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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노동당 기관지

서울대병원 파업, ‘공익성’에는 관심 없는 언론들

6년 만에 파업에 돌입했던 서울대병원 노동조합(민주노총 의료연대지부 서울대병원분회)이 지난 11월 5일 오전 5시부터 업무에 복귀했다. 노조가 10월 24일 파업에 돌입했으니 12일 만에 노사가 합의에 도달한 것이다. 노조의 요구는 △의사성과급 폐지 및 적정의료시간 보장 △비정규직 정규화 및 병원 인력 충원 △임금 인상(20만 9천원 인상) △ 어린이환자 식사 직영 등이었다.

국공립병원인 서울대병원의 파업은 매우 큰 소식이었기에 대부분의 언론이 파업 소식을 주요하게 다뤘다. 하지만 언론은 파업의 본질을 전하기보다 현상 그 자체에만 주목하면서, ‘공공의 이익’을 근거로 ‘사익을 위한 파업’을 비난하는 전형적인 태도를 또 다시 반복했다.

‘의료공공성’ 간데없고 ‘환자불편’만 나부껴

파업 첫 날인 24일 주요 아침신문과 방송뉴스를 보자. 대다수 언론은 노조의 파업으로 인해 발생한 ‘현상’을 스케치했다. 노조 조합원들이 서울대병원 1층 로비 한 편에서 파업 집회를 벌이면서 병원 로비가 소란스럽고 북적거렸다는 소식과, 400여명의 조합원들이 일손을 놓게 돼 환자들이 불편을 겪었다는 소식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파업으로 인해 환자들이 불안해한다는 소식도 전했다.

“서울대병원 노조 6년만에 총파업…진료 차질 환자 불편”(MBC)

“서울대병원 노조 전면 파업…일부 환자 불편”(KBS)

“서울대병원 노조 파업 이틀째…환자 불편 우려”(SBS)

“'서울대병원 파업' 노사 입장차에 환자만 불편”(YTN)

“서울대병원 진료파행 환자가 무슨 죄”(세계일보)

“서울대병원 6년 만에 파업 환자들 ”진료 못 받나“ 발 동동”(동아일보)

“‘의료공백 현실화’ 발 구르는 환자들”(국민일보)

“본관 로비 점거농성 또 환자만 골병”(서울신문)

“병원인지 농성장인지 환자가 볼모인가”(한국경제)

“서울대병원 노조 또 환자볼모 파업”(매일경제)

물론 병원 노동자들의 파업 때문에 환자들이 불편을 겪는 것은 사실이다. 다른 사업장과 달리 병원은 사람의 생명이 결정되는 곳이다. 언론이라면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전해야 한다. 환자들의 불만과 진료 지연은 일정 부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은 현상 그 자체를 넘어 현상의 본질을 고민해야 한다. 병원이 파업을 하면 환자를 볼모로 삼는다는 엄청난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병원 노동자들이 몰랐을까? 왜 그들은 그런 비난을 감수하면서 일손을 놓게 된 것일까.

이 지점에서 언론들이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서울대병원 노조의 요구는 임금인상이 다가 아니다. 이들은 국립대 병원인 서울대병원이 의료공공성을 강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 의사성과급제를 폐지하고 환자들에게 적정 의료시간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대병원이 검사건수에 따라 수당을 받는 의사성과급제를 도입한 이후 의사들이 환자 한 명 한 명을 제대로 진료하기보다 검사 건수를 늘리는 데 주력해왔고, 이에 따라 ‘1분 진료’가 관행처럼 굳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환자들이 100% 부담하는 선택진료비로 의사들에게 진료수당을 지급하므로 의사성과급제로 인해 환자 부담이 늘어났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동시에 의사성과급제로 인해 병원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 및 강도가 늘어났다. 병원 노동자들은 의사들이 검사 건수를 늘리기 위해 환자를 많이 받으면서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게 됐다고 증언한다. 요약하면, 서울대병원이 ‘돈벌이진료’를 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환자와 노동자 모두가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의료공공성 외치는 데 왜 환자와 관계없나

하지만 대다수 언론은 의료공공성에 주목하지 않았다. 노조의 요구 중에 환자들의 이해관계와 관계된 부분이 있는데도 그 부분에 대해 다루기보단 노조의 요구와 환자들의 이해관계가 별개라는 태도를 견지한 것이다. 파이낸셜뉴스는 “환자는 없는 그들만의 구호”라며 노조를 비판했는데, 의료공공성을 외치는 것이 왜 환자와 관계없는 요구인 걸까.

노동자와 환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면은 또 있다. 노조는 ‘어린이병원 급식 직영’을 요구한다. 급식이 직영이 되면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좀 더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자들에게 좋다. 나아가 어린이환자 급식을 외부 위탁하면 병원의 일상적인 관리가 어렵고 문제가 발생해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다는 점에서 급식직영은 환자들에게도 좋다.

하지만 이 사실은 주요 아침신문과 방송뉴스를 통해 알려지지 않았다. 조선일보, 한국경제, 파이낸셜뉴스. 동아일보, YTN 등은 파업 때문에 환자들이 1회용 도구로 식사를 하는 불편함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환자들이 불편함을 겪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환자들을 그렇게나 끔찍이 아끼는 언론들은 왜 급식 직영문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은 걸까?

실제로 지금 서울대병원에서 시행되는 2인실 병실료 인하 및 TV무료 시청, 보호자를 위한 장의자 설치, 다인실 병실 증대 및 의료급여환자에 대한 선택진료비 전액 감면, 야간주차비 천원으로 인하 등은 노조의 요구로 인해 일어난 변화다. 2004년 파업 때 서울대병원 노조는 병실료 인하, 선택진료제 폐지, 입원환자의 무료 주차시설 이용 등을 요구했고 2007년 파업 때도 2인실 병실료 인하와 보험적용 병실 확대 및 선택진료제 폐지 등을 요구했다.

파업을 바라보는 언론의 시각

서울대병원 파업을 바라보는 이러한 시각은 언론이(특히 보수언론)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투쟁소식을 전할 때 갖는 일반적인 관점이다. 언론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시청자 권리’가 침해당한다고 말하고, 교사들이 거리투쟁을 하면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당한다고 말하고, 철도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시민들의 교통권’이 침해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와 ‘공공의 가치’가 연관되는 경우도 많다. 언론노동자들의 파업은 공정방송을, 교사들의 거리투쟁은 참교육을, 철도노동자들의 파업은 철도공공성을 주장한다. 언론의 역할이 사회의 공공성을 증진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부분에도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서울대병원 파업 첫째 날, 한 조합원이 파업 현장을 찍고 있는 카메라들을 보며 “잘 좀 보도해주세요”라며 “어제는 이상하게 나가서…”라고 말을 흘렸다. 그 말이 계속 머리를 맴돈다. 그 조합원은 서울대병원 파업을 둘러싼 언론보도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