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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노동당 기관지

이석기의 ‘과대망상’? 언론도 과대망상!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얼마나 오래갈지, 그 파장이 얼마나 클지 판가름조차 안 되는 ‘광풍’이다. 어떤 이들은 ‘종북’ 세력을 몰아내자고 소리치고, 어떤 이들은 ‘조작’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또 어떤 이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를 살피고 있다.

이 광풍을 주도하는 집단은 단연 국정원이다. 하지만 국정원 혼자 이 광풍을 일으킬 수는 없다. 많은 언론이 국정원의 파트너로 활약하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가 쓴 기사인지 기자가 쓴 기사인지 구별이 안 가는 기사들이 넘쳐난다. “내란음모죄가 통하지 않을 것 같으니 언론에 정보 흘리면서 여론 재판 한다”는 통합진보당 당원들의 불만이 이해가 간다.

대한민국 언론에 있는 ‘네 가지’

이석기 광풍을 이끄는 언론의 첫 번째 자세는 ‘단독’ 남발이다. 대한민국에 특종기자가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언론들은 이석기와 통합진보당, RO 관련 ‘단독’을 쏟아내고 있다. 채널A는 지난 28일 이석기 의원이 압수수색을 피하기 위해 변장을 하고 도주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채널A <뉴스특보>에 출연한 박민혁 기자는 “이석기 의원이 압수수색을 하기 직전에 변장을 하고 집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일부 카메라에 포착이 됐다”며 “영장이 발부가 안 된 건데 굳이 왜 피한건지. 실제 문제가 있어서 피한 것 아니냐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자 TV조선이 “변장을 한 후 택시를 탔다”는 내용을 추가했고, ‘단독’기사로 내보냈다. 수많은 언론이 이 소식을 받아썼다.

동아일보는 29일 ‘이석기 수도권 은신처에’라는 제목의 단독 기사를 내보냈다. 이번에는 ‘공안당국 관계자’의 말을 빌렸다. 하지만 이석기 의원이 변장하고 도주한 적도 없으며 국회에 있다는 반론이 나왔다. 언론이 단체로 오보를 했다는 주장이 나왔는데, 아무도 해명하는 이들이 없다.

국정원의 ‘의심’에만 근거한, 사실 확인이 안 된 기사도 쏟아지고 있다. JTBC는 28일 이석기의 선거광고 대행사 CNP 산하 회사의 관계자가 중국에서 고위급 북한 인사와 접촉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의혹 이상의 근거는 없었다. 채널A는 30일 아침뉴스에서 ‘단독-‘지금은 전시 상태’ 이석기 의원, 北측과 사전 교감 있었다?’는 리포트를 내보냈다. 하지만 내용은 “이석기 의원의 ‘전시상태’ 규정에 북한 측과의 사전 교감이 있었다는 국정원의 의심”이 전부다. 한국일보도 5일 지하조직 RO와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이 연관 있다는 국정원의 의심을 기사로 내보냈다.


언론의 두 번째 자세는 무분별한 ‘확대해석’이다. 몇몇 언론들은 이석기 집에서 발견된 현금에서 러시아 화폐가 나왔다며 북한과 관련 있다는 듯 보도했지만 근거는 없었다. 이석기의 집에 ‘이민위천’(以民爲天)이라고 적힌 족자가 걸려있다는 사실을 전하며 “김일성 북한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강조한 좌우명과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민위천’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말이다. 사마천도 종북 좌파였단 말인가?

언론의 세 번째 자세는 ‘쓸데없이 떠들기’이다. 언론은 이번 사건과 별 관련도 없는 사생활과 가십성 기사를 쏟아냈다. 몇몇 언론은 이석기가 이혼했고 자식이 유학을 갔다는 사실을 새로운 이슈인 것처럼 보도했다. 이번 사건으로 이혼한 것도 아니고 이번 사건 때문에 자식들을 해외로 보낸 것도 아닌데, 도대체 이번 사건과 이석기의 집안 사정이 무슨 상관일까? 조선일보는 이석기가 차고 다니는 시계가 주목을 받고 있다며 이 시계의 가격이 80만원이라고 전했다. 대체 누가 이석기의 시계에 주목한다는 걸까? 조선일보 빼고 아무도 관심 없을 것이다. 많은 언론은 이석기 녹취록을 보고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과대망상’이라고 비웃었다. 그 말을 이석기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에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언론은 과대망상에 빠져 기사를 쓰고 있다.

언론의 네 번째 자세는 ‘베끼기’이다. 한국일보가 이석기 녹취록을 ‘단독 입수’해 보도했는데, 조선일보와 세계일보는 이를 그대로 베껴 ‘단독’을 붙였다. 한국일보는 오타까지 그대로 베꼈다며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그냥 기사를 우라까이 하는 것도 아니고 ‘단독’ 베끼기라니, 이석기 광풍에 완전히 이성을 상실했다.

언론, ‘법적 책임’ 이전에 ‘도의적 책임’져라.

언론은 이미 이석기와 통합진보당을 ‘내란범’으로 확정지었다. 압수수색 단계였던 29일, 다수 언론은 “법원도 현역 의원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해 줄 만큼 확실한 증거가 확보된 상태”, “법원도 범죄 혐의가 충분히 소명돼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했다”는 국정원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당연히 유죄라는 식의 태도였다. 국정원이 이런 식의 이야기를 언론에 슬슬 흘리고, 언론이 ‘여론재판’을 해버리면 법원도 부담을 느껴 ‘정치적인 판결’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YTN은 이번에 체포된 통합진보당 인사가 수원시 무상급식에 관여했었다는 사실을 전하며 ‘내란세력 시정 참여’라는 타이틀을 걸었다. ‘내란 의심세력’도 아니고 ‘내란세력’이라니, 지나친 표현이다. 법원에서 판결이 난 것도 아닌데, 본인들이 이미 판결을 내려버렸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혹자들은 이석기와 통합진보당이 ‘법적’으로 내란음모죄를 판정받기 전에 ‘정치적’이고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할 지도 모른다. 국회의원으로써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친 점을 사과하고, 말을 바꾸면서 오락가락 한 점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법적 책임’ 이전에 ‘도의적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은 이석기 사건을 보도한 언론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통합진보당과 이석기 측은 언론의 허위보도에 대해 법적인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사가치가 없고 확인도 안 된 단독을 남발하고, 합리적이지 않은 의심을 쏟아 부으며 피의자를 범죄자로 낙인찍은 언론이야말로 ‘법적’ 책임 이전에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석기와 통합진보당을 ‘괴물’처럼 묘사하는 언론들, 사실 본인들이 괴물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