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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2030잠금해제

이제 교육공공성 투쟁이다

서울시립대와 달리 사립대에선
선거로 등록금을 인하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떤 투쟁이 필요할까?

나는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이다. 반값 등록금 투쟁의 여파로, 그리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으로 우리 학교의 등록금은 반값이 되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이제 한 학기에 평균 119만원만 내고 학교에 다닌다. 그러나 시립대의 등록금 인하는 다른 학교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시립대의 경우, 반값 등록금은 어쩌면 간단하다. 서울시에서 예산을 책정하고, 예산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면 된다. 등록금을 인하해줄 시장을 뽑는 선거와 그 시장의 서명이라는 행정적 절차, 의회에서의 예산안 통과면 오케이다. 하지만 사립대에선 이렇게 등록금을 인하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떤 투쟁이 필요할까?

 

반값 등록금 투쟁은 교육 공공성 투쟁으로 이어져야 한다. 반값 등록금이나 등록금 인하는 학생들에 대한 시혜여서는 안 된다. 대학이라는 상품의 과도하게 높은 가격에 문제를 제기하는 소비자와 공급자 간의 가격 협상이어서도 안 된다. 반값 등록금 투쟁은 교육이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 모두의 권리임을 천명하는 방향으로, 따라서 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교육은 공공성을 띠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렇다면 교육의 공공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최우선의 과제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당사자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결정하고 해결하는 원리다. 더 이상 총장과 재단 이사장 등 몇몇이 등록금을 결정하게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학생들이 등록금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 이런 취지로 각 대학에는 등록금심의위원회가 설치되어 있지만,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등심위는 심의기구일 뿐 의결권이 없어서 학생들은 사실상 등록금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없다.

 

사립학교법 개정도 필요하다. 사립대들은 재정압박을 내세워서 등록금을 인상한다. 하지만 그들은 수백억원의 적립금을 쌓아두고, 그 돈으로 땅을 사고, 주식에 투자한다. 등록금을 어디다 썼느냐고 물어보면, 경영상의 비밀이라고 버틴다. 많은 사람들이 대학이 기업화되었다고 걱정하는데, 이건 기업도 아니다. 칼만 안 들었지 강도다.

 

개방형 이사제를 도입하고 사립학교 학교운영위원회를 심의기구로 설치하고. 이사장 친인척의 임용을 금지하는 사학법 개정이 필요하다. 이는 학교가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운영되도록 하고, 이를 통해 사학이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학교를 운영하는 것을 제어함으로써 교육의 공공성을 되살리기 위한 조처다. 그러나 보수언론과 사립학교 재단들은 이런 조처가 경영권 침해라며 반발한다. 정부의 지원금(결국 국민 세금)과 학생의 등록금에 의존하면서 오직 설립 시기에 개인 재산을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 학교를 개인 재산처럼 운영하고 세습하면서, 이를 경영권이라 부른다.

 

이처럼 등록금 결정 구조를 교육의 주체인 학생에게 개방하고, 폐쇄적인 사립학교 운영을 개방형으로 바꾸는 민주적 조처가 없는 한 교육의 공공성은 확보될 수 없다. 총장이나 이사장의 의지에 따라 운영되는 학교가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 반값 등록금 투쟁이 불쌍한 대학생들에 대한 시혜나 가격 협상이 아니라 보편적인 권리에 대한 투쟁으로, 교육 공공성에 대한 투쟁으로 이어져야 하는 이유다. 서울시립대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운 좋게 박원순이 서울시장이고, ‘등록금 인하에 찬성하는’ 민주당이 의회를 차지하고 있다. 근데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권리를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의 요구는 ‘등록금 인하’를 위한 요구가 아니라 ‘우리가 결정할 권리’를 달라는 요구여야 한다. 교육의 공공성을 보장하라는 요구여야 한다.

 

<한겨레>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