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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노동당 기관지

청와대 진돗개와 다를 바 없는 청와대 기자들

'불통' 논란에 시달리던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월 6일 취임 첫 기자회견을 가졌지만 '소통'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반대세력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불통의 의지를 다시 한 번 다지는 자리였다. 박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진정한 소통이 무엇인가, 한번 생각해볼 필요 있다”며 “소통의 의미가 단순한 기계적 만남이라든지 국민 이익에 반하는 주장이라도 적당히 수용하거나 타협하는 것이 소통이냐, 그것은 소통이 아니라고 생각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과거 불법으로 떼쓰면 적당히 받아들이곤 했는데, 이런 비정상적 관행을 적당히 대응하는 것을 소통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주연 박근혜, 조연 기자들, 연출 및 각본 청와대. 기자회견이 아니라 쇼

이번 기자회견의 유일한 성과는 박근혜 대통령이 불통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명백해졌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소통을 한답시고 기자회견 후 질의응답을 진행했지만 질문은 사전에 기획된 것이었다. 질문자도 청와대 기자단 내에서 사전에 조율됐다. 그래서 사전에 합의한 대로 연합뉴스-MBC-동아일보-매일경제-대구일보-뉴데일리-채널A-세계일보-중부일보-YTN 기자들과 외신 로이터, CCTV가 박 대통령에게 질문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것으로 예상됐던 진보성향의 언론들은 없었다.

미리 정해진 질문지 탓에 즉석에서 나오는 대통령의 진솔한 말은 들을 수 없었고, 추가질문이 없으니 박 대통령의 답변 이후 기자가 다시 반박할 기회조차 없었다. 교과서 논란에 대해 묻자 '좌편향 교과서'에 대해 대답하며 본질을 흐렸는데도 기자는 가만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국정원 사건과 특검에 대해 묻자 '여야가 잘' '여기서 말하기 적절하지 않다'며 사실상 질문을 뭉개버렸는데도 반박할 수 없었다. 한 청와대 출입기자는 “기자회견 전, 이정현 홍보수석이 따로 얘기 한 것은 없었지만 질문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추가질문은 없는 걸로 알고 있었다”며 “추가질문은 애초에 가능성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이정현 수석은 계속 '질문자는 손을 들라'고 요구했다. 한 청와대 출입기자는 “혹시나 해서 매번 손을 들었지만 우릴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주연 박근혜 대통령, 조연 청와대 기자들, 연출 및 각본 청와대. 기자회견이 아니라 완벽한 '쇼'였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면 기자들과 대통령이 설전을 벌이는 다른 나라의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퇴근 후 뭐하냐"…언론은 대통령의 '불통'을 탓할 자격이 없다

이런 쇼의 가장 일차적인 책임은 연출 및 각본을 짠 청와대다. 하지만 몇몇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이 불통이라고 말할 자격도 없다. 질문 기회가 왔는데도 홍보성 질문으로 기회를 날렸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거의 한 시간동안 취임 소회와 앞으로의 포부를 이야기했는데 연합뉴스 기자는 첫 번째 질문에서 “취임 1년 소회와 앞으로의 각오”에 대해 다시 질문했다. 제대로 못 들었으면 나중에 녹취록을 재생하던지, 이건 국민의 알 권리 침해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하나마나한 소리를 다시 반복했다.

더욱 가관인 건 채널A 기자의 질문이다. 채널A 기자는 박 대통령에게 "퇴근 후 뭐하시냐"는 질문을 던졌다. 본인이 기자인지 힐링캠프 진행자인지 헷갈리는 모양이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기르는 진돗개 이야기를 꺼냈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교학사 교과서, 철도파업 등 민감한 이슈들이 산적해 있는데 국민들은 진돗개 이야기나 들어야했다. 채널A와 동아일보는 기자회견 후 논평과 사설을 통해 “이번 기자회견으로 불통 논란이 사라졌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맞다, 그리고 당신들도 그에 일조했다.

하지만 가장 활약한 기자는 MBN 김은미 기자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청와대 춘추관 기자실에 들러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 때 김은미 MBN 기자가 박 대통령에게 "너무 안고 싶었어요"라고 말하고, 박 대통령은 "남자 분들이 차별한다고 그래요"라고 받아쳤다. 결국 김 기자는 소원대로 박 대통령과 포옹을 했다. 박 대통령이 김은미 기자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정도로 둘은 친분이 깊다. 아무리 그랬어도, 박 대통령이 먼저 포옹을 청한 것도 아닌데 먼저 가서 '너무 안고 싶었어요'라고 말해야 했을까. MBN과 같은 계열의 언론사인 매일경제는 이걸 또 자랑이랍시고 기사로 썼다가 양심에 찔렸는지 삭제했다. 이 사실을 미디어오늘이 보도한 이후 김은미 기자가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다.

김은미 기자와 박 대통령의 관계가 현재 언론과 정권의 관계가 아닐까. 물론 청와대가 기획한 '쇼'였지만 청와대 출입기자들도 그에 동참했다. 질문이 사전 조율되는 것에 대해 집단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돌발질문이라도 던져 국민이 궁금해 하는 질문을 던졌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기자회견은 생중계였다. 하다못해 이명박 정부 때 임명된 낙하산 사장에 반대하며 해직당한 선배 후배 동료 기자들의 복직에 대해서라도 물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날의 기자회견은 언론이 장악당한 대한민국의 한 단면이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사측이나 데스크가 보낸다. 사측이나 데스크가 대부분 친정권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청와대 이야기를 받아쓰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정권에 부담되는 이슈를 가지고 날카로운 질문을 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박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퇴근 후 진돗개 새롬이‧희망이를 돌본다고 말했다. 현재 주류언론이 박 대통령의 보살핌을 받는 새롬이, 희망이와 다른 게 무엇일까? 기자가 질문을 못하는 나라에서는 새로움도, 희망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