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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미디어스 칼럼

힐링, 기쁘지 아니하다.

당신이 만약 2010년대의 한국사회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를 하나 꼽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힐링’을 꼽지 않을까? 힐링은 모든 단어에 붙여도 되는 만능키가 되어버렸다. 힐링 하우스, 힐링 여행, 힐링 다이어트, 힐링 푸드, 힐링 뮤지컬, 힐링 강연, 힐링 메이크업 등등. 힐링이라는 이름을 단 상품들이 넘쳐나고 있다.

2013년 한국의 키워드, 힐링

서점가에도 힐링이 대세다.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시작에 불과했다. 힘들고 외로운 청춘들을 위로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책의 독자층이 점차 넓어졌다. 스님의 지혜와 현답(賢答)을 통해 위로를 느끼려는 독자들로 인해 혜민 스님, 법륜 스님, 정목스님 등의 ‘힐링 멘토’들이 등장했고, 그들의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방황해도 괜찮아>,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 <스님의 주례사> 등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힐링을 내세운 대표적인 브랜드는 sbs의 토크쇼 <힐링 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이다. 마음이 평안해지는 산속이나 친환경적인 스튜디오 안에서 유명인들이 세 명의 진행자와 대화를 나누며, 내면의 상처를 치유한다. 힐링 캠프에 출연하여 사실상 대선 신고식을 치렀던 박근혜 당선인도 자신의 대선캠프를 ‘힐링캠프’라 불러달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되어 한국의 상처를 치유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도 대선 기간 중에 일자리와 복지정책으로 대표되는 ‘힐링 코리아 정책’을 제안했다. 대선이 끝나자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과 진보언론들은 대선 패배로 충격을 받은 이들을 위해 ‘힐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문화평론가 문강형준은 힐링이라는 단어가 현재의 한국 사회를 응축해 보여준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힐링’의 범람 현상은 어쨌든 한국인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불안감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2000년대의 유행어였던 ‘웰빙’이 더 조화롭게 잘 살기 위한 대중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라면, 2012년의 ‘힐링’은 더 잘 살고 싶기는커녕 받은 상처를 치료라도 하고 싶은 몸부림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동안 살기는 더 팍팍해진 것이다.”[각주:1]

현실을 극복하는 방법, ‘나’를 극복하기.

이처럼 먹고 살기 퍽퍽한 현실에서 대중들이 힐링을 원하고, 이에 따라 기업과 저술가들이 다양한 힐링 상품들을 생산하면서 힐링은 대세가 되었다. 실제로 영미권에서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불교 관련 서적이나 명상 서적들이 강세를 보여 왔다고 한다. 살기 힘들수록 사람들은 자아를 치유하고, 위로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자아의 치유와 위로를 통해 결국 ‘나’를 극복하는 것이 힐링이다. 이 빌어먹을 현실을 극복하려면 나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힐링이다. ‘나’는 힐링을 위해 나의 서사를 고백한다. 나는 사업하다 부도가 났거나,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취직을 하지 못하거나, 나의 가족이 불행해진 이야기들을 남들 앞에서 풀어놓는다.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고통에 공감한다. 이 과정은 힐링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힐링 캠프>에 출연한 유명인이 즐거운 삶에 대해서만 주구장창 이야기한다고 생각해보자.(<힐링 캠프>를 <무릎팍 도사>로 바꿔도 좋다.) 그 사람은 힐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잘나 보이는 스타나 유명인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에게도 불행한 과거가 있었다고 설명하고, 진행자들은 그 슬픔에 공감한다. 나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그리고 이에 대해 타인의 공감을 얻음으로써 ‘나’는 상처를 치유 받는다. <힐링 캠프>는 이런 과정을 거쳐 결국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힐링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겪은 고통이 남들도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임을 깨닫기 때문이다. “남들도 나만큼 힘들었고, 결국 어떤 이들은 그 고통을 이겨내고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나도 이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청춘 멘토 김난도가 쓴 책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네가 지금은 아프지만, 청춘이란 원래 그런 과정을 겪는 거란다, 힘내.” “불안하고 흔들리지? 그게 바로 어른이 되는 과정이야. 자연스러운 거야.” 혹자들은 김난도의 메시지가 “너만 힘드냐? 모두 다 힘들어! 혼자 힘든 척 하지 마!”라는 꼰대질 아니냐며 반발했지만, 많은 청춘들은 그가 던진 공감의 메시지에 힐링을 받았다.

더 나아가, 우리가 힐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내가 바뀌어야 모든 것이 바뀐다는 것이다. 이는 스님 같은 멘토형 조언자의 힐링이 유행하는 풍토와도 연결된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최근의 힐링 서적 열풍에 대해 “전통적인 심리치유서의 저자가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였다면, 최근엔 스님 등 ‘멘토형 조언자’가 다수라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힐링의 주체가 더 이상 전문가가 아니라 ‘나’이며, 나를 도와줄 수 있는 멘토형 조언자가 더 절실하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더 직접적으로 말한 사람은 <시골한의사 고은광순의 힐링>의 저자 고은광순이다.

