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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단상

'비판적 지지론'이 안되는 이유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한 정권의 임기 중반에 시행되는 지방선거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번 6.2 지방선거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선거의 의미를 한 번 되씹어 보면, 즉 관전포인트를 되새김질해보면 대충 이렇게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1) 세종시 원안 vs 수정안 담론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

선거는 "쟁점 전쟁"이다. 하나의 담론을 지배하는 자와 그 담론에 반대하는 자의 적대적 대결이 선거의 기본 구도다. 탄핵 직후 치루어진 2004년의 선거는 친 탄핵 vs 반 탄핵의 대리전이었다. 그렇게 투표한 거 아니라고? 당신이 무슨 의도로 투표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결과가 어떻게 "반영"되는가는 당신의 의도와 별개의 문제다. 그것이 선거가 쟁점 전쟁, 담론 전쟁인 이유다.

이번 선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담론은, 아무래도 현재까지만 보아선, 세종시 현안일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는 일단 '선거의 여왕'답게, 야당이 가지고 있지 못한 (여당 내 세력이라는) '지위'의 유리함으로 담론의 한 축을 구성했다. 이제 세종시는 친박세력이 반대할 경우 하지 못하고 찬성할 경우 추진할 수 있는 현안이 되었다. 야당에게도 여당에게도 그들의 몸값은 드높아졌다. 이것이 바로 박근혜라는 여자가 사는 법이다. 참으로 시기적절했다. 세종시 반대라는 담론과 더불어 '신뢰'와 '소신'의 위치를 점유했다. 여당과 이명박 정권은 '국가의 미래'라는 무기를 들고 나타났는데, 즉 효율성이라는 무기를 들고 나타났는데, 그것이 "효율적이지 않다."가 아니라, 전혀 다른 종류의 무기인, "국민과의 약속"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힘으로 승부하는 선수 둘이 맞붙는다면, 힘이 쎈놈이 이긴다. 그런데 힘이 쎈 놈과 기술이 뛰어난 놈이 맞붙는다면? 즉, 장기가 다른 두 선수가 링 위에서 붙는다면? 누가 이길지 알 수가 없다. 박근혜는 경제대통령에게 경제로 맞붙지 않는다. 바로 신뢰와 소신이다. 이제 누가 이길지 모른다. 한마디로, "판 까봐야" 안다는 거다.

한 가지 더. 두 선수가 링 위에서 붙는다고 했을 때, 힘이 쎈 선수가 말한다. "내가 이겨야 여러분 모두가 좋습니다." 그런데, 그걸 잘 모르겠다는 거다. 과연 저 선수가 이겨야 나에게 좋을까? 입증된 것 하나가 없다. 그런데 반대편에 있는 기술 좋은 선수가 그 뒤에 있는 한 사람을 바라보며 말한다. "내가 지면, 당신은 반드시 망할 겁니다." 지금 형국이 그렇다. 이명박 정권은 국가의 미래를 내걸었고, 박근혜는 신뢰와 소신을 내걸었다. 그런데, "누구"를 위한 신뢰와 소신인가? 바로 그 한 사람. 이해관계가 직결되는 충청권. 적어도 세종시 수정안이 통과될 경우 충청권의 피해가 막심하다는 걸 아는 한, 그리고 원안을 통과시켜줄 대리인이 존재한다는 걸 안다는 안, 그들은 그 기술 좋은 놈을 "지지할 수 밖에" 없다. 이명박은 자신을 믿으면 모두가 잘 될거라고 말하고, 박근혜는 자신이 지면 한 놈이 죽을 거라고 말하는 거다. 누가 더 "적극적" 혹은 "격렬"하게 지지해줄까? 박근혜가 노린 건 이거다. 역시 선거의 여왕.

한 가지 변수가 더 있다. 세종시를 추진한, 이명박 정권을 대표해 세종시 수정안 추지를 밀어붙이는 정운찬 총리 해임안. 설 연휴에 승부를 보려는 야당의 승부수다. 이것이 역풍이 될 지 승리의 바람이 될 지는 더 지켜봐야할 것이다.

