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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노동당 기관지

교학사 교과서, 친일독재 미화를 넘은 반공주의 교과서

교학사 교과서가 대한민국역사전쟁의 중심에 있다. 야권과 진보진영은 이 교과서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한 ‘뉴라이트 교과서’라고 말한다. 민주당 의원들과 진보언론들은 교학사 교과서가 제대로 다루지 않은 부분들을 찾아내 ‘역시 친일독재미화 교과서’라고 비판한다. 반면 교학사 교과서를 지지하는 보수 세력은 오히려 기존 교과서가 좌편향 됐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우리가 교학사 교과서에서 발견해야 할 것은 ‘친일을 친일이라 말하지 못하는’, ‘독재에 대한 비판이 없는’ 부분 부분의 구절이 아니라, 교과서 전체에 흐르는 하나의 기조다. 그것은 ‘반공주의’와 ‘체제수호’다. 교학사 교과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반공주의로 가득 차 있고, 대한민국의 역사가 반공주의에 맞서서 어떻게 승리해왔는지 서술하고 있다.

독재도 정당화하는 마법의 칼, 반공

대한민국 민중들에게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등 독재정권은 ‘아픈 역사’다. 하지만 교학사 교과서는 세간의 비판처럼 독재를 ‘정당화’하고, 독재정권이 짓밟은 민중들의 희생을 ‘어쩔 수 없는 것’ 정도로 치부한다. 그 이유는 반공주의다. 이승만에 대해 서술한 부분을 보자.

이승만이 공산주의의 도전을 받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국회는 국가보안법을 통과시켰다. 정부는 국군 내의 좌익세력을 정리하였다. 이러한 국군 정비가 6.25전쟁에 대처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공산주의 세력이 농민층에 침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농민들의 염원이었던 농지개혁을 실시하였다

이승만 정권이 행한 다양한 형태의 탄압, 국가보안법과 군대 내 빨갱이 척결 등은 공산주의의 도전이라는 명분 앞에 정당화된다. 심지어 농지개혁조차 공산주의 세력이 농민층에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정책이었다. 교학사 교과서는 6.25 전쟁 중 이승만 정권이 민간인을 대량 학살한 보도연맹 사건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할까?

남한에서도 민간인들에 대하여 살상이 일어났다. 대표적인 사례가 보도연맹 사건이다. 보도연맹은 좌익에 가담했던 사람들을 보호하고 지도하기 위하여 조직한 단체이다. 그러나 북한군이 남침하자 이들이 북한에 협조할지 모른다는 의구심 때문에 이들을 처형하였다. 대전 형무소에 감금되었던 보도연맹원 3,500여명이 처형당하기도 하였다.

이 부분에서 이승만 정권의 책임이라곤 눈 씻고 찾아도 없다. 오히려 ‘북한군에 협조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라는, 반공주의 정권의 논리를 그대로 전달해준다. 이 뿐만이 아니다. 교학사 교과서는 이승만 정권 시기 또 다른 민간인 학살, 제주 4.3 학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4월 3일 남로당 주도로 총선거에 반대하는 봉기를 일으켜 경찰서와 고용기관을 습격하였다. 이때 많은 경찰들도 우익인사들이 살해당하였다. 사건을 수습하는 괴정에서는 무고한 양민의 희생도 초래되었다.

4.3사건에 대한 설명은 이게 전부다. 공산주의 세력이 폭동을 일으키고 많은 경찰과 우익인사들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고,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도 희생되었다는 식이다. 독재정권이 빨갱이 색출을 명분으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이 교과서만 읽고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박정희 정부에 대해 서술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교학사 교과서는 4.19 이후 국내 상황이 매우 혼란스러웠고, 공산주의 세력의 도전을 받는 상황에서 국내 정치세력들이 무능했으며 이를 수습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서술한다. 교학사 교과서 저자들 머릿속에 뭐가 들었기에 독재를 이렇게 설명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미디어오늘 조윤호 기자가 교학사 교과서 대표 저자인 이명희 현대사학회 회장(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과 진행한 인터뷰를 참조하자.

- 박정희 정권을 미화하는 등 독재를 정당화했다는 비판도 있다.

우리 교과서가 추구하는 가치는 자유민주주의다. 자유민주주의를 기본가치로 전제하는 교과서가 독재를 미화하고 정당화한다니 말이 안 된다.

