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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노동당 기관지

민간인이 그려본 '한반도 전쟁 시뮬레이션'

http://www.newjinbo.org/n_news/news/view.html?no=1590


진보신당 기관지 창간준비1호에 실린 글입니다.


민간인이 그려본 '한반도 전쟁 시뮬레이션'


국방부와 청와대만 할 줄 아는 거, 아닙니다. 우리도 '한반도 전쟁 시뮬레이션' 한 번 돌려볼까요?진보신당 기관지 창간준비 첫 호 "공포를 키우는 정치, 공포를 이기는 정치" 네 번째 꼭지, 전쟁이 뒤바꿔놓을 우리의 일상을 이야기합니다.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조본좌'로 잘 알려진 조윤호 당원의 글입니다.

 
“미사일에 소형화된 핵이 장착되어 있을 경우 예상되는 피해는 어느 정도입니까?”
“지난 번 풍계리 핵실험 결과로 추정을 했을 때 약 10k톤의 위력을 갖고 있는 걸로 예상됩니다. 합참, 한미연합사 등이 밀집해 있는 용산에 떨어질 경우 1차 40만 명이 사망하고, 2차 피해로 20만 명, 북서풍이 불 경우 3차 피해로 80만 명이 사망할 수 있습니다.”
 
KBS 수목드라마 <아이리스2>의 한 장면이다. 순식간에 80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말에 대북 강경파를 자처하는 대통령도 손에 땀을 쥔다. 소형 핵미사일 하나가 용산이라는 도시 하나에 떨어졌을 뿐인데 80만 명이 사망한다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실제로 전쟁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셀 수도 없는 미사일과 엄청난 폭탄이 온 도시를 뒤덮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죽어나갈까?
 
한반도에 등장한 ‘전쟁’의 그림자
 
단지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다. 아마 2013년 상반기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 중 하나는 ‘전쟁’이 아니었을까?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이어진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 키 리졸브 훈련 등을 통해 남북한의 긴장은 점점 고조되어 갔다. 보수언론들은 노골적으로 전쟁을 부추기거나 마치 곧 전쟁이 벌어질 것처럼 위기감을 조성했다. ‘전쟁을 결심해야 전쟁이 없다’, ‘북이 미사일 쏘면, 피해 없어도 상응 조치’ ‘북, 돌격명령만 남아’ ‘10배 이상 응징’ 등의 살벌한 단어들이 신문 1면을 장식했다. 북한의 <로동신문>도 ‘최후 결전’과 ‘보복’을 외치며 전쟁을 부르짖었다.
 
만약 보수언론들과 <로동신문>의 말대로 남북한 모두가 전쟁을 결심하고, 북한이 무력도발을 시도해 남한이 이에 대응하면 어떻게 될까? 즉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일단 대부분의 젊은 남성들은 총을 들고 전선으로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 젊은 남자들‘만’ 전쟁의 영향을 받을까? 아니다. 전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민간인들은 어디서 포탄이 날아올지 모른 채 이리저리 도망 다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민간인들의 죽음은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 불린다. 우리는 전쟁 과정에서 벌어지는 의도되지 않은 민간인 피해를 ‘부수적’ 피해라 부른다.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은 ‘부수적’이라는 단어 밑에 파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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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전쟁 과정에서 벌어지는 의도되지 않은 민간인 피해를 ‘부수적’ 피해라 부른다.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은 ‘부수적’이라는 단어 밑에 파묻힌다. 파주 일원은 군부대들의 일상적인 훈련이 시행된다. (사진: 이상엽)
 
 
군대의 일상화, 비정상의 정상화
 
현대의 전쟁은 총력전(total war)이다. 성 하나를 빼앗기 위해 양 국의 군대가 충돌하고, 군인들이 전멸하거나 도주하면 끝나는 과거의 전쟁과 다르다. 현대에 벌어지는 전쟁은 적의 ‘절멸’을 요구한다. 그리고 적도 나의 절멸을 원한다. 적을 절멸시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힘을 최대한 끌어 모아야 하며 우리의 모든 물적, 인적 자원을 총동원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의 삶을 전쟁에 익숙한 체계로 바꿔야 한다. 군대가 그런 체계다. 언제든지 전쟁에 동원될 수 있도록, 자다가도 재빨리 일어나 무기를 챙겨 정해진 장소로 집합할 수 있도록 인간을 훈련시키는 곳이 군대다. 전쟁은 모든 인간을 그런 체계 속으로 밀어 넣는다.
 
