미 FTA로 인해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치자. 그런데 과연 청년고용의 문제가 ‘일자리 부족’ 때문이었나? 청년들이 취업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전적으로 ‘일할 거리’가 없기 때문이었나?

더 큰 문제는 ‘불안정노동’이다. 청년들이 고용되는 일자리의 대부분은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비정규직이다. 정규직 노동자 역시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장시간 노동도 불사해야 한다. 청년들이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고? 몇 천 만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부어가며 대학을 졸업했는데 어느 누가 언제 어떻게 짤릴 지 모르는 비정규직으로 입사하고 싶을까? 어떤 어른들은 청년들에게 스펙에 얽매이지 말고 하고 싶은 거 하라고 살라고 조언하지만, 청년들이 스펙에 얽매이는 이유는 ‘불안’ 때문이다. 이 사회의 구조는 점점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의 수를 줄여나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들은 불안에 시달리는 삶, 불안정노동을 거부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해 자기 자신을 단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을 구조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한 청년실업은 해결될 수 없다.

그렇다면 한미 FTA는 일자리 창출을 넘어서, 청년들의 불안을 해결해줄 수 있을까? 한미 FTA가 타결되고 난 직후인 2007년 4월 5일에 발간된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는 한미 FTA의 가장 큰 효과로 ‘경쟁에 의한 구조조정 촉진’을 제시한다. 미국 기업과의 경쟁이라는 외부 쇼크로 그동안 부진했던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이뤄내, 경쟁력 강화를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은 바로 ‘이 이유’ 때문에 한미 FTA에 찬성하지만, 우리는 바로 ‘이 이유’ 때문에 한미 FTA에 반대한다. 도대체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 뭐가 중요한가? 창출된 일자리는 대부분 언제 짤릴지 모른 채 불안에 시달리는 청년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대기업들은 미국 기업과의 경쟁력 강화를 명목으로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기업 선진화란 명목으로 노동자들의 목숨 줄(해고)을 쥐고 흔들 것이다. 한미 FTA는 청년들에게 불안을 강요하면서, 그것을 기회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한미 FTA는 판도라의 상자다. 그 상자가 열리면 어떤 미래가 도래할 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래도 판도라의 상자 맨 아래에는 희망이 남는다. 한미 FTA로 인해 어떤 미래가 도래 할지 모르지만, 결국 희망은 남을 것이다. 나도 열심히 노력하면 한국의 주요 대기업이나 잘나가는 다국적 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직하여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희망 말이다. 청년들은 그 희망만큼 고통스러워질 것이다.

<한겨레>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