“과거 나의 화두는 사회에 대한 원망과 부조리에 대한 분노였다. 그 책들은 그걸 어떻게든 고쳐보려는 몸부림이었다면, 이번 책은 우리들 자신의 내면의 에너지를 높이는 진화된 방법을 이야기한다.” “내 표정이, 내 에너지가 바뀌면 바로 저 사람이 달라진다. (중략) 많은 사람들은 고통의 원인을 '남편이 잘못해서, 시어머니가 잘못해서, 상사가 잘못해서'라며 타인에게 돌린다. 상대를 원망하고 그러면 내가 아프고, 다시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악순환이다. (중략) 자기 스스로 달라져야 한다. 내공이 높아지면 상대를 바꾸려고 하지 않게 된다. 부처나 예수가 누구 때문에 짜증내는 거 봤나. 나는 신을 믿고 따른다는 의미에서는 종교를 믿지 않지만, 누구나 부처처럼, 예수처럼 될 수 있다고는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상대를 변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내가 달라지는 것이다."[각주:2]

힐링이 위험해지는 순간들

혹자들은 나 자신을 극복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자는 게 뭐가 문제냐고 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어떤 현실로 인해 상처받는다면 그 현실을 뜯어고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아닐까? 힐링이 이러한 개혁의 필요를 내면의 변화라는 틀 안에 가둬버린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 가장 위험한 사례는 지난 토요일 <한겨레>에 실린 법륜 스님의 글이다.[각주:3]

법륜 스님의 이 글이 공개된 순간 트위터나 인터넷상에서 많은 논란이 일었다.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상담을 요청한 글에, 법륜 스님이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아버지를 원망하기보다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다고 답변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성추행을 했다고 해서 몸이 더러워지는 게 아니라 내가 더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몸이 더러워지는 거라면서 말이다.

힐링멘토로 불리는 법륜스님이 내세우는 논리, 즉 “모든 문제는 나에게 있고, 모든 문제는 나를 극복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그의 논리는 힐링 열풍에 근저 하는 논리다. 그리고 그 논리가 성폭행 피해자의 상처를 힐링 한답시고 적용되었을 때 은폐되는 지점들이 있다는 점이다. 성폭력은 한 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에 대해 가진 권력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법륜스님은 이에 대해 오히려 아버지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이다. 성폭력이 남성이 여성에 대해 가진 권력 때문에 발생하는데, 성폭력 피해자가 그 권력 중 일부인 가부장에 감사를 표하라고 말하는 셈이다. 아니면 “널 낳아주신 아버지인데 어쩌겠어. 그냥 네가 참고 이해해.”를 돌려서 말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의 사례는 다소 극단적일 수 있지만, 힐링 열풍에 근저한 “문제의 원인은 나”라는 논리는 이처럼 현실에서 발생한 문제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도록 만든다.

어떤 이들은 종교인이 종교적으로 말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법륜스님은 스님이기 때문에 불교 교리에 의거하여 상담에 응한 것뿐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종교인의 종교적인 이야기가 사회의 힐링 열풍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양사상을 떠올려보자. 동양사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처세술과 자기계발 서적들에 인용되고, 또 이용되어 왔다. 동양철학자 신정근은 동양철학에 대해 말하면 사람들이 처세술 밖에 떠올리지 못한다고 말한다.[각주:4] 이게 별로 문제없는 현상일까? 처세술이나 자기계발서적들이 왜 동양사상을 인용할까? 많은 사람들이 고전이나 오래되고 전통 있는 사상에는 진리와 지혜가 담겨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이용해서 “당신도 이렇게 살아야 돼.”라고 말하는 게 처세술 서적들 아닌가?

종교인이 종교 교리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도 마찬가지 효과를 지닌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힐링 열풍은 “문제는 너에게 있어. 자신을 극복해야 해.”라는 논리를 근저에 깔고 있으며 이는 현실의 진짜 원인을 은폐하는 위험한 효과로 기능한다. (법륜 스님의 사례가 이를 보여주었다.) 더 나아가 오랫동안 도를 닦은 종교인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권위를 누린 종교의 교리를 통해 이 논리를 보충한다. 종교인이 종교적으로 말한 것에 불과하니까 문제가 없다고? 아니, 정반대다. ‘힐링’이 지닌 문제점들은 종교인이 종교적으로 말함으로써 더 심각해진다.

힐링을 넘어설 무언가

우리에게 필요한 건 힐링을 넘어선 무언가다. 우리가 처한 위험과 위기를 내면으로 끌고 들어와 극복하는 것에 그쳐선 안 된다. 내가 처한 현실이 모두가 공감할 정도라면, 모두가 힘을 합쳐 이 현실을 바꿔야 한다. 우리가 변화시켜야 할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다.

<미디어스>에 기재되었습니다.

  1. 문강형준, "[크리틱] ‘힐링’이라는 돌팔이", 한겨레, 2012.8.31. [본문으로]
  2. 전두환은 부처" "히틀러는 천사" 그럼, 대통령은?, 프레시안 [본문으로]
  3. 아버지의 성폭행, 법륜 스님의 처방은?, 한겨레 [본문으로]
  4. 신정근, "동양고전은 왜 처세서로 읽히는가", <싸우는 인문학>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