- 박정희 정권에 대해 서술할 때 그 당시 상황 때문에 독재가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서술한 건 사실 아닌가.

역사서술을 하면서 그 당시를 해석하고 평가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광복 이후 한반도에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세력이 있었다.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때 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그래서 반공이 국시였다. 이 부분을 설명하면서, 박정희 정권이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수호한 측면이 있다고 서술자가 평가한 것이다. 혹자들은 이러한 해석에 대해 독재를 미화한다고 평가한다.

이승만․박정희 정권은 자유민주주의 세력에 반하는 공산주의와 맞섰고, 대한민국을 수호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교학사 교과서 저자들이 알고 있는 ‘민주주의’와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가 다른 뜻인 것 같다.

목적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체제 수호’

그렇다면 남로당도 없었고 공산주의 북한의 위협도 약해졌던 전두환 정권의 독재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까? 교학사 교과서가 5.18에 대해 어떻게 서술하는지 살펴보자.

5월 18일 광주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의 시위가 일어났다. 하지만 진압군이 투입되면서 대규모 시위로 번지게 되었다. 충돌은 유혈화 되었고 시위대의 일부가 무장을 하고 도청을 점거하였다. 5월 27일 계엄 사령부는 계엄군을 광주에 진입시켜 광주를 장악하였다. 이 과정에서 희생자가 많이 발생하였다.

교학사 교과서가 5.18에 대해 설명하는 건 이게 전부다. 5.18로 인해 어떤 피해가 있었고, 진압군이 어떤 학살을 벌였는지에 대해 사진 한 장도 없이 시위가 일어나 진압군이 진압하다 ‘희생자가 많이 발생했다’는 설명이 끝이다. 이명희 교수의 인터뷰 내용을 다시 한 번 참조하자.

- 지배층이 민주주의에 기여한 것이 무엇이 있나.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산업화가 필요하고 중산층이 형성되어야 한다. 민주화된 국민들도 있어야 한다. 이는 그 시대를 주도해왔던 지배층이 한 일이다. 또한 지배층에서 주체적인 노력을 했다. 일부교과서는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김대중 정부라고 말하는데,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는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넘어갈 때 이루어졌다. 세계의 독재역사에서 드문 경우다. 민주화운동에 대해 민중의 노력만 서술해서는 안 된다. 신군부나 지배세력이 민중의 요구를 수용한 부분이 있다. 독재를 하긴 했지만 근대민주주의의 가치 이런 것들을 배운 사람들이고 그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 반대편에서는 독재를 옹호한다고 말할 것 같은데.

우리 세상이 자유롭지 못한 거다. 이 문제에 대해 너무 정서적으로 접근한다.

정리해보자. 교학사 교과서가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란 우리가 생각하는 ‘자신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진다’는 의미의 민주주의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란 곧 대한민국이며,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의미는 대한민국을 지킨다는 의미이다. 즉 이들이 수호하고자 하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체제다. 그래서 박정희나 이승만도 독재자지만 체제를 수호했으니 높게 평가받아야 하며, 이 과정에서 자행된 희생들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교과서 거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북한에서는 조선 노동당이 공산주의적 독재체제로 지배했으므로 반대세력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특정 정당이 북한과 같은 독재 권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자유선거와 정권의 교체가 그러한 방식의 통치를 불가능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상식을 뒤집는 설명이다. 반대세력을 용납하지 않은 건 대한민국도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우리가 배운 독재의 역사는 다 무엇인가. 교학사 교과서는 이런 서술을 통해, 반공주의에 맞선 대한민국이 역사적으로 승리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책의 맨 끝 부분에는 남북한 체제 경쟁의 결과 한국이 무역총액, 경제성장 및 총소득 등 북한보다 훨씬 앞서고 있다고 말한다. 북한은 완전 망해 가는데 한국은 경제도 성장하고 잘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생존을 위해, 체제수호를 위해 약간의 희생이 있었던 것뿐이다.

교학사 교과서가 무서운 이유는 단지 이들이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기 때문이 아니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게 나쁘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교학사 교과서에 흐르는 논리, 체제 수호를 위해 민주주의 원칙이든 무엇이든 짓밟을 수 있고 반공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누구든 탄압할 수 있다는 그 논리다. 이것이 우리가 교학사 교과서를 비판해야 하는 진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