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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인문, 사회과학

역사의 무거움을 해체하라

 


엽기 조선왕조실록

저자
이성주 지음
출판사
추수밭 | 2006-05-25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조선왕조실록을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보는 책. 21세기 들어 열...
가격비교

무려 약 3년전 대학교 새내기일 시절에 쓴 글이라 상당히 부끄럽지만 그래도 올려놓는다.

내용

조선왕조실록의 다양한 내용들이 사건별로 짤막짤막하게 정리되어있는 식의 구성을 갖추고 있다. 다양한 사건들이 크게 네 가지 chapter로 구성되어있다. 첫 번째는 왕과 왕실에 관련된 이야기, 두 번째는 왕의 정책과 그에 영향을 받는 백성들의 삶의 모습이다. 왕의 정책과 백성들의 삶은 일방향적이지 않고 쌍방향적으로 관련되어 있음이 드러나 있다. 세 번째는 조선시대 양반과 조정대신들에 관한 이야기, 네 번째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조선 시대 문명(작가의 표현)을 재해석하는 이야기이다.




조선왕조실록이 ‘엽기’스러울 수 있다는 상상력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근엄하고 한없이 진지하고 위대한 우리 선조들, 그것도 유교 사회의 결정판이었던 조선 왕조 이야기가 ‘엽기’적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기 위해선 ‘상상력’이 필요하다. 조선왕조실록이 ‘엽기’스러울 수 있다는 상상력 말이다. 조선 시대를 단지 오래된 옛날 이야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쯤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이 책을 읽지 마라! 너무도 ‘황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읽는 게 좋을 지도 모르겠다. 편협한 역사관을 조금은 바꿔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선조들이 ‘인간’으로 느껴질 것이다.


 

역사에 대한 ‘권위’를 해체하는 작업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을 잘 알 것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나는 인문학이 위기에 봉착한 이유가 인문학이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일반인들이 역사라는 학문에 접근하는 방법은 기껏해야 ‘책’이다(굳이 하나 더 있다면 사극). 그런데 기존의 역사 관련 서적은 어렵다. 아무나 감히 ‘들이대지 못하는’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역사가 얼마나 어려운 건데 니들이 감히 알려고 들어!??” 닳고 닳아 별 새로울 것도 없는 조선왕조실록이 ‘엽기’라는 이름을 달고 주목을 받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책에는 기존의 권위가 없다. 명나라 장군 진유격 앞에 굽신거리는 조선왕 선조에게 ‘권위’를 찾을 수 있는가? 내전 궁녀와 대식(對食:동성애) 행위를 한 문종의 세자빈에게서는? 10살 때부터 웃어른과 맞담배를 피우는 우리 선조들에게는? 3인 1조로 과거 시험을 보며 온갖 컨닝을 다하는 양반 자제들에게는? 그들에게 권위란 없다. 저자는 역사를 어렵게 만들던, 역사 위에 덮혀진 권위라는 두터운 껍질을 해체하는 작업을 이 책을 통해 시도한 것이다.


 

백성의 삶과 하나 되어 완성되는 조선왕조실록

기존 역사 서술의 단점은 ‘권위’ 말고도 하나 더 있다. 왕조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는 것이다. 영웅주의 역사관에 입각한 역사서들 속에 민중, 일반 백성은 없다. 백성은 역사에서 곁가지 일 뿐이고, 기존의 역사서에는 “그래서 농민은 힘들었다.”라는 내용 밖에 없다. 그러나 엽기조선왕조실록은 민중의 비중을 반 이상으로 늘려버린다.(민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역사 서술 방식은 이 저자의 다른 저서인 ‘엽기 조선풍속사’에서 기대해보겠다.) 신문고를 치고 매를 맞은 억울한 청년의 이야기, 서당에서 성교육을 배우는 서민 자제들, 양반 족보를 위조하려는 상인들 등등 더 이상 조선왕조실록에서 백성은 곁가지가 아니다. 조선왕조의 역사는 그들의 역사, 그들을 위한 역사다.


 

역사도 재밌을 수 있을까? 나는 이 책을 읽고 기꺼이 “네”라고 대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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