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과거 글/노동당 기관지

안철수와 민주당의 야(권통)합, “꺼져라 새정치”

새정치를 주장하던 안철수가 독자노선에서 ‘철수’하고 민주당과의 ‘한 길’을 선택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대표는 지난 3월 2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양측은 가장 이른 시일 내에 새정치를 위한 신당 창당으로 통합을 추진하고, 이를 바탕으로 2017년 정권교체를 실현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지도부와 새정치연합 지도부도 알지 못할 정도로 ‘전격적인’ 통합 선언이었다.

통합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당은 정치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서로 힘을 합칠 수도 있고 갈라질 수도 있다. 문제는 안철수가 ‘새정치’를 주장해왔다는 것이다. 김한길과 안철수의 통합을 새정치의 모습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을까? 아마 놀란 사람은 많겠지만 말이다. 우리에게 그들의 통합 선언은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이다. 당 지도부 몇몇의 밀실 합의에 의해 서로 다른 당이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은 안철수가 ‘구태정치’라고 부르던 바로 그 모습이다.

준비에 준비를 거듭한 새정치, 결론은 민주당?

통합의 여파는 내부에서 먼저 터져 나왔다. 김성식 새정치연합 공동위원장은 통합신당에 합류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고 윤여준 공동위원단 단장도 격한 어조로 안철수를 비판했다. 당 지도부도 몰랐다면 도대체 합당은 누가 주도한 것일까? 김광진 민주당 의원도 “언제부터 민주당이 당 대표 1인에게 당 해산, 합당, 신당 창당의 권한을 줬느냐”며 “이런 중차대한 일을 당원, 의원단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기자회견 5분 전에 ‘미리 상의하지 못해 양해를 구한다’는 문자하나 달랑 보내고 끝낼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안철수와 새정치연합 지지자들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말을 번복하는 ‘구태정치’를 저질렀다. 새정치연합 측 인사들은 언론에 나올 때마다 ‘야권연대는 없다’ ‘독자생존 하겠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자신도 그동안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치고 박고 싸울 때마다 ‘둘 다 구태정치’라며 싸잡아 비판했다. 연대의 대상도 아니고, 구태정치를 주도하던 세력과 갑자기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오죽하면 “새정치는 새누리당에 반대하는 정치” “새정치는 주변 사람 ‘새’로 만드는 정치”라는 조롱까지 나왔을까.

혹자들은 정치세력이 이합집산을 통해 정치적 이익을 얻으면 좋은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3월 3일 SBS <한수진의 전망대>에 출연해 “절차상의 하자가 분명히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정당의 통합은 결과적으로 국민이 바라는 대로, 또 당원들이 바라는 대로 잘 되면 그러한 절차상의 하자 문제는 뛰어넘는 것이 보통의 관례”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통합이 서로에게 좋다는 뜻이다. 맞는 말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야권을 하나로 모아 새누리당과 한 판 붙어볼 수 있게 되었으니 좋고, 새정치연합 입장에서는 지지율이 갈수록 떨어지는 와중에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에서도 일정 부분 벗어날 수 있게 되었으니 둘 다 윈윈이다.

문제는 새정치연합이 그간 이런 식의 이합집산을 ‘구태정치’로 규정해왔다는 것이다. 그간 안철수와 새정치세력은 정치공학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고고한 선비 코스프레를 하지 않았나? 애초에 안철수가 대선후보로 급부상한 이유도 서울시장 지지율 50%의 안철수가 지지율 5%의 박원순에게 조건 없이 양보한 모습 때문 아니었나.

구태정치에 기생한 새정치, 결국 구태정치와 통합하다

하지만 “우리를 배신하다니!”라며 순진하게 안철수를 손가락질하고 싶지는 않다. 안철수가 민주당과 힘을 합친 것은 결국 힘도 실체도 없는 모호한 새정치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운명이기 때문이다. 안철수의 새정치는 늘 ‘구태정치’에 기생해왔다. 민주당과 새누리당이 무언가 잘못을 하면 그건 구태정치라고 비난하면서 살아남는 식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두 가지 있다. 안철수는 대선 후보 시절 국회의원 정수 축소, 정당 국고보조금 감액, 중앙당 폐지 등의 공약을 내놓았다. 국회의원들이 구태정치를 일삼고 있으니 수를 줄여버리고, 받는 돈도 줄이고, 중앙당도 없애버리겠다는 발상이다. 민주주의의 ‘대표성’의 원리를 무시하는 행동이자, 국민들의 국회의원들에 대한 통속적인 비난(“저것들 세금 도둑이야!” 등)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실행에 옮긴 무책임한 정책이었다. 이렇다 할 이념이 없으면서 ‘국민의 뜻’만 주구장창 들먹이던 사람들이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사례는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다.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대표는 통합발표문을 통해 기초선거 정당공천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마도 그것은 안철수가 민주당과의 통합을 받아들인 조건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기초선거에서 정당공천을 폐지하는 것이 과연 새정치일까? “이건 구태정치니까 없애버리자. 이것이 새정치”라는 식의 발상이 아닐까? 기초선거 정당공천이 문제라면 아예 광역 의회도 정당공천 없애고, 새누리당도 민주당도 해산하고 모든 국회의원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건 어떨까. 아니, 그렇게 정당정치의 폐단을 주장하면서 왜 본인들은 새정치연합이라는 당을 만들고, 민주당이라는 거대정당 안으로 들어간 걸까.

구태정치에 기생해 목숨을 부지하던 새정치는 결국 자신들이 구태정치로 규정한 민주당과 힘을 합쳐 생존하기로 결정했다. 새정치세력의 답은 ‘민주당 안에서 새정치를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간 새누리당과 민주당 안에서 ‘새정치’를 주장하던 세력들, 개혁세력은 왜 모두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변화시키지 못했을까? 아, 그들은 진짜 새정치가 아니고 구태정치여서 그런 건가?

꺼져라 새정치! 이리와라 진보정치!

이제 우리는 새정치라는 말을 버려야한다. 재벌 정주영도 여의도정치를 비난하며 새정치를 주창했고, 문국현도 새정치를 주장했다. 노무현의 ‘지역주의 반대’도 새정치였으며 이명박의 ‘CEO 리더십’도 새정치였고, 박근혜의 ‘국민대통합’도 새정치다. 한국은 10년 째, 아니 20년째 새정치 타령을 하고 있다.

우리는 새정치 대신 진보정치를 바로 세워야 한다. 이제 오른쪽에 새누리당이, 그리고 오른쪽과 중간에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만들 통합신당이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비어버린 왼쪽을 과연 어떻게, 누가 채울 것인가. 그리고 왼쪽에 외롭게 서서 깃발을 흔들고 있는 이들을 윽박지르며 오른쪽으로 오라고 외치는 정치세력에 맞서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독자노선을 주장하던 안철수와 새정치세력은 결국 민주당과 힘을 합치기로 결정했다. 안철수는 이제 보수양당 구도를 어떻게 깨뜨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덜었다. 이제 민주당 안에서 민주당을 어떻게 변화시킬지를 고민할 것이다. 안철수가 포기한 독자노선은 진보정치에게는 여전히 숙제다. 오염된 새정치 대신 홀로 살아남아 보수 세력이 대안이 되어야 한다. 안철수가 시도하는 ‘민주당이랑 같이 잘해보기’, 진보정치는 이미 할 만큼 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