군대라는 체계가 일상화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우리사회는 군대의 특수성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 예비역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 중에 “저기 사람 한 명과 군인이 지나간다.”라는 말이 있다. 군대는 일반적인 사회 운영 원리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특수한 공간이며, 그곳에서 생활하는 병사들은 일반적인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민간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만 한다. 그들은 자유롭게 말할 수도, 자유롭게 행동할 수도 없다. 온갖 인권유린도 ‘군대니까’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한 달에 10만원도 안 되는 돈을 주며 온갖 궂은일을 다 시킬 수 있는 이유도 ‘군대’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벌어지면 이러한 군대의 특수성이 일반화된다. 인권 같은 건 챙길 겨를도 없을 것이며, 조국의 승리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만’ 한다. 즉 전쟁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든다. 내가 만약 사람 한 명을 죽이면 나는 살인죄로 잡혀갈 것이다. 두 명 이상을 죽이면 연쇄살인마가 되어 천하의 몹쓸 놈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쟁 상황에서는 수십 수백 명을 죽여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영웅 취급을 받는다.
 
우리를 공격하는 적을 죽이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고? 우리가 총칼을 겨누는 이들이 과연 우리 외부의 ‘적’ 뿐일까? 전쟁이 우리 삶에 미치는 가장 큰 무서운 영향이 바로 이것이다. 전쟁은 우리에게, 우리 내부의 ‘적’을 색출해내라고 요구한다. 우리는 내 이웃이 북한군의 간첩이 아닌지 의심해야 하고 내 친구가 빨갱이라서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박찬승의 <마을로 간 한국전쟁>(돌베게, 2010)은 1950년 한국전쟁이 어떻게 마을 공동체에 침투했는지 잘 보여준다. 하나였던 마을은 군국 편과 인공군 편으로 갈라져 서로를 의심했다. 서로가 서로를 고발하고 서로가 총칼을 겨눈 채 서로를 죽였다. 이처럼 전쟁은 평소라면 절대 정당화될 수 없는 폭력들을 정당화한다.  


마을로 간 한국전쟁

저자
박찬승 지음
출판사
돌베개 | 2010-06-22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마을에서 벌어진 갈등과 상호 학살을 통해 살펴본 한국전쟁의 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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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까지 우리의 몫
 
전쟁이 끝나면 몸을 다친 상이군인들, 집과 재산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 후유증을 겪는다. 이들의 고통과 슬픔은 너무 눈에 잘 보여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고통스럽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 후유증도 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난 뒤 수많은 이들이 북한 편이라는 딱지가 붙은 채로 죽어나갔다. 위정자들은 북한을 주적으로 선포하며 절대 권력을 휘둘렀고 많은 이들은 숨죽이며 살아가야만 했다. 바른 말을 하거나 권력에 저항하는 이들은 모조리 ‘너 빨갱이지’라는 공세 앞에서 짓밟혀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하는 말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말을 하는 정치세력을 빨갱이라고 생각한다. 북한과 맞서는 ‘우리 조국’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생각한다. 내부의 적을 색출해야하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발생하는 이러한 일상의 변화와 파괴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전쟁을 결정하는 자들이 계산하는 온갖 수치에는 이러한 변화가 포함되지 않는다. 군인들의 전쟁 시뮬레이션에도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일상의 파괴는 분명히 실존하는, 우리가 부담해야 할 전쟁의 결과다. 우리가 전쟁 선동을 일삼는 위정자들을 견제하고 평화를 지향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