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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2030잠금해제

모여라, 연대의 광장으로!

노동자들의 ‘투쟁’ 시간은 정치권의
‘선거’ 시간과 다르게 흐른다
그들이 다시 광장에 모여들고 있다

총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각 정당은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쏟아놓고 있다. 청년, 일자리, 경기회복, 개발, 복지, 안보, 환경… 그리고 노동, 비정규직. 그동안 노동 문제에 아무런 관심이 없던, 노동자들의 생존 투쟁을 ‘이기적인 불법행위’로 평가하던 새누리당도 노동자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한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한다고 한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때 정리해고 법을 만들고 ‘손배가압류’(손해배상 청구소송 및 재산 가압류)에 앞장섰던 정치인들과 정당도 마찬가지다. 노동자들을 대변하겠다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총선과 대선 직전에 터져 나오는 정책들은 노동자들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 노동자를 대표하겠다는 정당한테 투표를 하면 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을까? 아니다. 노동자가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노동자 자신뿐이다. 노동자들의 ‘투쟁’ 시간은 정치권의 ‘선거’ 시간과 다르게 흐른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투쟁도, 파카한일유압 노동자들의 투쟁도 1000일이 넘었다. 재능교육 노동자들의 투쟁은 1500일을 넘겼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5년 동안 싸웠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6년 동안 투쟁 조끼를 벗지 못하고 있다. 코오롱 노동자들은 8년째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고 있다. 정치인들이 노동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전부터, 사람들의 눈길이 노동자들에게 향하기 전부터 노동자들은 견디기 힘든 시간 동안 투쟁해 왔다.

 

그들이 다시 광장에 모여들고 있다. 무관심과 냉소 속에 자본을 넘어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는 장기투쟁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재능교육, 기륭, 코오롱, 콜트-콜텍, 파카한일유압, 쌍용차 노동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자본이 사내하청이라는 편법을 통해 노동자의 목숨줄을 흔드는 상황에서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노동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현대차 비정규직과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노동 유연성과 경영 합리화라는 이름으로 정리해고를 일삼는 자본한테 해고는 살인이라고 외치는 노동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케이이씨(KEC), 풍산금속, 대우자판, 전북버스, 시그네틱스, 유성의 노동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노동자이지만 노동자라고 불리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도 모여들고 있다. 자본은 치솟는 기름값을 운수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각종 산업재해와 장비관리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긴다. 이윤을 위해서 말이다. 이윤밖에 모르는 자본에 저항하기 위해 애니메이션, 학습지, 레미콘, 퀵서비스 노동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그래서, 다시 ‘희망’이다. 정리해고가 얼마나 심각한 사회문제인지 일깨운 ‘희망’버스의 이름을 이어받아, 쌍용차 노동자들과 함께 살기 위해 모인 ‘희망’텐트의 이름을 이어받아, 이번엔 ‘희망’광장이다. 지난 10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광장’이 열렸다. 희망광장에 노동자들만 모여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현실에 슬퍼하고 그들의 주장에 공감하는 민중과 학생들이 함께 있다. 그들은 광장을 점거한 채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비정규직과 노동 문제만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제주해군기지도, 한-미 에프티에이도 중요한 이슈다.

 

작년 여름 김진숙을 찾아 떠난 희망버스는 우리 사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다. “노동자도 사람이다!” “노동자의 노동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라!” “노동자가 기업의 주인이다!” “연대하자!” 우리는 저항이 꿈 트는 계절, 봄에 다시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모여라, 연대의 광장으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말고 노동하기 좋은 사회를 위해!

 

<한겨레>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