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글 /단상

나는 왜 촛불을 들었나

나는 지난 2008년의 여름, 뜨거웠던 대한민국의 가장 뜨거운 곳에 있었다.
나는 30번이 넘는 촛불집회에서 촛불을 들었고,
그 촛불은 대한민국의 밤거리를 비추었고 또한 내 양심을 비추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과연 왜 촛불을 들었는가?

내가 반미주의자이기 때문이었을까?
내가 김정일의 사주를 받아서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까?
내가 촛불을 든 이유는 단 하나, 대한민국 정부가 쇠고기 협상을 잘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쇠고기 협상과정, 그리고 정책홍보과정에서 크게 4가지 잘못을 했다.
그리고 그 4가지 잘못은 하나같이 국가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않은 것이었다.

첫 번째, 구체적 협상에서의 문제.
노무현 정부가 했던 쇠고기 협상과 이명박 정부가 했던 쇠고기 협상에서의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 바로 수입금지였던 SRM(특정위협물질) 7개 중 2개가 30개월 미만에 제한되어 수입 가능해졌다는 점, 그리고 광우병의 99%가 발견된다는 30개월 이상의 쇠고기의 수입이 금지되었던 반면에 이명박 정부에서는 사실상의 월령 제한이 폐지되었다는 점이다.

자, 정부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미국 소는 안전합니다! 수입해도 괜찮습니다."

오, 미안하지만. 중요한 건 안전이 아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쇠고기 협상을 함에 있어서 기존의 관례 대신 무언가 "더" 수입을 허용했다는 거다. 쉽게 말해서, 미국은 우리에게 있어서 "A"라는 권리 밖에 없었는데, "A+"라는 권리를 얻게 되었다는거다. 그런데, 우릴 뭘 얻었나?

외국의 상품을 수입한다는 건 단순히 먹을 만하니까 수입한다 라는 식으로 결정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국제관계다. 내가 기존에 있던 거 보다 무언가 더 내주었다면, 나도 무언갈 얻어야한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에게 무언가 더 내주고 뭘 얻었을까? 난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 결정은 단 며칠 만에,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 이후 급작스럽게 결정되었다. 이게 한국 정부가 잘못한 첫 번째다. 미국에게 더 내주긴 내줬는데, 뭘 얻었는지가 불명확하고, 또 무언가 우리 모르게 얻은 게 있다면, 그걸 제대로 홍보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미국 소가 안전하니까 수입해야한다고만 주장했다. 미안하지만, 안전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가 알고 싶은 건 "그렇게 더 내주고 뭘 얻었니?"이다.

두 번째, "국제 기준"의 문제.
한국 정부가 미국소가 안전하다고 주장하면서 내세운 가장 큰 근거는 미국이 국제수역사무국, OIE의 기준에 부합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제기준은 항상 최소한의 규정이다. 한국 정부는, 주권 국가로서 얼마든지 국제기준보다 수준높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일본, 캐나다, EU 등 모든 국가들이 실제로 OIE보다 높은 수입 안전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게 바로 국가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세계화된 시대, 불확실성의 시대 하에서 굉장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기에 세계화 시대의 국가의 역할은 그러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누그러뜨려주는 거다. 아, 우리는 이렇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안심하세요 국민 여러분!

그런데, 한국 정부는 최소한의 기준인 OIE 기준을 믿으라고 주장했다. 왜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지를 알아차리지도 못했고, 그냥 믿으라고만 했다. 국민들의 불안감을 없애려고 했으면, OIE 기준을 믿으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한국 정부가 국제기준보다 더 높은 국내기준을 적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어야한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그렇게 안했다. 그게 바로 한국 정부의 두 번째 잘못이다.

세 번째, 검역주권의 문제.
물론 상품과 서비스 교역이 급증하면 할수록 개별국가의 주권이 발휘될 영역은 점점 줄어든다. 쇠고기 역시, 한국 정부가 미국에서 수입하는 소들을 검역하기란 실질적으로 힘든 실정이다. 그런데, "사실상 힘든 것"과 "힘들다고요. 그냥 믿으라고요."는 엄연히 다른 문제다.

일본은 현재 2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을 수입하고 있다. 미국은 당연히 일본을 압박했다. 월령제한을 폐지하라는 거였다. 그 때 일본이 어떻게 대처했을까?

도쿄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나서서, 일본으로 수입되는 모든 미국소를 전수조사했고 그 결과 광우병으로 의심되는 물질 2개를 발견했다. 그리고 협상에 들고 나갔다. "너네. 이거 어떻게 할거야? 20개월 미만에도 의심물질 2개가 나왔어." 미국은 이러한 일본의 주장에 할 말을 잃었고 결국 일본은 계속 20개월 미만만 수입한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국민들은 불안해한다. 왜, 불확실성이 높아지니까. 그런 불안감은 자신들이 속해있는 국가의 주권이 발휘될 역량이 줄어들면서 더 높아진다. 한국 정부가 검역주권을 갖지 못하는 상태에서 미국소를 믿어야하니까 불안한거다. 그렇다면, 실제로 한국 정부가 미국의 도축장들을 모두 검역하지는 못하더라도, 일본 정도의 노력은 해야하는 거 아니었을까? 그럼으로서 국민들에게 한국 정부가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어야하는 거 아니었을까? 그냥 미국소는 안전합니다. 라고만 했어야할 문제였을까? 세계화 시대의 국가의 역할을 저버렸다. 그게 세 번째 실수였다.


네 번째, 가장 결정적인 실수.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수입을 중단할 수 없다.

이건 아무리 변호해주고 싶어도 변호해줄 수 없다. 다른 비난을 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다. 그냥 미친 거였다.

나는 이 네 가지 이유에서 정부를 비난했고 촛불을 들었다.
내 주장의 어느 부분에서라도 반미주의에서 비롯된 부분이 있을까?
또, 친북주의에서 비롯된 부분이 있을까?
내가 모르는 반미친북의 주장이 내 주장 안에 숨겨져 있다면, 알려주길 바랍니다. 무지한 저로써는 김정일의 음모도, 좌파세력들의 음모가 제 주장의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그들의 선동에 놀아날 만큼 내가 생각없이 충동적으로 촛불에 나간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그런데 김정일의 사주를 받았느니, 좌파의 선동에 놀아났느니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 기분이 나쁘다. 함부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내 양심을 비추고자 촛불을 든 거 뿐이다.

P.S 이명박OUT을 외친 이유

혹자들은 이명박OUT이 너무 심한 거 아니었냐고 묻는다. 다시 되묻겠다. 야당 정치인들이 수시로 내뱉는 "대통령은 물러나라. 장관은 퇴임하라."는 "정권퇴진운동"인가? 아니면 정치적 수사인가? 답은 후자일거다. 왜? 실질적으로 물러날 수도 없고, 물러날 리도 없고, 물러나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이명박 나가라는 이유, 철저히 정치적인 수사다. 정신차리라는 국민으로서의 경고였다. 그걸 정권에 대한 위협,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시도, 정권퇴진"운동"으로 보았다면 나로서는 매우 영광스럽다.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닌데, 대단하고 힘있고 영향력있는 외침으로 보아주었다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