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는 천천히 침몰…기업 살인죄 기소해야”
[서평]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박상은 / 사회운동 펴냄)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가 어느새 5달이 지났다. 많은 이들이 “잊지 않겠다”고 외쳤지만 어느 새 세월호 참사는 잊히고 있다. 사건 초기부터 세월호 참사의 본질 대신 유병언과 구원파에 집중했던 언론은 이제와서는 특별법을 둘러싼 여야 공방과 단식투쟁에 대응하는 ‘폭식투쟁’, '대리기사 폭행사건' 등으로 호도하고 있다. 이 같은 참사가 왜 발생했고 왜 300명이 넘는 생떼 같은 목숨이 죽어가야 했는지는 어느 새 잊혀졌다.
세월호 국민대책회의에서 안전대안팀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박상은씨가 집필한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15일 출간)에는 세월호 참사가 ‘정치적 쟁점’이 돼버린 현실 속에서 다시 세월호 참사의 본질을 찾고자 성찰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여객선의 선박 연령을 20년으로 계속 규제했다면 세월호는 한국에 못 들어오지 않았을까. 청해진해운이 승객을 더 태우기 위해 무리한 증축을 하지 않았다면? 화물을 과적하는 관행이 없었다면, 관리 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4월 16일의 비극은 없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세월호는 4월 16일 갑자기 침몰한 것이 아니다. 그동안 이어진 규제완화, 미흡한 운항관리, 과적을 묵인해 온 긴 시간동안 서서히 침몰했다.
이 책에는 과거 한국에서 벌어진 대형 사고들이 등장한다. 1953년 1월 전남 여수항에서 부산항으로 가던 여객선 창경호가 침몰해 300여명이 참변을 당했다. 창경호는 선령이 20년 넘은 낡은 배였고, 화물 적재중량 100톤이었던 배에 200톤이 넘는 화물이 실려 있었다. 1970년 12월, 제주도 서귀포를 출발해 부산항으로 향하던 남영호가 침몰해 326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적재중량이 130톤인 배에 540톤의 화물이 실려 있었고, 설계 부실로 배의 복원력에도 문제가 있었다.
1993년 10월 서해훼리호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221명이 정원인 배에 326명을 태웠고, 돌풍 속에 회항을 시도하면서 복원력을 상실한 배는 침몰했다. 이 사고로 292명이 사망했다. 20년 단위로 과적과 배의 복원력 상실로 인한 여객선 대형사고가 반복해서 일어났다.
여객선 사고가 벌어질 때마다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운항관리를 강화했지만 실제 업무는 해운조합에 일임됐고, 재정적자니 비용절감이니 하는 이유로 예산은 삭감, 규제는 완화됐다. 2009년 12월 연안여객 선사 및 선주에 대한 양벌규정이 완화됐다. 선박에 과적을 벌어졌을 경우 주의와 감독만 ‘일정하게’ 했으면 선사의 최고경영자나 실소유주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조항을 추가시켰다.
그리고 서해훼리호 사건 20년 뒤인 2014년 4월 16일 세월호도 침몰했다. 세월호는 평형수 1565.8톤을 전제로 화물을 최대 1077톤 실을 수 있는 배이지만, 2014년 4월 15일 세월호에는 2142톤의 화물이 실려 있었고 평형수는 762톤에 불과했다. 청해진해운은 대다수 선원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했으며, 안전교육을 위해 지출한 비용은 소화훈련 세 번과 교육비 54만원이 전부였다.
이 책에는 다수의 해외 사례도 등장한다. 1911년 3월 뉴욕 맨해튼의 트라이앵글 셔트웨이스트 공장(의류공장)에서 불이 나 15분 만에 146명이 숨지는 대형참사가 벌어졌다. 시민들은 시민안전위원회를 결성해 주의회를 움직였고, 이후 구성된 공장조사위원회가 주 전역의 3385개 사업장을 조사했다. 그 결과 새로운 노동법이 만들어졌고, 안전과 건강을 다루는 행정위원회까지 설치됐다. 1987년 영국에서 벌어진 프리 엔터프라이즈호 침몰 사건은 기업을 살인혐의로 기소한 첫 사건이었으며 결국 2007년 기업 살인법 제정의 초석이 됐다. ‘재발방지’를 통해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한 사례들이다.
한국은 어떨까? 양재 시민의 숲에는 삼풍백화점 사고 위령탑이 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자리는 강남 한복판이지만, 위령탑은 고속도로와 맞닿은 공원 구석에 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자리에는 37층짜리 주상복합빌딩이 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낳은 삼풍백화점 사고는 공원 모퉁이의 위령탑으로 남아 있다. 세월호 참사도 이렇게, 한 때 끔찍했던 사고, 추모의 대상으로만 남는 것이 아닐까.
502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참사의 책임은 누가 졌을까. 삼풍그룹의 이준 회장은 ‘업무상 과실치사’로 구속되어 징역 7년 6개월 형을 선고받는데 그쳤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 때 피해주민들은 삼성의 책임을 주장했지만 삼성이 부담한 비용은 56억 원으로 예상 피해액인 7341억 원의 1%에 그쳤다.
▲ 사고 직후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는 모습. 사진=세월호침몰사고대책본부 | ||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청해진해운과 실소유주 유병언 일가에 대한 수사당국의 접근방식을 두고도 박씨는 의문을 제기했다. 유씨는 정작 사망했고, 유씨 일가는 304명의 목숨을 잃게 한 살인혐의 대신에 경영상의 '비리'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기업에도 살인죄를 물을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면서 무능한 정부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짚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들이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며 충격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정부가 사고를 수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해경은 구조보다 청와대에 보고하는 것이 우선이었고, 300명 중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 대통령은 7시간 동안 보고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과적과 무리한 증개축, 부실한 배의 복원력 등도 관행이지만 해경과 정부도 구조와 사고 수습에 ‘관행적으로’ 무능한 것은 아닐까.
저자는 국내와 해외사례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원인에 대해 분석한다. 그렇다면 그 대형사고 때마다 정부는 어떻게 대처했고, 이것이 이후 사고의 수습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이러한 점도 함께 분석이 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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