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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노동당 기관지

바닥을 친 진보정당, 더 나빠질 것도 없다?

진보신당 기관지준비팀은 당 오프라인 기관지 창간을 위해 지난 4월부터 커버스토리 준비호를 <정치신문 R>을 통해 선보이고 있습니다. 창간준비 2호 “2013 대한민국, 정치를 찾습니다”에서는 우리 주위의 정치지형을 살피고 진보신당의 과제를 짚어봅니다.

 
4월 재보궐 선거가 끝났다.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안철수다. 새 정치를 내세워 당선된 그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진 진보정당이다. 노원병에는 안철수 말고도 진보정의당 김지선 후보와 통합진보당 정태흥 후보가 출마했다.
 
하지만 안철수 의원이 60.46%, 새누리당 허준영 후보가 32.78%를 득표한 반면 김지선 후보는 5.73%, 정태흥 후보는 0.78%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김지선 후보는 원래 노원병 지역구 의원이었던 노회찬 전 의원의 부인이라는 점과 노회찬이 부당하게 의원직을 박탈당했다는 점을 내세워 관심을 끌었으나 결국 5%대의 득표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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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노원병 재보궐 선거 당시 거리에 걸린 선거공보들. (사진: 이상엽)

 
통합진보당의 패배도 뼈아프다. 정태흥 후보는 물론 부산 영도에 출마한 민병렬 후보와 부여·청양에 출마한 천성인 후보도 각각 11.95%, 5.72% 득표에 그쳤다.
  
더 이상 나빠질 게 있을까?
 
선거가 끝나자 언론은 하나같이 진보정당이 부진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진보정당, ‘높은 벽’ 실감”(매일경제) “안철수 압승, 민주·새누리 본전, 진보 퇴색”(참세상) “한계 고스란히…진보정당 어디로”(세계일보) “초라한 진보정당 득표율…사실상 정치적 사망선고?”(국민일보)
진보정당 을 지지하는 이들은 "우리가 언제 잘 나가던 때가 있었느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진보정당은 늘 지지율이 낮았고, 늘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아왔으며 늘 주류 정치로부터 무시당하지 않았는가. 나도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적이 있다. “더 망할 게 없으니 이제 더 올라갈 일만 남았겠지”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한 적도 있다.
 
비유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시력이 매우 안 좋다. 나는 10년 넘는 세월동안 내 시력이 더 떨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 해왔다. 시력이 나빠질수록 비싼 안경을 써야하고 눈 나빠지게 컴퓨터만 한다는 엄마의 핀잔을 들어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더 이상 눈이 나빠지는 게 두렵지 않다. 이미 너무 나빠져서 더 나빠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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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정의당 노회찬 공동대표가 4.24 노원병 재보궐선거에 출마한 아내 김지선 씨의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사진: 이상엽)

지난 대선과 4월 재보궐 선거는 더 나빠지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시력이 더 나빠져 버린 상황과 비슷하다. “진보정당이 여기서 더 나빠질 게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야권이나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진보정당은 어떤 존재일까? 한편으로는 함께 새누리당을 물리쳐야할 동지이면서 한편으로는 눈엣가시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새누리당을 반드시 이겨야 하는데 지지율이 조금 부족하고, 따라서 진보정당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힘을 합쳐야 했기 때문이다. 야권의 큰 형, 민주당 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조금씩 세를 성장하는 것은 진보정당의 중요한 생존방식 중 하나였다.
 
그래서 사실 난 민주당 지지자들이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이 독자후보를 내서, 너네 때문에 졌다고 이를 바득바득 갈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항의전화 받느라 고생한 당직자들에겐 죄송하지만…)적어도 우리랑 합치지 않으면 당선되지 못할 만큼 민주당 녀석들의 세력이 약하고, 우리의 영향력이 조금 있다는 거잖아? 그렇게 눈엣가시라면 그냥 무시하면 되는데 민주당 지지자들은 우리 ‘작은’ 진보정당을 무시하지 못했다.
  
하지만 총선과 4월 재보궐 선거를 거치며 상황이 바뀌었다. 진보정당은 더 이상 민주당의 발목잡기조차 하지 못한다. 지난 대선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과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3%였다. 진보진영의 후보라 할 수 있는 김소연·김순자 후보의 지지율을 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에게 갖다 붙여도 문재인은 박근혜를 못 이긴다. 4월 재보궐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안철수는 30% 격차로 허준영을 눌러버렸다. 김지선과 정태흥이 안철수와 후보단일화를 하든지 안하든지 안철수는 허준영을 이길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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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정당의 득표율을 모두 합쳐도 민주당의 '발목잡기'는 불가능하다. (제 18대 대통령 선거 네이버 뉴스화면 캡쳐)

 
즉 4월 재보궐 선거는 진보정당이 더 이상 야권연대/후보단일화 전략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더 이상 진보정당과 연대할 이유가 없다. 민주당의 이목은 온통 안철수에게 쏠려 있다. 진보정당 입장에서도 고민이 많아질 것이다. 작고 힘없는 진보정당보다 차라리 민주당이나 안철수 신당에 들어가려는 움직임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강동원 진보정의당 의원은 진보정의당을 탈당해 안철수 신당에 합류할 것으로 알려졌다.
 
진보신당은?
 
어쩌면 진보신당에는 “진보정당이 더 이상 야권연대로 살아남을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공감할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진보신당은 오래전부터 독고다이였고(실제로 야권연대를 완전히 안한 건 아니지만) 국회의원을 보유한 진보정의당이나 통합진보당보다 더 작은, 민주당 입장에서 연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작은 정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질문에 더 공감한다고 그 질문의 무게가 더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당분간은 홀로 살아남아야 한다. 그것을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당명이나 재창당에 대한 고민 못지않게 중요하다.

진보신당 기관자 창간준비호 2호에 올라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