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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단상

아시아적 가치는 없다.

아시아적 가치라는 말이 있다.
흔히 유교적 가치라고도 불리는.

이 말을 함부로 남용하는 게 얼마나 생각없는 짓인지를 밝혀두고자 한다.


첫 번째, 아시아적 가치라는 말은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다.
흔히 서구인들이 아시아의 눈부신 경제성장의 원인으로 지적한 유교적 가치는
서구인들의 경쟁, 효율과 대비대는 가족주의, 협동, 효孝 충忠 등으로 대표된다.
그리고 마치 유교가 그러한 가치들의 총집합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수없이 많은 비주류적 유림儒林들을 철저히 무시하는 행위다.
유교는 물론 인의예지를 중요시하며 물질보다는 정신을 그리고 협동을 강조하는 윤리철학이다.
그러나 유교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러한 식으로 진행되었는가?
유학자들 중에는 국가를 없애자고 주장한 무정부주의자도 있었고 왕조를 없애자고 주장한 평등주의자도 있었다.

조선의 유학자들만 살펴보자.
유교적 좌파라 불리는 황종희를 기존의 유교가치로 해석할 수 있을까?
개혁과 개방을 주창하고 기존의 관습들을 해학과 풍자로 틀어버린 연암 박지원을 기존의 유교가치로 어떻게 해석할 건가?
주류 성리학에 끈임없이 도전했던 양명학, 성리학적 가치를 고수하라고 외친 조선 유학자들에게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라고 말한 정제두를 유학의 가치로 해석할 수 있을까?

이는 지나친 일반화의 결과이며, 그 주류가치에 끈임없이 도전했던 유학자들을 철저히 역사에서 배제하는 짓이며, 그러한 가치에 일반 조선민중이 동의하고 이에 불만이 없었을 거란, 지극히 지배계층 중심의 역사관이다. 유교적 가치란, 없다.

두 번째, 유교적 가치는 오리엔탈리즘의 발현이다.
서구유럽은 유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답을 스스로 내놓지 못했다.

왜냐면, 유럽은 15세기까지 세계역사의 변두리였으며 통일된 가치나 공동체가 없는 야만족(그들의 표현대로 하자면)이었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15세기까지 그들에게 역사도 가치도 민족도 제대로 된 국가도 없었다.

그렇기에 유럽은 누군가와의 비교를 통해 자신들의 우월성을 입증하고자 했다. 그 대상은 바로 "전근대"적이며 "무능"하고 "스스로 개혁할 능력이 없으며" "미개하고 야만적"인 아시아와 동양이었고 그에 비해 자신들은 "근대적"이며 "스스로 개혁할 수 있고" "우월"한 유럽이었다.

유럽의 우월감이 증대될수록, 그리고 실제로 유럽이 세계를 지배해갈수록 상대적으로 유럽이 동양을 바라보는 시각, 오리엔탈리즘은 점점 더 확대되어갔다. 그리고 그 오리엔탈리즘은 철저히 "마이너스"적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현상들은 이러한 유럽의 설명을 뒷받침해주지 못했다.
일본은 유럽이 그렇게 두려워했던 러시아를 박살냈고(러일전쟁) 세계의 major power가 되었고
중국은 미군을 38선 밖으로 몰아내고 미국과 대등하게 협상했으며(한국전쟁)
아시아의 네마리 용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일궈냈다.

그러자 유럽은 이를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아! 유럽이 그동안 미개하다고 생각했던 비효율성과 가족주의 윤리, 국가주의 윤리가 경제성장의 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그동안 마이너스적이던 오리엔탈리즘이 플러스적으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
즉, 유럽의 아시아에 대한 편견은 그대로인 것이다.
아시아, 동양은 서양과 달리 전근대적이며 효율적이지 못하고 집단주의적이다.

이러한 가치가 아시아를 세계변두리에 있느냐, 세계중심에 있느냐에 따라 부정적, 긍정적으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 유럽의 아시아에 대한 시각은 그대로인채. 서양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구별짓기'는 여전한 상태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아시아에서 부정적으로 보이는 현상들이 등장한다면 그 플러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이너스로 변화할 거다.

중국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비민주적"이라고 떠드는 서양 언론과 일부 학자들, 정치인들.
민주주의가 절대적으로 우월한 가치인가?
아니,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며 민주주의에도 수많은 결함이 있다.
그런데도 서양은, 특히 유럽우파들(기 소르망 같은 프랑스 우파가 대표적이다.)은 민주주의라는 잣대로 중국을 후진적으로 평가한다. 이는 실질적으로 세계중심이 되고 있는 중국에 대한 유럽의 견제라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중동과 남미, 아프리카의 "자원민족주의"를 비난하는 서양 언론들
유럽의 제국주의 시절 제3세계에 대한 자원 침탈을 기억한다면 그런 소리 못할거다.
비유럽의 자원을 침탈한 제국주의 유럽과 정치권력과 막대 자본을 이용해 자원을 헐값에 사들이는 메이저석유회사들이 자원민족주의를 유발한 가장 큰 원인은 아닌가?
그리고, 수많은 다국적기업들의 돈놀이에 석유 값이 급등하진 않았는가?

이 얼마나 자기 중심적이고도 오만한 논리인가.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우습게도 아시아인, 동양인들에게도 재생산되고 있다.


얼마 전 대한민국 국회에서 여야 간의 대립이 극에 달했을 때, 미디어법을 비롯한 MB악법(민주당이 말하길)이 통과되는 과정에 벌어진 "국회 전쟁"을 바라보는 서양의 시각은 어떠했는가?

나는 그 때 나온 타임지 표지를 보고 경악했다. 그 표지명은 "아시아에는 왜 민주주의가 안되는가"였다. 그 기사는, 왜 여야가 그렇게 대립하는지, 전혀 알지도 못한 채 그러한 분석은 어디에도 없은 채 아시아가 본질적으로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한국의 주류 언론들의 외신 배끼기는 이 때도 발동하였다.
조중동은 물론 진보 언론이라 스스로 칭하는 이들마저도 이러한 타임지의 가치관을 그대로 답습하여보도하더라. 참, 한심스러웠다.

아시아적 가치란 말 쓰지 마라.
아시아적 가치는 곧 오리엔탈리즘의 다른 말이다.
그리고 서양인도 아니고 동양인이 그 말을 이용하여 아시아를 해석하고 동양을 바라보는 건
오리엔탈리즘을 그대로 답습하고 재생산하는 한심한 짓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