2) 친노 세력의 영향력

선거 운동이 한창일 5월 23일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이다. 선거 직전 일어날 "가변" 변수 중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다. 특히 국민참여당이 공식 창당했고 한명숙, 유시민 등이 빅 선거에 참여할 기세다. 그들이 진보정당들의 지지를 융합해 선거에 나올 것인가, 아니면 결국 민주당으로 붙어버릴 것인가. 그것이 가장 큰 변수다.

3)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심판

벌써 진보정당 간 대연합 이야기가 나온다. 슬프게도 보수대연합은 없는데 진보대연합은 매번 나오는 걸 보면, 진보가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맞나보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벌써 스스로를 중심으로 뭉치려는 시도를 하고, 심지어 홍세화 같은 사람에게 마저도 "비판적 지지론", 즉 현실적으로 한나라당의 독주를 막을 세력은 민주당 밖에 없으니 민주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하자는 이야기를 한다.

그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현실적" 대안을 원한다면, 차라리 박근혜를 지지하는 게 현실적이지 않은가! 더욱이 세종시 담론으로 선거가 이명박 vs 박근혜의 구도로 가는 데 말이다. 그건 차마 못하겠는가? 왜? 박근혜가 우파라서? 아, 그럼 "민주당"은 좌파라고 생각하시는가? 민주당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 연합할 의사가 있다고? 진정 그렇게 믿는다면 당신들은 역사와 경험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멍청이'임에 분명하다. 한나라당이 노무현을 물어뜯을 때 같은 당 내에서 그를 물어뜯던 세력들이 누군지 기억해보시길. 탄핵 당시 한나라당과 연합하여 과반수를 통과시킨 이들 이름하나하나를 언급하고, 그들이 지금의 민주당 안에 있다는 걸 굳이 이야기해야하는가?

또 뻘소리 하나."민주화 세력 연합론"이다. 한나라당이 반민주세력이니, 민주화 세력이 연합하여 민주화를 되찾자는 주장이 그것인데, 대한민국에 "민주화 세력"만큼 실체가 없는 세력도 없다. 누가 민주화 세력인가? 뉴라이트 수장 신지호도, 경기도지사, 우파 중의 우파 김문수도, 박근혜도 좌파라 일컷는 조갑제도 학생운동, 민주화운동 했었다! 대한민국에 민주화 세력이란 게 있는가, 없는가? 그딴 거 없다! 87년의 정서를 들먹여 투표해줄 386들도 뉴라이트로 빠졌거나, 노무현에 실망해 2007년엔 이명박을 찍었단 말이다. 제발 좀 변화에 민감해지시길. 새로운 시대에 그렇게 구닥다리여서야. 인터넷 시대와 청년들의 지지를 몰아치던 노무현 앞에 아직도 지역주의로 승리하려던 이회창이 패배했다.

그럼 새로운 분열 구도는 어떻게 짜여져야 하는가. 이 시대의 시대정신 신자유주의. 그것을 잠식한 것이 이명박이다. 천박한 경제중심주의!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결코 공존할 수 없다. 생계문제를 개인들에게 미뤄버리는 시대에 그 누가 정치문제에 신경쓴단 말인가! 그래서,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란 "반"민주주의다. 그렇기에 이 시대의 "민주화 세력"이란, 반신자유주의 세력이다. 그것이 진보정당의 과제이다. 왜 정치에 무관심하던 이들이 작년에 촛불을 들었을까? 그리고, 왜 그들은 촛불을 껐을까? 문제는 신자유주의야, 이 바보들아! 진정한 민주화 세력은 반신자유주의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것이 이명박을 물리칠 담론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명박은 물러나도, 다른 이명박이 돌아온다. 김규항의 표현을 빌린다면, "이명박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행복해질까?"

대답은 아니오다. 진보정당이 반이명박 만을 외친다면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정치에 참여했던 많은 시민들은 또다시 떨어져 나갈 것이고 환멸만 증대하여 결국 네오 이명박, 더 쎄고 더 강한 놈만 창출할 것이다. 잘 선택하시길. 스스로 몸을 깍지 않는 고통이 없다면 얻는 건 아무것도 없을테니까. 비판적 지지론 같은 거, 당장 집어치우시고. 모로 가면 서울로만 가면 된다. 그러나 그 서울이 여러분이 바라는 낙원이 아닐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