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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노동당 기관지

‘정치’하지 않는 정치인 박근혜, 사실은 ‘무책임’의 정치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17-18대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한 적이 있다. 수많은 국회의원 중에서 단연 돋보인 인물이 있었다. 17-18대 8년 동안 국회 본회의장에서 단 4번 밖에 말하지 않은 국회의원이 있었던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격렬한 토론과 논쟁을 주고받은 상임위 활동을 살펴보면 좀 다르지 않을까? 이 대단한 의원은 8년 간 본회의와 상임위를 통틀어 단 28번 밖에 말하지 않았다.

침묵의 정치인 박근혜

이 대단한 의원이 바로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다. ‘국회의원은 말하는 직업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회의원, 나아가 정치인은 국민을 대변해 토론하고 싸우면서 법과 제도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정치인들은 무슨 일만 터지면 자기주장을 내세우며 언론의 주목을 받거나, 입장을 밝히라는 언론과 국민의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정치인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건 죽었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말하지 않으면 언론에 등장하지 않고, 언론에 등장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그를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근혜는 다르다. 언론은 말없는 박근혜를 따라 다니며 박근혜가 한마디 해주길 기원한다. 그러다  어쩌다 한 마디 하면 대서특필하며 박근혜의 의중을 읽어낸다. 박근혜는 ‘침묵’을 통해서 정치를 한다. 박근혜 지지자들은 말만 번지르르하게 늘어놓은 정치인보다 한 마디 한 마디에 무게가 실린 박근혜를 더 신뢰한다. ‘신뢰’와 ‘원칙’의 정치인이라는 호칭은 여기서 나왔다. 가볍고 솔직한 언사로 언론의 질타를 받았던 노무현과 확실히 대비된다.

박근혜는 늘 침묵을 유지하다 한 마디 던지며 정국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위에서 소개했듯이 박근혜는 본회의장에서 단 네 번 연설했는데, 그 중 세 번은 교섭단체 대표연설이었다. 즉 박근혜가 자기 생각을 드러내기보다 공당의 대표로서 연설했다는 뜻이다. 나머지 한 번은 ‘세종시 수정안’과 관련된 연설이었다. 침묵을 지키던 그가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하기 위해 입을 열자, 이명박도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이 하는 일 하나하나를 비판하던 민주당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치’하지 않는 정치…박근혜, ‘대통령’ 맞나?

대통령이 되면 좀 달라질 줄 알았다. 그런데 여전하다. 박근혜가 뭘 하는지 모르겠다. 언론에 박근혜의 모습이 계속 나오기는 하는데,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기업인들도 만나고 국무회의도 하는 것 같은데, 도저히 ‘정치’를 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박근혜는 ‘정치’를 하지 않음으로써 ‘정치’를 한다.

박근혜가 뭔가 하는 것처럼 보이는 유일한 것이 대북정책이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는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의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이원집정부제 하에서는 총리가 내치를 담당하고, 대통령은 외교‧국방만 담당한다. 외교‧국방은 내치와는 달리 전문분야다. 즉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반대세력과 타협‧협상을 할 유인이 적다. 여론의 영향력도 덜 받는다. 외교관과 군인들이 정보를 독점한 채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정책을 결정하는 것과 같다.

국정원 사건을 대하는 태도를 보자. 국정원 사건을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건 청와대와 박근혜가 아니라 새누리당이다. 이는 국정원 규탄 촛불이 더 이상 커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2008년을 떠올려보면, 이명박은 촛불민심에 적극 개입했다.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냐’며 배후를 밝히라고 말해 비난을 자초하는가 하면 아침이슬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며 희화화의 소재를 제공했다. 이명박은 일이 터지면 깐족대면서 일을 키우는 특이한 습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는 다르다. 그런 ‘내치’는 내 일이 아니라는 듯이 침묵한다. 이런 침묵의 정치를 통해 박근혜는 욕도 먹지 않으면서 동시에 반대세력이 일정 수준 이상 확장되지 않도록 ‘관리’한다. 지배계급으로서는 박근혜가 이명박보다 고단수인 셈이다.

박근혜가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2자 회담’ 제안을 거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러한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김한길은 국정원 사건을 해결하자며 박근혜에게 2자 영수회담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자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끼어들어 3자회담을 하자고 나섰다. 여야 원내대표까지 포함한 5자 회담 제안도 나왔다. 회담이나 5자 회담을 하면 여야가 맞서면서 대통령이 가운데 서게 된다. 즉 박근혜는 중립적인 중재자의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 정파 간의 갈등을 조절하고 국론을 통합하는 대통령!

태국의 왕이 떠오른다. 태국에는 군부와 정치인들이 싸울 때마다 한마디 던지면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왕이 있다. 왕의 권위는 국가 위기 상황에 발동한다. 평상시에는 늘 침묵을 지키다 군부와 정치인, 또는 여야가 대립하면 나타나 한 마디 던지고, 그러면 모든 상황이 종료된다. 박근혜의 침묵의 정치, 정치하지 않는 정치도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아. 이 대목에서 ‘100% 대한민국’이 떠오른다.

박근혜의 정치는 무책임의 정치

문제는 박근혜의 정치가 ‘100% 대한민국’이 아니라 무책임한 정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는 침묵하기 때문에 책임질 일이 없다. 정치를 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사실상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행사하는 셈이다.

대선 기간 때 박근혜는 동생 박지만의 비리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 때 박근혜는 “동생이 아니라면 아닌 거겠죠”라고 말했다. 무책임의 극치다. 박근혜가 침묵했기 때문에 가능한 무책임이다. 마찬가지로, 박근혜는 4대강에 책임질 이유가 없다. 박근혜는 4대강에 찬성한 적이 없고, 그건 이명박이 한 일이니까. 박근혜는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에 책임질 이유가 없다. 그건 이명박이 한 거고 오히려 박근혜도 사찰 당했으니까. 박근혜는 국정원의 대선개입에 책임질 이유가 없다. 그건 국정원이 한 거고 박근혜는 도움 받은 적 없으니까. 박근혜는 윤창중의 성추행에 책임질 이유가 없다. 박근혜도 충격이었으니까! 이런 식의 무책임이 판을 친다. 불리하면 밑의 사람들 꼬리 자르면 그만이다. 

이명박이 광화문을 수놓은 촛불을 보며 “아 저 사람들은 왜 내 진심을 몰라줄까. 내가 잘못한 걸까”라며 눈물을 흘렸다면, 박근혜는 지금의 촛불집회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 “나라가 많이 혼란스럽군. 여야가 화합해서 해결해야 할 텐데”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몇몇 야권 지지자들은 박근혜를 ‘닭근혜’라고 부르며 박근혜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라고 비난한다. 동의할 수 없다. 박근혜는 모르는 게 아니라 말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는 이러한 행동을 통해 무엇보다 강한 정치력을 발휘한다. 박근혜의 무책임한 정치를 어떻게 폭로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